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Jan 06. 2021

<미스터 존스>한 기자의 용기와 폭로

영화 <미스터 존스>는 히틀러를 최초로 인터뷰한 외신기자이자 구소련 당시 스탈린의 만행을 폭로한 기자 '가레스 존스' 실화를 바탕으로 했다. 86년 만에 빛을 보게 된 사건은 '저널리즘은 사실을 따라가야만 한다'라는 믿음을 토대로 한 탐사보도극으로 소환되었다. 훗날 이에 영감받은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을 쓰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소설을 집필하는 상황을 교차편집해 몰입도를 높였다. 폴란드의 거장 아그네츠카 홀란드 감독은 아카데미 외국어 영화상에 세 편의 작품을 노미네이트 한 바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토탈 이클립스>의 감독으로 알려져 있다.    


1933년 웨일스 출신 프리랜서 기자로 일하고 있는 가레스 존스(제임스 노턴)는 스탈린의 인터뷰를 위해 위험천만한 일을 벌인다. 오랫동안 '노동자의 유토피아'라 불린 스탈린 정권의 막대한 자금줄에 의문을 품고 직접 실상을 알아내기 위한 것. 스탈린의 황금, 가장 비옥한 곡창지대라 불린 우크라이나를 조사하기 위해, 동료 '파울 클레브'와 연락을 취하지만 예기치 못한 부고 소식을 듣는다.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

한 편, 모스크바에 도착한 존스는 먼저 퓰리처상 수상자이자 뉴욕타임스 모스크바 지국장인 월터 듀란티(피터 사스가드)를 찾아가 공조를 요청하지만, 친스탈린 성향과 향락에 빠진 상황을 목격한다. 모스크바에서 기자로 살아남는 방식은 정부에 협조하는 것뿐이었고, 스탈린에 대항하지 말라며 날 선 경고까지 서슴없는 모습에 적잖이 실망하게 된다. 그러던 중 베를린 출신 기자 에이다 브룩스(바네사 커비)로부터 클레브의 죽음과 스탈린 정부가 연결되어 있다는 실마리를 얻게 되고, 이를 찾기 위한 위험한 여정을 떠나게 된다.    


존스는 모두가 잘 먹고 잘사는 나라, 평등하고 부유한 스탈린의 실상을 알고 싶었다. 스탈린의 '위대한 실험','노동자들의 천국'이란 말로 선전한 정부의 실상이 궁금했다. 이에 관료들을 제치고, 유유히 빠져나와 우크라이나 농가로 향하게 된다. 영화는 우크라이나행 기차의 일등석과 화물칸의 극심한 대비를 통해 지금부터 존스가 마주할 처참한 광경에 애도를 표한다. 무엇이 맞다 틀린다고 편향된 의견을 제시하는 대신, 존스가 목도하는 시점부터 흑백에 가까운 톤으로 죽음이 내려앉은 상황을 묘사한다. 이는 끔찍함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내내 이어지다 극적으로 우크라이나를 빠져나와서야 종식된다.     

영화 <미스터 존스> 스틸

참혹한 우크라이나는 인위적 기근과 권력의 착취로 희망이 없어 보였다. 돈은 이미 가치를 상실했고, 먹을 것이 없어 딱딱한 나무껍질을 삼키거나 인육이라도 고맙게 먹어야만 했다. 길가에 쓰러져 있는 시체는 일상인 듯 치우려 들지 않을뿐더러 극심한 추위까지 견뎌야만 하는 지옥 그 자체였다. 스탈린이 만든 업적 '근대화'에 동원된 우크라이나 사람들은 피땀 흘려 거둔 곡식을 구경조차 하지 못하고 굶어 죽어갔다.    


무엇보다 이 상황이 끔찍한 것은 대규모 목숨을 앗아간 원인이 인위적 기근이라는 것이다. 이는 존스의 주위를 맴돌던 아이들이 부르는 섬뜩한 노래로 도출된다. "굶주림과 추위가 우리 집에 찾아왔네. 먹을 것도 없고 잘 곳도 없구나. 우리 이웃 사람은 정신이 나가서 자식들을 잡아먹었네."라는 가사에서 오랜 노동과 착취의 결과를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렇게 스탈린이 덮으려고 했던 수백만 명이 사망한 비극 '홀로도모르(Holodomor)'는 존스의 곧은 성정에 힘입어 세상에 전해진다.    


영화는 점차 양극화되고 있는 국제정세, 부패한 언론, 가짜 뉴스가 판치는 21세기에 진정한 저널리즘의 회기를 부추긴다. 존스는 미행, 협박, 감시가 계속되는 상황에도 몸을 사리지 않고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임했다. 이는 진실 추구와 양심, 정의가 살아 숨 쉬는 사회를 위해 언론이 갖추어야 할 자세에 대한 물음이다. 불의에 항거하는 기개, 유린당한 신념을 간절히 지키고자 했던 고군분투는 86년 만에 재조명되며 '펜은 칼보다 강하다'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또한 여전한 권력의 무게와 가려진 진실, 무관심을 향한 용기가 현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가슴속에 묵직한 울림을 준다.


평점: ★★★★

한 줄 평: 리얼 저널리즘에 대하여

매거진의 이전글 <가을의 마티네> 선을 넘지 않는 중년 로맨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