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장혜령 May 19. 2021

넷플릭스<우먼 인 윈도>히치콕 스타일의 재해석

<우먼 인 윈도>는 A.J 핀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옮겼다. 에이미 아담스를 필두로 게리 올드만, 줄리안 무어, 제니퍼 제이슨 리, 안소니 마키 등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한다. 실제 집순이라 밝힌 에이미 아담스는 체중 중량을 통해 캐릭터를 입체적으로 만드는데 일조했다.    


조 라이트 감독은 21세기 히치콕의 부활이라 할 만큼 고전 <이창>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영화 초반부 <이창>의 배우 제임스 스튜어트가 등장하는 장면을 통해 감사를 표했다. 그래서일까. 마치 연극 무대를 보는 것 같은 연출과 관객의 눈이 되어 수평과 수직을 오가는 카메라 워킹이 클래식한 분위기를 풍긴다. 주인공을 여성으로 바꾸며 살인 사건의 유일한 목격자의 고군분투를 실감 나게 연출했다.    


진실과 거짓 사이에서 유지되는 긴장감이 고조될수록 무너지는 마음을 무방비 상태로 지켜볼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그 때문에 관객이 완전한 이입을 하도록 만든 전반부와 후반부 드러나는 주인공의 충격은 고스란히 관객의 몫으로 다가온다.



살인 사건을 목격한 광장공포증 환자    

영화 <우먼 인 윈도> 스틸컷

소아 정신과 의사 애나(에이미 아담스)는 광장 공포증 때문에 늘 집에만 있다. 가끔 정신과 의사가 찾아와 상담을 받는 것 외에 늘 혼자다. 남편과 딸이 있지만 현재는 별거 중이다. 하지만 매일 전화 통화를 주고받으며 안부를 묻는다. 하루 빨리 함께 살날을 고대하고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병세가 호전되어야만 한다.     


길 건너 101번지 한 가족이 이사 왔다. 애나는 창문으로 보이는 그 집 풍경을 커튼 뒤에서 몰래 관찰하기 시작한다. 의도를 갖고 훔쳐보는 엄연한 불법이지만 애나는 멈출 수가 없다. 반복되는 하루, 고전 영화 몇 편을 보고 건너편 러셀 가(家)를 둘러보며 무료한 일상을 보낸다. 그러던 어느 날, 길 건너에 사는 소년이 집을 찾아왔다.   

 

이선(프레드 헤칭거)은 엄마가 보낸 선물을 들고 찾아왔다. 비에 흠뻑 젖어 애처로운 얼굴로 문밖에 서있는 소년을 내칠 수가 없다. 애나는 누굴 집 안으로 들이지 않는 성격이지만 호의를 무시할 수 없어 이선을 안으로 들인다. 이선은 나이보다 더 어려 보이는 순수한 소년이었다. 오랜만에 우중충한 집이 한결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영화 <우먼 인 윈도> 스틸컷

함께 이런저런 대화를 하던 도중 아빠 앨리스터(게리 올드먼) 얘기 중 숨길 수 없는 불편함을 감지한다. 갑자기 오지랖이 발동한 나머지 소아정신과 의사로서 진심 어린 위로를 건넨다. 그리고 DVD 몇 편을 빌려주며 언제든지 좋으니 집에 들르라고 친절을 베푼다.     


또 며칠이 지났다. 컴컴한 집 안에서 약과 술에 절어 낮인지 밤인지 모를 만큼 틀어박혀 있던 애나는 할로윈을 맞아 동네 꼬마들의 장난에 극심한 불안감을 느낀다. 급기야 참다못해 현관문을 열었지만 문밖으로 나가기 전 그 자리에서 정신을 잃고 만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깨어나 처음 본 여성을 직감적으로 이선의 엄마 제인(줄리안 무어)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엄마라는 공통점으로 친분을 나누며 오랜만에 즐거운 시간을 보내며 친구가 된다.


건너편 러셀 가족이 이사 온 후 조금씩 달라진 애나. 커튼 뒤에서 은밀히 관찰하던 것에서 이제는 대담하게 디지털카메라를 들었다. 싸우는 소리가 자주 들리던 러셀 가족에게 무슨 일이라도 날 것 같은 불안함이 커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뜻밖의 사건을 목격하며 일이 커진다. 앨리스터와 심하게 다투던 중 제인이 칼에 찔리는 것을 본 것이다.    


지금 본 상황은 실제일까, 아니면 약과 술에 절어 환각을 헷갈린 걸까. 진실을 알고 싶지만 이에 다가갈수록 아픈 과거와 마주해야만 하는 고통에 시달린다.     


믿음과 의심 사이에서..    

영화 <우먼 인 윈도> 스틸컷

영화는 철석같이 믿는 오감이 오작동할 수 있다는 근거에서 출발한다.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갈등하는 개인의 심리를 파헤친다. 애나는 광장공포증으로 집에서만 생활한다. 다양한 향정신성 약물과 술을 복용하고 우울증과, 공황장애, 관음증에 가까운 악취미 탓에 누구 하나 믿어 주지 않는다. 출동한 경찰은 러셀 가족에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며 모든 게 망상이라고 몰아세우기까지 한다.    


진실이 무엇인지 관객조차 헷갈릴 수밖에 없는 상황은 <우먼 인 윈도>의 가장 큰 장점이다. 나 자신조차 믿을 수 없는 상황에서 상대를 설득하기란 쉽지 않다. 애나는 의사이기 때문에 본인 상태를 누구보다 잘 안다고 자부하지만 현재 모든 것은 미궁 속에 빠져버렸다. 미치지 않았다는 것을 입증할 수 없는 상황에서 모두가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만 같아 혼란스럽다. 타인을 믿기는커녕 자신조차 믿지 못한다. 정신을 온전히 가다듬으려 할수록 더 깊은 수렁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광장공포증은 흔히 사람들이 많은 공공장소나 급히 빠져나갈 수 없는 밀폐된 공간(터널, 엘리베이터), 또는 도중에 내리기 어려운 대중교통(버스, 지하철, 비행기)을 기피하는 증상이다. 도움 없이 혼자 있는 게 힘든 불안장애를 말하며 누군가와 동행하려고만 한다. 일상생활이 어렵기 때문에 외출을 하지 않으려고 하고 대인기피증도 심해진다. 따라서 불안한 1인칭 화자는 신뢰하기 어려우며, 자각하지 못하는 내면은 계속해서 외부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킨다.    

영화 <우먼 인 윈도> 스틸컷

영화는 원작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클래식한 분위기가 매력적이다. 히치콕 스타일을 좋아하는 관객의 흥미를 끌만한 장치가 완연하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원작을 읽은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호불호가 걸림돌이 될 듯하다. 원작 속에 촘촘히 풀어 낸 살해 동기와 범인에 대한 설명이 대부분 실종되어버렸다. 갑작스러운 전개가 맥을 끊고, 뜬금없는 범인의 등장은 흥미를 단숨에 무너트리는 결정타가 된다. 충격적으로 다가와야 할 반전마저도 김빠진 콜라처럼 밋밋한 감을 지울 수 없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말을 실감할 수 있는 아쉬움이 큰 영화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