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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노 인터뷰] 웨이브 '약한영웅' 유수민 감독

by 장혜령


웨이브 오리지널 8부작 시리즈로 제작된 [약한영웅 Class 1] (이하= 약한영웅)의 기세가 무섭다. 단순한 학원물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 집단 내에서 스며들어 있는 듯 없는 듯 살아가기 보다. 차별에 맞서고 아닌 건 아니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을 사회가 여전히 원하는 걸 알 수 있다. 지난 11월 30일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유수민 감독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수민 감독은 2017년 단편 <악당출현>이 미장센 단편영화제 4만 번의 구타 최우수작품상에 선정되면서 이름을 알렸다. 한준희 감독과는 당시 심사위원으로 만나 인연을 이어갔는데 많은 부분을 전수받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감독으로서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 등을 좋은 기회를 얻어 많이 성장했다고 한다.


웹툰을 재미있게 본 한준희 감독이 직접 제안을 주어 기쁘게 작업할 수 있었다고. 아이디어도 많이 주고 전적으로 믿어주는 부분이 좋았다고 대답했다. 대학생이 된 기분으로 공부하면서 어긋난 방향성을 잡아주는 멘토였다고 회상했다.

단편 <실버벨>(2015), <악당출현>(2017) 두 편을 만든 후 장편 영화가 아닌 8부작 시리즈로 데뷔한 독특한 케이스다. 그래서일까. 상업적인 작품을 하나 완성했다는 성취가 크지만, 좀 쉬고 싶다고 솔직한 심정도 전했다.


사진: 웨이브

6살 아래 동생 유수빈 배우와 매우 닮았다. 류승완, 류승범 형제, 엄태화, 엄태구 형제처럼. 감독과 배우 형제를 떠올리는 차세대 라인이 될 거란 확신이 든다.

유수민 감독이 영화를 시작하게 된 계기가 재미있었다. 군대에서 영화과 고참이 '데이비드 린치' 감독의 <블루 벨벳>을 보여 주었고, 그때 영화의 새로운 면을 발견했다. 보기 전과 후가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기분이었고, 큰 매력을 느껴 지금까지 걸어왔던 것 같다고 고백했다.

지금은 [약한영웅]에 대한 생각뿐. 차기작에 대한 물음엔 아직 이르다며 당황스러워했다. “구체적인 게 없지만 자전적 것에서 발전돼서 나올 수 있지 않을까”란 여지를 남겨 두었다. 차기작이 기다려지는 신인 감독의 탄생이다.





사진: 웨이브


=영웅이 약하다면 영웅이라 부를 수 있을까.연출자가 생각하는 ‘약한영웅’의 정의는 무엇인가?
“영웅이란 단순하게 힘세고 싸움을 잘해서만이 아니다. 전진하고 고난을 넘는 사람이다. 자신만이 아닌 누군가를 지키려고 했던 사람들이다. 십 대만이 가능한 감정선 순수함을 살리고 싶었다. 이 요소 모두가 캐릭터에 응집되어 있다. 어른 보다 나은 소년들에게 애틋한 마음이 생긴다.”


=세 캐릭터의 케미가 상당하다. 원작의 각색이 많아진 느낌이다. 시나리오와 연출 둘 다 하면서 중점을 둔 게 있을까.
“세 명 다 내가 조금씩 들어가 있다. 그 시기를 지나본 남자들은 다 알 거다. 서로의 취향이나 관심거리가 뭐건 간에 축구나 농구 한판 하면 그냥 친구가 된다. 2화에서 서로를 위해 싸운 건. 예를 들면 축구에서 이기고 신나서 고깃집 회식하러 간 거다. (웃음)”

“전체 과정이 1년 반 정도 걸렸다. 6개월 정도 시나리오를 쓰고, 프리 프로덕션 4개월, 촬영 4개월, 편집 4개월 정도였다. 좋아하는 웹툰이었고 영상화를 했을 때 누구나 공감할 수 있게 만들고 싶었다. 철없던 시절 한 번쯤 겪어봤을 것 같은 상황에 액션을 넣으면 재미있을 것 같았다.”

사진: 웨이브

=학교 밖의 아이들 석대와 영이는 어떤 존재이길 바랐나.
“소년과 어른의 대비가 선명하게 두었다. 하지만 석대는 좀 특별하다. 소년인데 어른 역할을 하고 있는 애어른이다. 무게감을 견디고 있는데 겉으로는 티 내지 않는 단단한 바위 같은 사람이다. 영이는 친구 사이, 묘한 질투심과 서운함을 유발하게 만든다. 친한 친구 사이에 누가 끼면 한순간에 냉랭해지기도 하잖나? 영이가 그런 존재다.”


=다양한 액션이 등장한다. 시은은 주변의 도구를 사용한 지능적인 액션을 선보이고 수호는 파이터의 기질 때문인지 화려하고 멋있다.
“일단 액션도 내가 재미있어야 했다. 화려한 기술과 볼거리도 물론 중요하겠지만 감성이 충만한 액션이라야 한다. 액션이 터지기 바로 직전. 서로의 감정이 맞붙은 그때를 가장 좋아한다. 시은은 원작에서 가져온 시그니처 액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사진: 웨이브

=시은을 연기한 박지훈 배우의 액션은 폭발력이 상당하다. 따로 주문한 연기 방향이 있을까.
“박지훈 배우는 알아서 잘하는 배우다. (웃음) 촬영 때마다 '늘 자기 한계를 깨고 있는 거 같다', '점점 더 나아지고 있는 거 같다'라며 재미있다고 하더라. [연애혁명] 때는 단순히 잘 하는 배우라고만 생각했는데 [멀리서 보면 푸른 봄]을 보고 확신했다. 따로 디렉션을 주기 보다 대화를 더 많이 했다. 이 행동을 캐릭터가 어떻게 느껴야만 하는지, 이유에 대해서만 말해줄 뿐이었다. 그저 나는.. 어깨 한 번 토닥여주는 정도였다. (웃음)"

