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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Jul 01. 2021

<흩어진 밤> 아이의 시선에서 바라본 가족의 해체

느닷없이 찾아온 모르는 사람들이 집 구석구석을 둘러보고 갔다. 수민(문승아)은 무슨 일인지 이해할 수 없어 물어보지만 어른들은 명확한 해답을 주지 않는다. 그저 아빠와 엄마는 서로 다르기 때문에 한 집에 살 수 없다고만 말할 뿐이다.     


영어 학원 강사로 일하는 엄마(김채원)와 바빠서 자주 집에 들어오지 않는 아빠(임호준) 사이에서 오빠 진호(최준우)는 가장 친한 친구가 되어준다. 이에 수민은 오빠에게 고민을 털어놓지만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현재 오빠의 가장 큰 관심사는 공부를 열심히 해서 특목고에 가려는 것뿐이다. 똑똑한 엄마를 닮고 싶은 걸까. 아빠랑은 말도 섞고 싶지 않아 한다. 대체 오빠도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다.    


집이 팔리면 아빠와 엄마 둘 중에 누구와 살지 정해야 한다고만 했다. 수민은 누구와 살게 될지 여러 방법을 모색하던 중 혼자서 경우의 수를 깨치게 된다. 오빠는 벌써 경우의 수를 아냐며 대견한 듯 말하지만 사실 불안함이 만들어 낸 슬프고 웃긴 상황이 연출된 것이다.    


가족은 서로 모여있지만 늘 어색하고 놀러 가본 적도 없어 서먹하다. 일주일에 한 번 만나는 주말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결국 아빠가 일하는 박물관으로 또 출근도장을 찍었다. 앞으로 가고 싶은 곳을 미리 정해서 재미있는 데도 많이 가고 추억을 쌓자고 다짐하지만 그때뿐이다. 지킬 수 없는 약속임을 안다. 그것보다 수민이 진짜 바라는 바는 예전처럼 다시 넷이서 사는 것이다. 하지만 그 바람은 점차 희미해져만 한다.     


   

영화 <흩어진 밤> 스틸컷

수민은 누구와 살아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지지만 엄마와 함께 간 부동산에서 그 실체를 파악하며 실망한다. 엄마는 방 두 개짜리를 구하고 있었다. 엄마-오빠-나 이렇게 셋이 살 집은 구하는 게 아니었다. 넷은커녕 엄마와 오빠, 나까지 셋이 사는 일도 어려워 보였다. 부모님과 나와 오빠가 각각 찢어져 살아야 하는 것이다. 함께 사는 일은 절대 일어나지 않는 일일까. 수민은 매일이 불안하고 혼란스럽다.


영화는 갑작스러운 부모의 별거 선언에 자녀들이 감당하게 될 심리적 동요를 면밀히 포착했다. 어린 나이에 떠맡게 된 힘든 선택을 아이들의 시선으로 그러냈다. 카메라는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있고 어른들은 화면 밖으로 밀려나거나 목소리만 들리는 경우가 많다. 영화가 진행될수록 관객의 유년 시절을 떠올리거나 수민과 비슷한 나이의 자녀를 둔 부모 세대에게 깊은 공감을 선사한다.     


수민의 나이가 열 살인 이유는 의미심장하다. 열 살쯤 되면 자존감과 자신만의 기준이 생겨 주장을 내세우기 시작할 때이다. 아직 어려 보여도 당당히 가족의 일원으로 대소사의 잘잘못을 가리고 어른의 말에 대꾸할 수 있는 능력이 생긴다. 부모와 잦은 트러블을 겪기도 하고 혼자만의 생각과 비밀을 간직하며 성장하는 시기다.    


수민은 박물관에서 이동하던 구석기 사람들이 비로소 농경을 이유로 한곳에 정착했다는 설명을 듣는다. 그 이후 한차례 더 아빠와 밥 먹는 장면에서 명란젓에 빗대어 구석기와 신석기의 정착 생활을 상상하는 장면이 한 번 더 강조된다. 수민은 누구와 살게 될까 일생일대의 가장 큰 고민을 끝내고 안정된 가정에 정착하고 싶다는 바람을 강력히 피력한다.     

영화 <흩어진 밤> 스틸컷

하지만 영화 속 배려 없는 부모는 아이 앞에서 해서는 안 될 말을 입에 올린다. 가족의 해체를 서로의 탓으로 돌리며 증오하는 분위기를 내내 연출한다. 아이들은 내색하지 않아도 부모의 심리 상태를 다 알고 불안해한다. 부모의 이혼은 각자의 선택이겠지만 그 결과는 아이들에게 향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원하지 않았지만 뿔뿔이 흩어진 가족은 평생 큰 상처로 남는다.    


열 살 아이가 감내해야 할 낯섬과 공포는 성인이 되어서도 쉽게 잊히지 않는다. 부모의 사정이야 어쩔 수 없지만 이에 앞서 충분한 설명으로 이해시키는 작업이 동반되어야 하는 이유다. 우리가 떨어져 살지만 언제나 너를 사랑한다는 점을 떠올릴 수 있도록 하고 자아를 존중하는 일환으로 본인 선택을 유도하는 게 좋다. 크고 작은 일을 함께 논의하고 풀어가는 과정에서 아이들은 존재의 이유를 느끼고 구성원으로 성장하게 된다. 아이에게도 선택권이 있고 의사가 있다. 더 이상 가정에서 침묵은 금이 아니다.    


때문에 극중 수민이 내뱉는 촌철살인 대사가 마음에 콕 하고 박힌다. "뭐야 다 벌써 정한 거야? 왜 엄마 아빠 맘대로 해!" 가정이란 울타리에서 보호자와 롤 모델 이상의 안정감 주던 부모가 갑자기 사라지는 일은 심리적 동요가 큰일이다. 아이에게 부모는 큰 세계와도 같기에 그 세계가 무너진다는 것은 엄청난 고통이다. 아이들은 부모의 이혼 이유를 찾다 존재의 이유를 부정하기에 이른다. 그 파장을 넌지시 보여주는 마지막 장면은 먹먹하고 담담하다.    


다만, 독립영화의 특성상 사운드 믹싱과 대사 전달력이 다소 미흡하다. 하지만 문승아 배우의 자연스러운 연기력이 모든 것을 아우른다. 문승아는 <소리도 없이>에서 차분한 연기로 긴장감을 유발한 납치된 소녀로 활약한 바 있다. 데뷔작 <흩어진 밤>으로 제20회 전주국제영화제에서 배우상을 받으며 가능성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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