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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Oct 21. 2022

《유니콘: 유병재 대본집》 은은하게 돌아있는 스타트업


스타트업과 일해 본 사람은 안다. 겉으로 보면 수평적인 구조인 듯 보이지만 그 안에 은은하게 살아 있는 수직적 구조. 위계질서 분명한 한국에서 스타트업 한다는 것은. 미국의 아마존이나 애플이 되고 싶은 마음에서 맞지 않는 옷을 입고 억지로 괜찮다고 말하는 꼴일지도 모른다. '우리도 한 번 해볼까?', '기막힌 아이디어가 있는데..'로 시작했지만 폭망하는 스타트업이 대부분이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0.1%의 유니콘 기업(기업 가치가 10억 달러 이상인 스타트업 기업을 전설 속의 동물인 유니콘에 비유하여 지칭하는 말)이 되기 위해 오늘도 스타트업계 사람들은 밤낮없이 주말 없이 일한다.     


스타트업에 관한 드라마를 최근 몇 편 봤다. 디즈니플러스 [드롭 아웃], 파라마운트플러스 [수퍼 펌프스], 애플tv [우리는 폭망했다], 웨이브 [위기의 X] 세 드라마는 추천작이니 미국과 한국 스타트업에 대해 알고 싶다면 맛보기로 좋다. 유니콘이 되기 위해서 달려오다 유니콘 기업이 되었거나 폭망한 스타트업의 이야기다. 단, [위기의 X]는 대기업 차장이었다가 희망퇴직 당한 후 스타트업으로 이직한 중년 남성의 분투기다.     


작가 유병재는 어떤 사람?     


'유병재', 한국의 성공한 다방면에 두루 재능 있는 천재의 아이콘이다. 이미 작가, 코미디언, 유튜브, 가수, 배우 등 아티스트의 재능을 겸비했다. 일단 그의 대본집을 읽었으니 작가로서 이력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유병재는 SNL 코리아 방송 작가 겸 크루로 활동했다. 개그감이 상당하다. 개그맨 지망생이었다고 하니 이를 글에 투영한 대본은 웃길 수밖에 없다. 2015년 tvN [초인시대]의 주연과 극본을 담당했고 7년 만에 쿠팡플레이 시트콤 [유니콘]의 대본을 맡았다.     


유니콘은 어떤 시트콤?     

[유니콘]은 쿠팡플레이의 12부작 오피스 시트콤이다. 은은하게 돌아있는 '맥콤'의 CEO 스티브와 크루들의 대혼돈 K-스타트업 분투기다. 스타트업에서 한 번이라도 일해본 사람이라면 극 공감할 내용들이 빼곡하다. 유병재는 대본집에 기획의도를 명확히 적어 놓았다. 스타트업이 배경인 오피스 코미디가 아닌 '시작'에 관한 이야기라고. 시작이 반이라는데 시작하면 반은 무엇으로 채우고 아무튼 끝을 봐야 하지 않겠나.     


인정욕구와 허세로만 가득한 선장이 이끄는 배에 탄 크루는 습관적인 피보팅(pivoting, 급속도로 변하는 외부 환경에 따라 기존 사업 아이템이나 모델을 전환하는 것)이 취미인 회사에서 살아남기 위해 애쓴다. 거죽은 완벽해 보이지만 속살은 바보 같고 귀여운 사람들이 모여 있다.     


수평구조라며 누구누구 씨나 직함을 폐지하고 영어 이름을 쓰지만 여전히 압존법(듣는이를 고려한 존칭)을 강요하고, 감당 못할 반말 문화, 기업 내 화폐 제도, 비건 없는 사내에 비건 카페테리아도 도입했다. (일단) 야근 금지지만 불 꺼 놓고 여전히 야근 중인 한국 기업의 잔재가 남아 있는 거죽만 스타트업인 부조화가 웃음 포인트다.     

유병재 인스타그램

영화 <극한직업> 이병헌 감독의 총감독, 드라마 [멜로가 체질]의 공동 연출가 김혜영 등 제작진이 뭉쳤다. 대충 감이 오는 톤앤매너. 연기의 신으로 불리는 신하균과 원진아, 이유진, 김영아, 이중옥, 배유람, 허진석 등이 등장한다. 각자의 독특한 캐릭터 포지션이 있고 시트콤 형식답게 발랄하고 재미있다. 특히 오랜 신하균 덕후인 유병재 시나리오의 주인공이 된 성덕이 된 사례다. 신하균의 작품이나 과거 행적을 대본에 녹여 놓아 깨알 같다.     