"다만 처음 액션과 끝이 조금 달랐으면 했다. 1화에서 커튼 액션 장면 경우, 상대방 얼굴에서 피가 나와야 되서 연습을 많이 했다. 안전 소품을 준비해 최대한 안전하게 촬영했다. 반면, 8화의 경우는 좀비처럼 해야 했다. 넋이 나가 있는 상황이다. 몸과 마음의 에너지가 고갈된, 쥐어짜도 물이 안 나오는 수건 같은 상태였으면 했다. 그걸 박지훈 배우가 잘 살려줬다. "


=수호 역할의 최현욱 배우의 액션은 어땠나? 액션 장면도 많지만 중요한 순간엔 꼭 뭘 먹자는 말이 많아서 피식거리게 된다.
“최현욱 배우가 열심히 준비해 왔다. 체육관에 등록해서 기술도 배우면서 파이터의 마음가짐과 경험을 구체화해주었다. 액션 스쿨에서 무술 트레이닝도 했다. 수호는 과거 운동을 했지만 그만둔 아이라서 액션도 노는 것처럼 해달라고 주문했다. 최현욱 배우가 영리한 게 대본의 방향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애드립을 친다는 거다. 그게 몇 번 터진 거 같다.”

=시은과 범석의 구원 서사, 대비되는 캐릭터가 인상적이다. 무심한 듯 무척 따뜻한 정서도 반영되어 있다. 애틋하게 보이려고 신경 쓴 장면이 있을까?
“현재 학생들이 겪는 문제와 범죄가 다 들어가 있도록 했다. 범석이 겪는 일은 겉으로 더 안 보이는 거다. 말하자면 보기 싫은 현실이다. 그리고 소년의 성장통을 다루고 싶었다. 친구 사이의 첫우정,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를 경험하면서 성장하는 거다. 그래서 시은과 범석, 시은과 수호 사이에 애틋함 느껴지는 거 같다.”


=범석 캐릭터가 눈에 들어온다. 원작에서는 더욱 나쁜 쪽으로 열등감이 폭발하는 캐릭터지만 시리즈에서는 폭력의 희생자, 피해자가 되어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배우 홍경을 선택한 이유도 궁금하다.
“홍경 배우는 <결백>에서 처음 봤을 때 놀랐다. 신인인데도 쟁쟁한 선배 곁에서 위축되지 않더라. 범석을 단순한 악인이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다. 그 친구의 심정을 잘 이해할 수 있게 그려보고 싶었다. 유학 가는 것도 친구를 지켜내려는 나름의 방식으로 희생한 거다. 각자의 방식으로 친구를 위해 희생하는 약한영웅들이다.”


사진: 웨이브


=어른들은 왜 집단에서 배제되거나 무관심한 걸까. 나쁜 어른들이 너무 많이 나온다. 특히 범석 아버지는 세속적인 정치인으로 등장하고 짧지만 범석의 전사를 이해하는 데 탁월하다.
“가족사진에서 보이듯이 네 식구다. 아마도 형은 이 집안에 환멸을 느껴 집을 나갔을 것이고, 엄마도 있으나 없으나 한 사이였을 거다. 사실, 편집된 부분이지만 엄마가 거실에서 TV 보는 장면이 있기는 했다. "

"(어떻게 들리지 모르겠지만) 어른도 각자의 입장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 길수도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거다. 담임마저도 폭력 사건을 덮어야 하는 위기가 있다. 반면, 아이들은 그저 단순하고 순수하다. ‘우정’, ‘친구’하나면 있으면 된다. 그게 비교되니까 어른들이 더 나빠 보이는 게 아닐까.”


=친동생 유수빈 배우가 마지막 화에 깜짝 등장한다. 의도된 설정인가? 마치 시즌 2를 염두에 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동생이 흔쾌히 허락해 출연을 결정했다. 동생과는 어릴 때부터 영화 이야기를 자주 주고받는 사이였다. 어릴 때부터 개그맨이 되고 싶어서 연기 학원도 다니고 활동적이었다. 최근 연극 ‘사나이 와타나베’를 하고 있는데 매번 아쉽다고 하더라. [약한영웅]을 보고는 한 마디 툭 던지더라.. ‘찢었다!’라고 (웃음)”

=키노라이츠 회원들이 궁금해할 마지막 질문이다. 좋아하는 감독이나 작품을 꼽자면?
“좋아하는 감독은 ‘쿠엔틴 타란티노’다. 극장 첫 영화는 <라이온 킹>이었다. 사자가 떨어지면서 물소 떼가 마구 달리는 장면을 잊지 못하겠다. 스펙터클해서 너무 깜짝 놀랐다. 몇 년 전 서울아트시네마에서 본 ‘앙리 조르주 클루조’ 감독의 <공포의 보수>도 좋아한다.”






학교는 사회에 나오기 전 가장 작은 집단이다. 서열관계가 뚜렷한 집단, 군대 이전의 작은 사회가 학교인 것 같다.

유수민 감독은 시나리오를 쓰면서 취재하고 인터뷰하며 실제처럼 보이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펜타닐, 스포츠 도박도 요즘 겪는 입시나 학폭보다 일상인 일이더라. 그 사실에 적잖이 놀라웠다. 그가 만든 벽산고 세계관, 약한영웅이 선보이는 정의 속으로 들어가 보자!


+이 글은 키노라이츠 매거진에도 게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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