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기이하게 흐르는 해변이 있었다. 아무도 그곳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곳은 30분이 1년이라는 빠른 속도의 공간이었다. 탁 트여 있지만 꽉 막혀 있는 숨 막히는 공간. 누군가가 축복인지 불행인지 묘한 해변을 발견했고, 여기에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도시의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고 싶어 했다. 바쁜 일상에서 벗어나고 싶거나, 가족, 연인과 추억을 만들고 싶은 사람들은 이 리조트를 선호했다. 천혜의 자연경관을 가진 휴양지는 언제나 북적이는 성수기였고 생기와 즐거움이 가득했다.
일면식도 없는 가족 및 연인이 리조트 근처의 비밀 해변으로 떠났다. 직원은 아무에게나 알려주지 않는 특별한 서비스임을 강조하며 몇몇 사람을 모객했다. 로또에 당첨된 것처럼 모두 들떠 있었고 아름다운 절경에 넋을 놓고 즐기기에 바빴다. 하지만 여행 자체가 불편한 가족은 서걱거리기만 했다. 부모님의 냉랭한 분위기를 눈치챈 남매는 애써 모른척했고, 부부는 이미 끝난 사이임을 직감했다. 아이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썩어버린 동아줄을 쥐고 있는 상황. 이 가족의 해체는 시간문제다.
그밖에 젊은 아내와 딸, 노모와 온 중년 가장, 아내와 남편이 오붓하게 휴가를 즐기러 온 부부, 그리고 저 멀리 지평선을 바라보고 있는 한 남자까지. 그림 같은 해변은 긴 말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비밀을 품고 있었다. 들어올 땐 마음대로 들어왔지만 나갈 때는 마음대로 나갈 수 없었다. 병풍같이 둘러싸인 바위와 탁 트인 바다는 오히려 밀실 효과를 돋운다. 이상한 현상과 충격적인 일들이 계속되고 사람들은 탈출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영화는 직관적인 대사와 빠르게 진행되는 노화, 충격적인 사건들로 러닝타임을 채우기 바쁘다. 카메라가 이곳에서 저곳으로 시선을 이동하고 이 인물에서 저 인물을 훑어봄으로써 시간 경과를 보여준다. 인물의 얼굴을 근접 촬영해 혼란스러운 상황과 표정으로 심리적 압박을 가한다. 흔들리는 핸드헬드 기법으로 긴박한 상황을 주입한다. 휘몰아치는 전반부와 다르게 해변의 비밀이 밝혀지는 중반부터의 연출은 다소 아쉽다.
하지만 대체 '왜'라는 질문 대신 '어떻게'라는 삶의 성찰을 부추기는 영화다. 시간 앞에서 모두 공평한 인간 군상을 도발적으로 보여준다. 과거를 다루는 박물관 큐레이터, 미래를 대비하는 보험 계리사, 간호사, 의사, 심리치료사, 래퍼 등 적재적소에 배치되어 상황을 이끌어 간다. 108분의 러닝타임이 언제 지났는지도 모른 채 시간에 관한 말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연인과 헤어지고 죽을 것처럼 아픈 상처도 시간이 지나면 아물고, 서서히 잊힌다. 그래서 '시간은 약이다' 서로 안 볼 사람처럼 서먹했던 부부는 결국 귀가 들리지 않고 눈이 보이지 않자, 도리어 무엇 때문에 싸웠는지조차 까먹어 오히려 행복하다. 서로의 잘잘못을 따지며 악다구니 쓰던 시절이 있었나. 금실 좋은 부부처럼 용서와 화해로 마지막 길을 같이 외롭지 않게 지켜준다.
나가려고 발버둥 쳐보지만 모든 게 부질없이 느껴진다. 이제 와서 후회하고 자책해도 늦었다. 이들에게는 '시간이 없다'. '시간이 쏜살같이 흐른다' 남매는 몸과 마음의 불일치를 경험하고 혼란스러워한다. 6살, 11살 꼬마가 어느새 사춘기가 되고 청년이 되고 반나절 만에 반백살이 되어버렸다. 하루 만에 생애 주기가 타임랩스처럼 압축된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남과 동시에 늙는다. 그리고 죽어간다. 시간은 기다려주지도 않고 잠시 멈추지도 않는다. 이 막연한 두려움은 공포로 바뀌고 하루라도 더 살고 싶어 버둥거린다. 영생을 꿈꿔 불로초를 찾아 헤매고, 생명 연장 의학이 발달하고, 안티에이징 상품이 불티나게 팔리는 이유와도 같다.
항상 '시간이 없어'라는 말을 달고 살았다면, 그야말로 사상누각, 언제 무너져도 이상할 것이 없다. 인생무상, 씁쓸함이 교차된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왔을까. 그마저도 내가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면 그마저도 헛수고다. 자연스럽게 자신을 되돌아볼 수밖에 없다. 과거에 연연하거나 알 수 없는 미래에 저당 잡히지 말고 현재를 사는 게 의미 있는 가치로 환산된다. 케세라세라(Que sera ser 될 대로 돼라), 카르페 디엠(Carpe diem 현재를 즐겨라),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란 경구가 어느 때보다 절실해지는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