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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Sep 11. 2020

<치어리딩 클럽> 열정에 나이 제한이 어디 있어?

<치어리딩 클럽> 삶과 죽음이란 다소 묵직하고 철학적인 소재를 휴먼 코미디 장르의 옷을 입혔다. 가까이에서 보면 열정에 기름 붓는 동기부여지만, 멀리서 보면 인생이라는 긴 마라톤의 피니시 라인을 어떻게 들어올지에 대한 고민이다. 수동적인 자세가 아닌 스스로 미리 준비하는 주도적인 죽음, ‘웰다잉’에 관한 영화다. 태어나 배우고 일어서 열심히 일하고 꾸린 삶의 마지막 코스라 할 수 있다. 자기 생을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는 마지막 권리기도 하다. 따라서 남은 시간 동안 하고 싶은 일을 해보는 것만큼 소중한 경험도 없을 것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만든 할머니들의 열정 충만기

영화 <치어리딩 클럽> 스틸컷

46년간 살아온 도시의 삶을 정리하고 선 스프링 실버타운으로 이사 온 마사(다이안 키튼)는 항암치료를 거부하고 남은 인생을 즐기기로 했다. 그 연장선상으로 잔뜩 날을 세운 채 누구의 도움도 받고 싶지 않다며 굳게 빗장을 걸어 잠근 상태다. 세상이 삐딱하게 보이고 뭐든지 비관적으로만 받아들인다. 겉으로는 멀쩡한 척했지만 사실 죽는 게 누구보다도 두려웠다. 가족도 없이 홀로 살아온 마사에게 친구조차 없었다. 무섭고 힘들수록 “그러면 뭐 어때”라며 홀가분히 세상을 떠나려고 다짐했었다.


하지만 실버타운으로 이사 온 첫날부터 조용히 여생을 보내기엔 힘겨워 보인다. 옆집에 사는 셰릴(재키 위버)의 도를 지나친 친화적인 성격 때문. 밤늦게까지 친구들과 파티를 즐겨 피곤하게 만들지 않나 자꾸만 귀찮게 참견하기 시작한다. 그러나 마사는 셰릴의 위대한 참견(?)으로 음지에서 양지로 나올 수 있었다. 생각을 바꾸어 꿈을 이루고 싶은 작은 동기가 부여된다.


한편, 실버타운 입주 조건 중에는 동아리에 하나 이상 필수 가입이라는 필수 조건이 있었다. 마사는 셰릴과 대화를 나누다 치어리딩에 푹 빠졌던 과거를 기억해 낸다. 3번의 오디션에 떨어지고 간신히 붙어 꿈에 그리던 치어리더가 되었지만, 안타깝게도 경기 첫날 엄마의 간병 때문에 포기한 전력이 있었다. 결국 꿈에도 열망했지만 잡을 수 없는 꿈에 불과했다. 아쉬움이 남지만 지금 이 몸으로 치어리더는 어불성설이었다. 하지만 마사는 셰릴의 막무가내 스타일에 동화되고, 무기력하게 죽음을 기다리던 노인에서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이 생긴 소녀로 탈바꿈하게 된다. 누가 뭐라든 어떤가, 내 나이가 어때서라는 자신감만 장착하면 될 일이었다.


영화 <치어리딩 클럽> 스틸컷

마사와 셰릴은 생각을 직접 행동에 옮기며 치어리딩 클럽을 만들어 회원에 모집에 나선다. 드디어 억눌러왔던 할머니들의 욕망이 제대로 분출된다. 다양한 재주를 가진 할머니들이 지원서를 넣었고 실버타운 역사상 최초 치어리딩 클럽이 결성된다. 오합지졸 할머니들이 만났지만 열정만은 지구 최강이었다. 목표는 2주 후 다가올 시니어 쇼케이스. 하지만 순조롭던 연습에 먹구름이 끼기 시작했다. 실버타운 관계자들의 결사반대와 부상 선수가 생기며 차질이 생기게 된다.


나이 듦, 우리 모두가 겪어야 할 일


영화는 여기저기 시원치 않고, 역대급 실수투성이 할머니들의 열정을 아기자기하게 그려내고 있다.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월의 화살을 맞아 비록 몸은 마음먹은 대로 잘 안되지만, 마음만은 아직 이팔청춘인 노년 세대를 전면에 내세웠다. 몇 년 전 유행한 웰빙을 넘어선 웰다잉 즉, ‘잘 죽는다는 것’에 대한 성찰도 엿보인다.


그녀들은 치어리딩을 위해 노년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된다. 은발의 치어리딩은 충분히 도전정신만으로도 섹시하다. 연륜의 세련미는 무조건 배척해야 할 것이 아닌, 몇 십 년 뒤 내가 겪어야 할 현실 기대감으로 승화된다. 오늘도 다음 주도 죽음을 향해 가지만 지금 이 순간, 춤을 향해 달려가겠다는 열정 하나로 똘똘 뭉친 할머니들을 응원하게 되는 것이다.

영화 <치어리딩 클럽> 스틸컷

응원받은 할머니들은 우물쭈물하고 있는 젊은 세대에게 꾸물거릴 시간이 없다고 충고한다. 여태것 살아보니 짧은 인생 동안 해보고 싶은 일은 뒤로 미루지 말고 뭐든 해보라는 용기도 심어준다. 구세대와 신세대의 소통과 화합은 물론, 제2의 인생을 시작할 때는 정해지지 않다는 것을 충만한 도전정신으로 보여준다. 무엇보다 안정되어 있다 못해 정체되어 있는 실버타운에는 적극적인 활력이 필요해 보인다. 이는 점점 노령화되고 있는 대한민국의 모습과도 오버랩된다. 앞으로 고령화, 인구 절벽을 대비해 꾸려야 할 모습 중 하나라는 생각이 앞서기도 한다. 신구세대의 갈등을 풀어갈 수 있는 실마리를 영화 속에서 찾을지도 모른다.


새로운 것을 배우고 익히려는 인간 본성은 나이가 든다고 사라지지 않는다. 꽃다운 젊은 시절을 남편 때문에 참고 산 세월, 자식 키우느라 포기했던 아쉬움, 남들 눈을 의식해 자신을 직시하지 못한 힘들었던 날들을 치어리딩으로 보상받는다. 아프다고 쓰지 않던 몸을 움직이고 서로를 격려하며 우정을 쌓는다. 까짓 거 나이가 대수냐며 자신감을 키워 간다. 혼자일 땐 어렵지만 뭉치면 할 수 있다는 저력을 치어리딩을 통해 확인해 나간다. 


영화는 장기화된 전염병의 공포 속에서 긍정의 에너지를 전파한다. 모두가 안 될 거라 비웃었던 할머니들의 반란을 유쾌하게 그려내고 있다. 그 선봉에는 꾸준히 자신의 노년 커리어를 단단히 쌓아 올리고 있는 다이안 키튼과 영화의 웃음꽃, 재키 위버의 케미가 빛을 발한다. 또한 전 세계 최초 실버 치어리딩 클럽 ‘폼즈(POMS)’의 실화를 영화화 한 만큼 배우들이 직접 선사하는 경쾌한 치어리딩이 스크린 너머로 충분히 전해진다.




평점: ★★★

한 줄 평: 못해도 괜찮아, 즐기면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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