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잘된 거야>는 ‘프랑소와 오종’의 신작이다. 초기 오종은 '욕망'을 주제로 흔들리는 인간의 나약함을 다채로운 시선으로 풀어냈다. <신의 은총으로> 이후 사회적 문제에 시선을 돌리거나 <썸머 85>처럼 자기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마음껏 펼쳐낼 수 있는 변화를 맞은 것 같다.
이번 영화는 ‘엠마뉘엘 베르네임’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했다. 인간답게 죽을 권리, 안락사를 소재로 했다. 그동안 안락사의 제도적 접근을 다룬 영화는 있었으나 개인의 입장에서 서술된 케이스는 잘 없었다. 이토록 논쟁적인 주제를 프랑소와 오종만의 스타일로 풀어냈다 아버지의 뇌졸중 이후 존엄사를 결심하고 실행까지 과정이 주마등처럼 흘러간다.
그의 영화 중 드물게 대스타가 총출동하기도 했다. 살아 있는 전설 ‘앙드레 뒤솔리에’, ‘소피 마르소’, ‘샬롯 램플링’의 앙상블로 만나볼 수 있다. 특히 아이가 되어버린 듯 떼쓰는 노년의 아버지와 중년의 아버지를 동시에 연기한 앙드레 뒤솔리에의 빛나는 메서드 연기가 압권이다. 무거운 주제 속에서 살아 숨 쉬는 유머는 일희일비하는 삶의 축소판처럼 보인다.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선택한 아버지
아버지(앙드레 뒤솔리에)는 나치 수용소 생존자였다. 당신만 살았다는 죄의식이 지배해서일까. 늘 삶을 어떤 식으로든 마감하고 싶어 했다. 그저 입버릇 같은 말이려니 생각했던 죽음이 현실로 다가오고, 최근 그 확고함을 느껴 버리고 말았다.
뇌졸중으로 쓰러진 아버지는 몸 한쪽이 거의 마비되다시피 했다. 제대로 먹지도 자지도 못했다. 조금 더 지나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자 비참함을 참지 못했다. 이윽고 생사를 넘나드는 위험한 순간이 지나고 겨우 안정을 찾아가는 듯했다. 완전히 회복된 건 아니지만, 정성스럽게 간호하면 나아질 거라 믿었다. 아버지는 기력을 찾았고 먹고 싶은 게 생겼으며 웃었다. 모든 게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믿었다. 진짜 속내는 까맣게 모르고 사랑하는 가족과 삶의 의지를 불태우고 싶어 하는 줄만 알았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아버지는 뜻밖의 이야기를 꺼내셨다. “끝낼 수 있게 도와다오” 청천벽력 같은 부탁을 하필이면 내게 하는 걸까. 맏딸이란 이유로는 부족했다. 고민스러웠다. 아버지 부탁은 꼭 들어주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의사 말로는 고통이 너무 심하거나 충격을 받아 충동적인 말 중 하나일 거라 했다.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 조금 더 경과를 보자고 했다. 하지만 끝내 아버지는 마음을 돌리지 않았다. 당신 스스로 품위 있게 죽을 권리를 선택했다. 과연 이 일을 돕는 게 맞는 건지 의심스러움은 커지기만 했다.
안락사의 신선한 접근 방식
프랑스에서 존엄사는 불법이다. 가족이라도 환자의 죽음을 돕는 건 명백한 범죄다. 어쩔 수 없이 앙드레는 85세 나이에 스위스 베른으로 가야만 했다. 엠마뉘엘(소피 마르소)은 아버지의 마지막 부탁을 묵묵히 따른다. 스위스의 단체에 연락해 절차대로 서류와 필요한 것을 알아갔다. 그렇다고 마음이 편한 건 아니었다. 악몽과 불면증에 시달리고 잦은 두통과 메스꺼움, 스트레스가 심해졌다. 동생 파스칼(제랄딘 팔리아스)과 잦은 의견 충돌도 있었으며, 아버지의 애인, 어머니(샬롯 램플링)와의 틀어진 관계까지도 해결해야 했다.
하지만, 결말을 지어놓고 보니 과정 하나하나가 소중한 추억으로 돌아왔다. 자식 된 도리로서 아버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으로 보였다. 죽기로 결심 했지만 오히려 따뜻하고 유머러스했다.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대신 적극적으로 선택하고 의지대로 행동하는 모습이 의연해 보였다.
누구에게나 찾아오는 죽음을 토대로 담담하게 풀어낸 목소리는 그 자체로 큰 울림을 준다. ‘사랑한다’는 말이 오고 가지 않아도 알 수 있었던 감정의 사소한 부분이 다가왔다. 죽음을 계획하자 사랑이 크게 왔다. 아버지는 오래 만나지 못한 친척과 친한 지인을 만나고, 일정을 조금 미뤄 손주의 연주회에 참석했다. 애인과 다툼을 풀고, 근사한 레스토랑에서 멋진 식사를 마치며 스위스로 떠났다.
안락사 단체 관계자는 마지막에 마음을 돌린 사례가 있다는 말로 끝까지 희망을 품게 한다. 몇 차례 철회해야 할 위기가 찾아오자 어떻게 될지 양가적 마음으로 관객도 숨 졸이게 한다. 생전 아버지는 가난한 사람은 죽을 기회조차 허락되지 않음을 비통해했다. 존엄하게 죽을 마지막 권리까지도 부의 불평등이 존재하는 세상이다. 그 세상에서 아버지는 당신의 뜻대로 이루셨다.
“부디 마음을 돌려주길 바랐지만 당신 뜻대로 하셨습니다.” 이 말은 안락사를 원하는 아버지를 보내고 딸인 엠마뉘엘이 했을 법한 말 같았다. <헤어질 결심>의 서래 대사로 응용해 멋대로 상상해 봤다. 우리나라였다면 과연 이토록 간결하고 깔끔하게 부모의 죽음을 그려낼 수 있었을까.
*이 글은 키노라이츠 매거진에도 게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