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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r 24. 2021

<아이카> 갓 낳은 아기를 두고 도망친 여성.. 왜일까



아이를 막 출산한 20대 여성이 다급한 듯 창문을 통해 병원을 도망친다. 밖은 100년 만의 폭설로 며칠째 눈으로 덮여 있다. 아기를 병원에 두고 어디론가 급히 가는 여성의 뒤를 쫓아가다 보니 공장이다. 빛 한 줌도 들어오지 않은 닭 공장에서 닭털을 벗기는 손이 익숙하다. 하지만 성치 않은 몸으로 답답한 공기와 후끈한 열기를 그대로 흡수하고 작업을 중단하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방금 2주 치 월급을 떼였다. 업자가 도망을 가버린 것이다. 게다가 자꾸만 울려대는 전화에서는 돈 갚을 날짜가 지났다며 빚 독촉이 끊이지 않는다.     


무거운 몸을 겨우 이끌고 만 원 지하철에 몸을 싣고 집으로 돌아지만 편하게 쉬지 못하는 처지다. 커튼 한 자락으로 몇 사람의 공간을 나눈 좁아터진 숙소는 수용소나 마찬가지였다. 몸뚱이 하나 누일 수 있는 작은 공간이라도 있으니 감지덕지해야 할 판이다. 밀려오는 통증에 진통제를 막무가내로 흡입해보지만 소용없다. 치료가 시급해 보인다.    

영화 <아이카> 스틸

취업 허가증이 1년 전에 만료된 아이카(사말 예슬라보마)는 이번에 걸리면 추방이다. 키르기스스탄에서 모스크바로 온 아이카는 소박한 재봉 가게를 열려고 돈을 빌렸지만 원치 않은 임신과 출산으로 만신창이가 되었다. 출산하고 돌아와 보니 내 자리는 다른 사람으로 대체되었고 쉬지 않고 울려대는 독촉 전화만 울려댄다. 하지만 아이카는 절망하지 않는다. 그럴 시간 저도 아깝다는 듯이 눈물조차 흘리지도 않는다. 누가 이 여성을 사지로 내몬 것일까, 끝날 기미 없어 보이는 걸음을 멈출 날이 올까.    


그저 바쁘게 계속해서 일자리를 찾아 거리를 헤맨다. 구직을 희망하나 어딜 가나 문전 박대 당하기는 일쑤, 하늘에 구멍이라도 난 것 같은 폭설에 몸은 꽁꽁 얼어붙어 버렸지만 계속해서 걷는다. 그러다 하혈이 계속되어 급히 화장실을 찾다 들어선 곳은 한 동물 병원이었다.     


영화는 24시간 아이카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CCTV 같다. 현장감을 강조하는 핸드헬드와 클로즈업 샷, 롱테이크 장면은 아이카의 표정, 몸짓, 호흡까지 하나도 놓치지 않고 담아냈다. 절박한 심정을 그저 화면으로 관망하는 것을 떠나 관객을 삶의 현장으로 체험케 한다. 이주노동자들의 녹록지 않은 현실과 러시아의 사회가 대조적으로 그려진다. 반려동물 보다 못한 대접을 받고 있는 이주노동자들은 12시간 노동, 좁은 휴식 공간에서 제대로 된 휴식조차 보장받지 못한 채 개미처럼 일만 한다. 다람쥐 쳇바퀴 돌 듯 끊임없이 돌고 도는 노동의 굴레를 벗어날 수 있는 방법조차 제시되지 않아 절망적이다.    

영화 <아이카> 스틸

이주노동자의 고단한 삶은 하염없이 내리는 눈으로 묘사된다. 눈은 로맨틱한 분위기를 연출하는 장치로 흔히 사용된다. 하얀 눈송이를 보며 옛사랑을 떠올리고, 아름다운 시상이 떠오를 때. 무겁게 내려앉은 눈송이는 고스란히 피로감을 누적하는 고통이 된다. 우리의 일상에서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영화 속에서는 이질적인 고난으로 치환된다. 거기에 임신과 출산에 관한 불편한 진실도 외면할 수 없다. 꿈을 좇아 모스크바로 이주한 여성이 감내해야 했던 삶의 무게는 날카로운 바람처럼 여기저기를 할퀴고 지나간다.     


한편, 다큐멘터리를 찍어온 세르게이 드보르체보이 감독은 데뷔작 <툴판>으로 제61회 칸국제영화제 '주목할 만한 시선' 부분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아이카>는 10년 만에 선보인 복귀작이자, 사말 예슬라모바와의 재회로 화제가 되었다. 두 사람의 10년 만의 케미스트리 제71회 칸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이라는 쾌거를 이루어 냈다. 드로르체보이 감독은 인터뷰를 통해 출산 직후 아이를 포기한 200여 명의 이주민 출신 산모들의 기사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밝혔다. 영화 속 현실이 그저 상상 속의 판타지가 아닌 주변에서 버젓이 일어나고 있는 공포임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거울이다.


평점: ★★★☆

한줄평: 동물병원 닥스훈트와 아이컨택이 내내 먹먹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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