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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r 18. 2021

<모리타니안>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14년을 보낸 폭로

미국의 실체를 폭로한 남자, 사람이 먼저다


한 남성이 집안의 결혼식을 위해 고향에서 평온한 시간을 보낸다. 행사가 무르익을 무렵 갑자기 경찰이 찾아왔고, 그를 연행해간다. 걱정하는 어머니를 두고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던 남성은 '금방 돌아올 것'을 약속하고 자기차 를 몰아 떠난다. 그렇게 시간은 흘러 6년이란 시간이 지나버렸다.     


2002년 슬라히(타하르 라힘)는 9.11 테러의 주동자 혐의를 받고 기소, 재판도 없이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었다. 객관적인 증거 없이 심증만으로 가둔 명백한 위법이었다. 모하메두의 사촌이 오사마 빈 라덴의 휴대폰에 연락했다는 이유에서다.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그는 형식적인 절차일 것이라고 가족을 안심시키고 떠난 집을 쉽게 돌아올 수 없었다. 혐의를 인정하지 않자 거짓 자백을 받아내기 위한 고문과 협박에 이끌려 억울한 옥살이를 하게 된다. 무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그곳을 나오는 데만 총 14년이 걸렸다. 그것도 온전치 못한 정신과 몸을 이끌고.    


2015년 책 한 권이 출간되며 전 세계는 충격에 빠진다. 《관타나모 다이어리》라는 제목의 책은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한 최초의 수용자 증언록이다. 저자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가 밝힌 잔혹한 수용소의 실태는 상상을 초월했다.     


은폐된 국가 기밀을 파헤치다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

필요하다면 무료 변호도 마다하지 않는 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는 로펌이 반대하는 사건을 맡는다. 9.11테러의 용의자로 지목된 한 남자가 6년이나 수감되어 있다는 사실을 입수하고 외면할 수 없다는 이유다. 일사천리로 관타나모 수용소로 찾아가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이 기록되는 상황에서 쉽게 진실을 말하기란 어려웠다. 더 자세한 조사를 위해 다가갈수록 '국가 기밀'이라는 벽 앞에서 좌절하게 된다. 거대한 힘의 장막을 경험한 낸시는 은폐된 진실이 무엇인지 집요하게 캐려 고군분투한다.    


한편, 9.11 테러에서 동료이자 친구를 잃은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최근 슬라히 사건의 유죄를 확신하고 그를 사형으로 이끌 군검찰관으로 지목된다. 냉정하고 완고하기로 소문난 그는 슬라히의 무죄를 외치는 낸시와 동료 테리(쉐일린 우들리)의 주장이 말도 안 되는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명백한 유죄라도 확실한 증가가 필요하다고 판단해 공식 보고서를 열람하기에 이른다.    


하지만 이 사건에 충격적인 진실을 파악하고 갈등하게 된다. 과연 그는 선량한 피해자인가, 9.11테러를 이끈 테러범일까. 영화는 답을 찾는 작업이 아니다. 상반된 진실에 둘러싸인 한 남성을 통해 권력 폭력의 실체에 다가가는 지난한 과정이다.     


<모리타니안>은 권력을 가진 막강한 집단이 개인의 삶을 어떻게 망가트리는지 장기적으로 보여준다. 이를 위해 슬라히의 회상(고문, 가족, 환상)과 현재를 화면 비율을 달리해 마치 내가 당한 것 같은 현실감을 자아낸다. 70여 일간 특별 프로젝트라는 명목 아래 스트레스 자세, 수면 장애, 물고문, 성적 수치심 유발, 극심한 공포와 추위, 시청각 자극제, 가족을 이용한 협박 등 갖은 고문을 당했다. 강압적 위협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유발했고 결국, 참다못해 거짓 자백으로 일단락되는 듯했다. 그를 처음부터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시작한 끝이 보이는 결과였다. 하지만 낸시는 포기하지 않았다.     


사실에 근거한 단단한 연출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

그래서일까. 선진국이라 말하는 미국의 실체, 재판도 없이 구금한 인권 유린의 부끄러운 역사를 들추어 내는데 시간을 할애한다. 결백을 밝히기보다 세계의 경찰관을 자처하는 미국의 잔혹 무도함을 더욱 부각시켰다. 법정 장면이 대부분일 거라 생각했던 편견을 깡그리 무너트린다. 죄의 유무가 확정되고 후반부에 터지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하기 보다, 실제 일어난 일을 가감 없이 재현해 사실을 전달하려는 흔적이 역력하다.    


연출자 케빈 맥도먼드는 전작 <휘트니>를 통해 휘트니 휴스턴의 생애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구축한 바 있다. 그 밖에도 밥 말리에 관한 다큐멘터리 <말리>, 우간다 독재자 이디 아민을 다룬 <라스트 킹>을 만들었으며, 비극적이었던 뮌헨 올림픽을 담은 <원 데이 인 셉템버>로 제71회 아카데미 시상식 장편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다. 다큐멘터리 작품을 주로 연출한 감독답게 실화를 극영화로 다루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졌다. 그리고 한 인물을 집요하게 탐구하며 객관적이고 중립적으로 다루려는 고찰을 멈추지 않는 연출자다.     


거기에 <차일드 인 타임>이후 제작자로 또 한 번 나선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직접 카우치를 연기하고 싶다는 의사를 피력하기까지 했다. 이 영화로 제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여우조연상을 수상한 조디 포스터의 단단하고 강인한 연기도 힘을 보탠다. 실존 인물을 연기한 타하르 라힘은 시나리오를 읽고 눈물을 터트렸다고 밝히며 슬라히가 되기 위해, 한 인간으로서 그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영화 <모리타니안> 스틸

슬라히는 낯선 땅에서 홀로 누구의 도움도 없이 쓸쓸히 잊힐 뻔했다. 하지만 정의로운 변호사의 노력과 군검찰관의 양심선언으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잃어버린 14년에 분노하고 복수할법하나 그가 보여준 태도는 엔딩크레딧이 끝나야 드러난다. 삶을 빼앗아 간 그들을 향한 것은 '사랑'과 '용서'였다. 낸시의 도움으로 2010년 자백의 무효가 증명되며 관타나모를 빠져나올 수 있는 길이 열린다. 하지만 6년을 더 살며 비로소 2016년에 완벽한 자유를 맞는다. 당시 대통령이었던 오바마는 판결 불복종에 항소했고, 미국 굴욕적인 역사로 고스란히 남아있다. 자유민주주의 국가 미국이 9.11 테러의 배후를 찾기에만 혈안이 되어 있던 어두운 이면도 심도 있게 그려진다.    


제목 <모리타니안>은 서아프리카에 위치한 이슬람 국가 모리타니공화국 사람이란 뜻이다. 이 영화에서 보여주고 싶었던 한 사람, 인간의 존엄성은 누구도 쥐고 흔들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근거가 된다. 거기에 혼자서는 할 수 없을 것 같은 일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가슴이 뜨거워진다.


평점: ★★★★

한줄평:  미국의 실체를 폭로한 남자, 사람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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