유병재가 추천하는 관전 포인트     


하나, 지금 당장 '시작'하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에서 스타트업하기     


스마트폰 등장 후 언 10년. 그동안 세상은 너무 빠르게 변했고 변하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우습게 봤던 개인 방송 유튜브가 초등학생 미래직업 1위인 세상이다. 명문대를 졸업해 좁아터진 대기업을 들어가기 위해 목매달지 않는다. 시작하는 게 일인 스타트업은 이런 세상을 대변하는 명확한 집단이기도 하다. 그 안에서 일어나는 에피소드는 실패의 연속인 회사에서 무엇 하나 미약하게 성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보며 내 모습의 일부는 느낄 수 있을 거다.     


둘, 시트콤으로 보이는 '스타트업'     


최근 영화와 드라마에서 다루는 스타트업의 모습을 담으면서 은근하게 비튼다. 스타트업하면 뭐가 떠오르나. 파티션 없거나 통유리로 만들어진 사무실, 수평적인 기업문화, 유동적이고 자유로운 근무환경, 운동이나 게임을 할 수 있는 휴식공간과 신선하고 알찬 먹거리가 가득한 카페테리아 등. 창의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아등바등 한 티가 역력하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조금이라도 더 깨어 있기 위해 에너지 드링크로 연명하고 뱁새가 황새 쫓아가려다가 가랑이 찢어진다. 하지만 이것도 경험이라면 피 같은 경험이다. 실패를 쌓아 성공에 도달하는 거니까. 그 왁자지껄한 이야기가 [유니콘]에 함축되어 있다.     


셋, 귀여운 캐릭터와 저세상 회사     

유병재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가치로 내세우는 '귀여움'이 포인트다. 맥콤의 크루들은 짠하면서도 어딘지 미워할 수 없어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표현했다. 초반은 스타트업을 후반은 귀여움을 표현하려고 했다니 진짜 인지 확인해 볼 것! 맥콤은 수익창출과는 반대로 진행되는 일로 골머리를 앓는다. 어쩌면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유니콘, 이상적인 기업이다.     


넷, 스타트업인 줄 알았는데 세대 차이     


맥콤이 실패 후 새롭게 시작하려는 아이템은 실버 세대를 위한 매칭 서비스 'Again'이다. 나이와 관계없이 새로운 사람을 만나 언제든지 새로 시작할 수 있다는 서비스는 희망차 보이지만 돈은 되지 않을 것 같다. 위아래 좌우가 다르지만 뜨거운 용광로 안에서 지지고 볶으며 살아가는 청년, 장년 세대의 분투기다. 그러면서 고령화 사회를 맞이한 한국에서 어떤 어울림으로 살아가야 할지 고민하게 만드는 방점이 있다.     


유니콘 대본집을 읽어야 하는 이유     

90년대와 2000년대 초중반 우리는 얼마나 실험적이며 재미있는 그리고 시대를 앞서간 시트콤을 봐왔던가. [순풍산부인과], [세 친구], [안녕, 프란체스카],[웬만해선 그들을 막을 수 없다], [똑바로 살아라] [거침 없이 하이킥], [지붕뚫고 하이킥], [크크섬의 비밀] 등등 일단 시트콤을 즐겨 본 사람이라면 안다. 시트콤의 짧지만 강한 매력을.     


지금은 긴 드라마보다 20-30분 내외의 숏폼, 유튜브가 각광받고 있지만. 시트콤 형식이 바로 이것들의 원조인 것이다. 채널이 아닌 OTT로 간 K-시트콤의 현재와 미래를 보고 싶다면 읽어봐야 한다. 시트콤을 보고 나서, 보지 않고서도 즐겁게 읽을 수 있는 몇 안되는 극본집이다.     

오리지널 대본에서는 유병재의 파워가 글로 살아 숨 쉬는 각본집만의 콘텐츠가 들어있다. 에피소드마다 초기 기획안과 아이디어 스케치를 볼 수 있다. 평소 유병재가 글 쓰는 스타일과 캐릭터 빌드업, 전체적인 이야기의 초고를 엿볼 수 있다. 유난히 캐릭터 소개가 자세해서 시트콤에서 알지 못한 배경을 꼼꼼하게 파악할 수 있다. 드라마나 영화 작가를 꿈꾸는 사람들에게 유용한 교재로 쓰일 듯하다.     


드라마를 그대로 캡쳐 한 듯 고화질로 맛보는 대사 화보와 비하인드 스틸로 소장 가치가 충분하다. 또 하나의 극장점은 유병재 대사 스티커와 스탠딩 북마크로 유니크한 《유니콘》을 완성할 수 있는 점이다. 물론 영화, 드라마 등 콘텐츠가 여러 사람의 협업으로 만들어지만 그 시작은 어쨌든 '글'이다. 이를 통해 가지를 치고 살을 붙여 완성되는 게 콘텐츠다. 글 쓸 줄 아는 사람은 평생 먹고 살 수 있다. 은퇴도 없고 AI도 못 이긴다. 이런 재능을 가진 사람은 어떤 세상이 와도 흔들림 없이 유연하게 움직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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