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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Mar 18. 2022

<문폴> 재난영화 특화된 롤랜드 에머리히라는 장르

벌써 지구를 몇 번이나 구했던 롤랜드 에머리히 감독은 이번엔 달을 지구로 떨어트리려고 한다. 이번엔 우주와 지구로 나눠 위험에 처한 인류의 고군분투를 다룬다. 그럴싸한 물리적 근거를 펼치지만 대부분 상상에 의한 공상이다. 말도 안 되는 억지 설정이라도 재미를 추구하는 상업영화의 미덕은 갖춘 셈이다. 이것저것 따질 것 없이 재미와 볼거리는 보장된 영화라는 소리다.     


그는 자신만의 재난 장르를 만든 장본인답게 이번에는 뚝심으로 밀어 붙인다. 이야기란 본디 기승전결이 있고 상황과 인물 간의 개연성이 있어야 한다는 규칙에 도전장을 내밀 듯 그가 만든 공식을 답습한다. 어떤 식으로든 지구 멸망 카운트다운을 이겨내는 인류의 승리라면 충분하다. 그래서일까. 신작 <문폴>의 황당한 설정도 재난 영화의 미덕으로 넘어갈 수 있을 만큼 간결하고 알기 쉽게 전개 된다. 마치 90년 대 영화로 회기하는 기분까지 든다.      


지구로 달 내려온다     
영화 <문폴> 스틸컷

10년 전 우주에서 위성을 고치던 NASA 연구원 브라이언(패트릭 윌슨)은 정체불명의 검은 폭풍을 만나 동료를 잃고 절망한다. 기절한 소장 파울러(할리 베리)를 데리고 고장 난 우주선을 가까스로 조종해 지구로 귀환하지만 그를 반기는 건 해고였다. 이후 이혼, 파산까지 연달아 겪으며 아들 소니의 양육권까지 뺏겨 그저 그런 삶을 살고 있던 중 이상한 제보를 받게 된다.     


자신을 거대 구조물 박사라고 소개하는 KC(존 브래들리)는 달이 궤도를 벗어났다고 주장하지만 아무도 믿어주지 않자 이를 세상에 공표해 대혼란이 발생한다. 결국 NASA 보다 더 빨리 알아낸 우주 덕후의 말이 전 세계를 움직이게 된다. 달과 지구 충돌까지 남은 시간이 대략 30시간. 어디로도 도망할 수 없는 절체절명의 상황, 시간이 없다. 달의 궤도 이탈로 지구는 화산 폭발, 지진, 해일, 산소부족 등이 각종 재난이 가중되고 대혼란에 빠지게 된다.      


음모론과 은폐설에서 출발     
영화 <문폴> 스틸컷

영화는 1969년 아폴로 11호가 2분간 교신 두절 이유를 50년간이나 숨겨 왔다는 음모론에서 출발한다. 감독은 달이 자연적으로 생긴 게 아니라고 믿는 사람들이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외계인이 만든 인공 조형물에 불과하다는 가설에 은폐설까지 덧붙여 상상력을 확장했다.     


항상 하늘에 떠 있어 친근하지만 모두 밝혀지지 않은 미지의 달은 영화의 단골 소재였다. 넷플릭스 시리즈 [고요의 바다]에서 보여준 월수의 개념이 공감을 얻었던 이유도 같은 맥락이다. 달이 지구와 가까워지면서 생길 수 있는 각가지 상황을 물리법칙을 적용해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과학은 말도 안 되는 상상에서 출발할 때가 많다. '이게 되겠냐' 싶은 발상, 0.01%의 가능성도 그냥 넘어가지 않고 집요하게 파고든 호기심이 인류 문명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계기가 된다. 영화라는 장르는 과학계가 오랫동안 참고하는 아이디어 뱅크기도 하다. SF 영화에서 기술, 물건, 건물, 설정을 현실로 이룬 사례도 많다. 어쩌면 훗날 롤랜드 에머리히의 세계관이 몇 년 뒤 현실이 될지 모를 일이다. 기후변화는 점점 심해지고 있고 영화 속 이야기가 현실이 되기도 하니 터무니없는 말은 아닐 수 있다.     


<문폴>은 <투모로우>와 <2012>를 잇는 지구 멸망 3부작으로 파괴왕의 감각이 죽지 않았음을 확인하는 데만 130분을 할애한다. <2012>의 클리셰를 그대로 반복하고 있지만 속아주는 셈 치고 볼 수밖에 없는 안하무인 매력이 있다. 머릿속을 비우고 싶을 때, 복잡한 설정과 개연성을 따지지 싶지 않을 때, 모두 때려 부수고 쓸어버리는 시원함으로 승부하는 영화다. 단, 중국 자본으로 인한 불편함은 호불호가 갈릴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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