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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Aug 05. 2020

<세인트 주디> 미국 이민법 뒤집은 변호사의 투쟁


미국은 이민자들의 나라지만 어느 순간 변질되었다. 2016년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며 이민 강경 대응은 그 수위가 높아질 대로 높아졌다 할 수 있다. 영화 <세인트 주디>는 2003년 미국 망명에 관한 실화다. 미국의 이민법은 9.11테러 이후 이민자를 범죄자 취급하는 방향으로 바뀌기 시작했다. 이민귀화국(INS)이 이민세관단속국(ICE)으로 개칭된 사실만 봐도 미국의 시선 변화를 알 수 있다.


이민 전문 변호사 주디 우드(미셸 모나한)는 아들의 양육 문제로 전 남편이 있는 LA로 이사 왔다. 새로운 로펌에 출근한 날 대표 레이(알프리드 몰리나)는 괜히 나서 불법 이민자들 편에 들려고 하지 말고 자진 퇴거하도록 만드는 게 가장 속 편한 일이라고 일러준다. 수임료를 선불로 받아 챙기면 그만이라 말하는 대표 앞에서 국선 변호사로 일하던 실력을 발휘해 사건을 맡는다. 바로 의뢰인 아세파 아슈와리(림 루바니)의 사건이다.



영화 <세인트 주디> 스틸컷



아세파는 아프가니스탄에서 몰래 소녀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여성의 자립과 독립을 보여주기 위한 일종의 행동을 결심한다. 거창한 것도 아니었다. 학생들과 선생님이 같이 길거리를 걸어갔을 뿐이다. 하지만 탈레반 정부는 아세파를 신성모독 이유로 폭행, 감금했고 이후 아세파는 이름 모를 병원에서 깨어났다. 위험을 무릅쓰고 극적으로 미국으로 건너왔지만 수용소에 불법체류자로 1년 동안이나 구금 중이었으며, 지속적인 약물 투여로 극심한 중독 상태였다.


약에 취해있는 아세파를 보고 뭔가 잘못되도 크게 잘못되었다고 느낀 주디는 적극적으로 도와야 한다는 강한 끌림을 느낀다. 하지만 아세파는 그날의 상황을 진술할 수도, 생각을 뚜렷이 정리할 수도 없었다. 몸과 정신이 망가져 있었다. 본인이 어디에 있고 어떻게 된 상황인지 모를 정도였다. 누가 한 인격체인 이 여성을 이렇게 만들었을까. 영화는 미국 대 개인의 조용한 싸움을 비추며 미국의 이민법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영화 <세인트 주디> 스틸컷


아세파는 진취적인 엄마에게 배운 대로 소녀들을 위한 교육을 실천했지만 탈레반 정부의 탄압을 받게 된다. 우리가 지금 당연하게 누릴 수 있는 권리들이 아프가니스탄에서는 불법이다. 독립적인 여성이 되는 일은 신에 대한 모독이고 해서는 안 되는 중대한 범죄다. 여성이 읽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금지인 것이다.


이에 주디는 미국의 망명법을 통해 아세파의 신변 보호를 신청한다. 그러나 미국의 망명법은 여성을 보호해야 할 대상으로 규정하지 않아 신청이 거절되고 고국으로 돌아갈 위험에 처하게 된다. 고국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을 두고 볼 수만 없던 주디는 내일처럼 나선다. 무료 변론을 한 탓에 사무실에서 쫓겨날 위기에 처하지만 전 세계의 핍박받는 여성을 위해 변론을 멈추지 않는다.


영화는 법정 드라마와 휴먼 드라마 형식을 오가며 제3세계의 수많은 여성 인권이 짓밟히는 과정도 다르지 않음을 암시한다.또한 자칫 무거울 수 있는 분위기를 환기하듯 적절한 웃음 감동 코드와 주디의 가정사를 삽입해 숨통을 튼다. 그 중심에 있는 미셸 모나한의 조용하고 강단 있는 모습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실제 주디 우드 변호사를 연상케 한다.


영화 <세인트 주디>는 미국의 망명법을 뒤집은 선례를 바탕으로 한다. 이 사례 전까지 미국 망명법은 여성이 겪는 위협 보다 정치적 위협이 우선시 되었다.  따라서 세상의 절반인 여성을 소수자로 인정하고 보호해야 할 이유가 없었던 거다. 하지만 주디는 멈추지 않는다. 법이 잘못 되었음을 밝혀내려 고군분투한다. 그 과정에서 아세파가 숨기려한 성폭력 트라우마를 스스로 내뱉을 수 있게 기다려 준다. 끔찍한 트라우마를 입 밖으로 꺼내는 것은 2차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임을 인지한 처사다. 주디는 쉽게 해결하기 보다 신중함을 선택했다.



영화 <세인트 주디> 스틸컷



주디는 명예나 수임료보다 오로지 '의뢰인'에 따라 움직인다. 의뢰인을 통해 구원받으려 한다는 주변의 비아냥 속에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끈기를 보여준다. 모두를 구할 순 없지만 시도는 해봐야지 않겠냐는 자신의 신념에 따라 행동하는 변호사다. 담담하고 끈질기게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돕겠다는 언행일치는 뭉클하게 다가온다.


영화는 트럼프 시대 인종차별을 향한 날선 목소리와 따뜻한 연대를 동시에 불어 넣는다. 전 세계 3분의 2의 여성이 자신의 생각을 갖는다는 이유로 억압받고 있다.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혐오, 소수자 차별을 떠오른다. 지금 당장 나와 상관없더라도 서로를 위해 목소리를 내야 하는 이유다. 한 명을 위해 싸우는 것은 결국 모두를 위해 싸우는 것임은 영화는 묵직한 목소리로 호소한다.





평점: ★★★

한 줄 평: 포기하지 않는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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