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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y 17. 2021

<스파이럴> 다시 돌아온 공포의 목소리

"게임을 시작하지"



영화 <스파이럴>은 <쏘우> 시리즈의 스핀오프다. 2005년부터 13년 동안 8편의 작품을 선보인 프랜차이즈의 새로운 시작을 알린 9번째 시리즈다. <쏘우>는 2004년 제임스 완 감독의 장편 데뷔작으로 기막힌 반전과 트랩으로 전 세계적인 충격을 안겨준 전설적인 고어 영화다. 그 이후 제작된 시리즈는 어디까지 더 잔인한 설정을 보여줄 수 있는지 겨루는 시험장처럼 변했고 고문 포르노란 오명을 얻기도 했다.    


마지막 편인 <직쏘> 이후 외전으로 돌아온 <스파이럴>은 <쏘우>의 시그니처인 잔인한 살인 게임을 그대로 두고 <세븐>이 떠오르는 분위기로 이야기에 중점을 두었다. <쏘우> 2편부터 4편까지 연출을 맡은 경험을 가진 대런 린 보우즈만은 "세븐을 떠올렸으면 좋겠다"라며 오마주와 재해석을 맑혔다. 경찰 콤비가 게임을 막을 방법을 모색해나가는 구조는 흡사 추리물과 맞닿아 있으며, <세븐>에서 보여준 7가지 죄악도 <스파이럴>에서 차용했다. 그래서 굳이 시리즈를 보지 않아도 될 만큼 독립된 영화로 봐도 무방하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가 적용된 살인 방법은 위증한 자의 혀를 자르고, 손가락을 놀려 방아쇠를 당긴 자의 손가락을 뽑고, 알고도 묵인한 자의 얼굴에 상해를 가하는 등. 의도된 설정이 차례차례 모습을 드러낸다. 단순한 추종자의 모방 범죄일까, 개인적인 원한일까. 민트색 상자, 그리고 잔인하게 훼손된 신체, 빨려 들어갈 것 같은 소용돌이 표식까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강렬한 오프닝으로 '쏘우' 시리즈의 귀환을 알렸다.    


"후후, 게임을 시작하지“    

영화 <스파이럴> 스틸컷

분명 직쏘가 죽었지만 또다시 게임이 시작되었다. 놀이공원에서 소매치기를 쫓던 경찰이 함정에 빠져 끔찍한 주검이 되었다. 경찰은 즉각 사건 수사에 나서고 신원이 밝혀지기 전 경찰서로 의문의 소포가 배달되었다. 상자 안에는 훼손한 신체 일부와 경찰 배지가 들어 있었다. 시체는 동료 경찰이었다.     


형사인 지크(크리스 록)는 신참 윌리엄(맥스 밍겔라)과 이 사건을 전담한다. 하지만 항상 한 발짝 늦게 도착했고, 파트너를 고발했다는 이유로 경찰 내부에서 따돌림을 당해 난관에 봉착한다. 도와주는 사람도 없이 신참 형사와 고군분투해야 한다.     


그런데도 지크는 특유의 동물적 감각으로 사건의 연관성을 알아차리지만 속수무책으로 다음 희생자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지크의 아버지 마커스(사무엘 L. 잭슨)도 포함되어 있었다. 무심하긴 해도 긴 시간 연락 끊길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던 지크는 이제야 사건의 내막을 알아차리고 공황에 빠진다. 범인의 실체에 가까워질수록 소중한 사람을 하나둘씩 잃어가는 덫에 걸려든 지크는 빠져나갈 구멍이 없다.

    

마침내 얼굴 없는 범인은 썩어버린 정의를 운운하며 자기 행동의 정당성을 논한다. 소용돌이 표식을 통해 이 사회의 변화와 진화, 개혁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정의의 집행자처럼 잔혹한 살인자가 비리 경찰을 심판한다. 터무니없는 과대망상처럼 들리지만 미쳐 돌아가는 세상에서 약자가 할 수 있는 일은 이것뿐이라며 정당화한다. 내가 당했으면 너도 똑같이 당해야 하는 규칙, 권선징악 요소가 <스파이럴>의 주된 포인트다.    

영화 <스파이럴>스틸컷

 <쏘우> 시리즈는 저예산 공포 영화답게 신인 배우를 기용하던 관계를 저버리고 화려한 출연진으로 상업성과 대중성을 겨냥했다. 코믹 연기의 대가이자 에미상 다회 수상자인 크리스 록의 새로운 얼굴을 확인할 수 있다. 짧은 등장만으로도 존재감을 드러내는 사무엘 L. 잭슨과 크리스 록의 티키타카 케미도 빠질 수 없는 재미 요소다.    

영화는 93분의 러닝타임 중 늘어짐 없이 쾌속 질주한다. 압도적인 긴장감으로 지루할 틈이 없다. 극악무도함을 넘어 상상 이상의 고문 트랩은 어디까지가 한계인지 혀를 내두르게 한다. 또한 잔인한 장면 위주보다는 살인 동기에 초점을 맞춘 스토리텔링으로 말초신경만 자극하는 영화라는 꼬리표를 씻어내려는 시도가 엿보인다. 다만, 추리물을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범인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어 아쉬움으로 남는다. 직쏘의 상징인 '빌리 더 퍼펫(인형)'이 등장하지 않지만 그에 버금가는 새로운 심벌이 이를 충족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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