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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Oct 03. 2020

<교실 안의 야크> 행복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을까

행복지수 세계 1위의 나라 '부탄'. 유겐(셰랍 도르지)의 직업은 누구나 부러워하는 선생님이다. 하지만 정작 본

인은 적성에 맞지 않아 힘들 뿐이다. 남들이 뭐라 해도 진정한 행복은 가수의 꿈을 이룰 호주 이민뿐이라 믿고 있다. 하지만 떠나고 싶다고 당장 떠날 수 없었다. 의무 직무 수행 기간을 채우지 못해 전 세계에서 가장 외딴 루나나의 학교로 발령받게 된다. 어차피 겨울이 오기 전까지만 대충 때우고 나올 심산이었다. 그리고는 당장 호주로 떠날 계획을 세워 놓았다. 큰 행복을 위해 작은 불편은 잠시 참기로 결심했다. 


오지 학교로 가야 하는 도시 청년의 고군분투


영화는 러닝타임의 반을 할애해 인구 5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에 가는 여정을 세세히 보여준다. 루나나는 고도 높은 부탄에서도 4,800m에 달하는 히말라야산맥에 위치한 고립된 마을이다. 굽이굽이 차를 타고 물을 건너 장장 이틀, 휴게 도시에서 내려 꼬박 여드레를 더 걸어야만 나오는 오지 중의 오지다.


중반까지는 유겐의 불만 섞인 모습으로 채워지지만, 조금만 시선을 떼면 하늘과 맞닿은 장관을 눈에 담기조차 벅차다. 산이 병풍처럼 이들을 내려다보고 있고 보살펴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새들의 지저귐과 시원한 폭포소리, 야크 몰이꾼의 청아한 노랫소리, 맑은 공기와 눈부신 천혜의 자연이 눈앞에 있는데 핸드폰과 음악이 굳이 필요하겠는가. 문명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과 하나 되는 물아일체를 경험하는 신비로운 체험으로 안내한다. 

영화 <교실 안의 야크> 스틸컷

그러나 여드레에 걸려 막상 마을에 오니 유겐의 불만은 극에 달한다.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난방 시설도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숙소에 망연자실한다. 기대한 학교는 오랫동안 사용하지 않은 흔적이 역력하고 교실이라 부를 수도 없이 열악했다. 아이들은 칠판이 무엇인지도 모를뿐더러 돈보다 값진 종이는 아이들에게 언감생심이다. 공책도 연필도 없이 수업을 해야 했다. 이런 조건에서 어떻게 아이들을 가르치라는 말인지 막막하기만 했다. 유겐은 아무래도 잘못 온 것 같다며 돌아가고 싶다고 말한다. 그렇게 하루를 보내고 다음 날. 반장 '펨 잠'이 수업 시간이 한참 지났다며 깨웠다. 그렇게 유겐은 첫 번째 수업을 시작하게 된다.


행복의 나라 부탄에서 마주한 뜻밖의 고민들


국민총생산(GDP)보다 국민총행복지수(GNH)를 중시하는 부탄은 도시에 있건 오지에 있건 모두 공평한 교육을 받을 권리가 평등이라 믿는 나라다. 이는 1998년 국왕 지그메 싱예 왕추크가 남든 개념으로 OECD에서 활용하면서부터 널리 알려졌다. 


하지만 도시에 사는 철부지 유겐은 그리 행복하지 않아 보였다. 행복의 나라에서 찾지 못한 행복을 저 멀리 호주에서 찾으려 한다. 그래서 유겐이란 인물을 관객이 충분히 이입할 수 있게 설정한 후 그들과 서서히 동화되는 과정을 즐기게끔 유도해 놓았다. 이 마을에 도착함과 동시에 가르치는 사람이 아닌 배우는 사람이 된다. 교사의 권위 뿐만 아닌, 학교의 기능과 교육의 의미 마저도 희석된 대한민국의 현실을 비추어 볼 때 많은 비교점이 보인다. 

영화 <교실 안의 야크> 스틸컷

주민들은 두 시간을 더 가야 하는 마을 입구에 나와 선생님을 환대한다. 멀리서 아이들을 가르치기 위해 온 선생님을 모두가 한마음으로 대접하고자 한다. 선생님은 미래를 어루만지는 귀한 분이니, 극진한 존경과 예의를 갖춘다. 학업 성취도보다 인격을 갖춘 인물을 기르는 전인교육의 장(場)이 바로 루나나인 것이다.


유겐은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해야 하고, 교사라는 권위에 쌓여 있는 자신을 발견해 간다. 작은 것에도 불만을 드러내고, 불편함을 참지 못해 화를 낸 행동이 부끄러워진다. 가진 것에 만족하지 못하고 더 많은 것을, 그리고 나은 것을 위해 끊임없이 욕심부리던 지난날을 반성하게 된다. 나무 그릇에 음식을 담아주시던 할머니의 마음을 느끼며 일상의 소중함도 깨달으며 성장하게 된다. 


영화는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로 알려진 부탄 청년들의 실상을 들여다본다. 그 안에 존재하는 오지 마을의 문제점도 하나둘씩 들추어낸다. 펨 잠의 엄마는 집을 떠났고 아빠는 하루 종일 술에 절어 있다. 태양열에 의지하느라 전기가 잘 들어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고, 평등한 교육을 위한 최소한의 부자재도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마을의 교육열을 크지만 이를 실현시켜 줄 인력도 부족해 보인다. 


그래서일까. 루나나로 가는 여정은 인생의 축소판처럼 느껴진다. 고된 오르막길이 끊임없이 나오고, 조금만 더 가면 내리막이라고 생각할 때쯤, 또 한 번의 오르막길이 더욱 지치게 만든다. 영화는 판타지 세상을 보여주지 않는다. 나라 전체의 행복지수가 높다고 해서 모두가 행복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감독 '파우 초이닝 돌지'는 "실제 유겐처럼 행복을 찾아 다른 나라로 떠나는 청년들이 늘어나고 있다"라며 부탄 청년들의 현실도 들여다보고 싶다고 말했다.

영화 <교실 안의 야크> 스틸컷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안이 되는 것은 순수하고 진심 어린 마을 사람들의 마음과 히말라야를 병풍처럼 감싸고 있는 마을의 풍경이다. 자연이 내어주는 범위 내에서 최소한으로 사용하려는 의지, 인연을 중요시하는 마음, 그 일부인 사람과 동물을 존경하고 헛되이 하지 않으려는 가르침이 영화의 큰 인장이다. 루나나는 부탄이라는 표면적인 공간보다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신비로운 공간처럼 느껴진다. 신들이 사는 천상 세계에 온 어리석은 인간의 개과천선 이야기가 큰 울림을 주는 이유다.


무엇보다 예기치 못한 곳에서 얻은 각성은 힘든 시기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소중함, 잊고 있던 무언가를 떠올리게 한다. 가진 것 많은 우리들에겐 한없이 부족해 보이지만, 루나나 사람들에게는 무엇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게 없어 보였다. 진정한 행복으로 가는 지름길을 알지만 언제나 돌아가느냐 힘겨운 우리네 인생이 오버랩 된다. 그래서 <교실 안의 야크>는 힘들 때마다 곁에 두고 꺼내보고 싶은 영화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한 얼굴과 아낌없이 내어주는 야크, 그리고 청정구역 루나나의 대자연, 이 삼박자가 위화감 없이 전개되는 힐링 영화다.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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