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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Dec 15. 2022

[키노 인터뷰] '약한영웅' 한준희 크리에이터

"학교판 D.P"란 말 듣기 좋다"


약한영웅 Class 1] (이하= 약한영웅)은 11월 18일 이례적으로 전 회차가 공개되었다. 반응은 뜨거웠다. K-남고의 정수, 학생판 D.P라는 말로 다 설명할 수 있을까? 웨이브 오리지널로 제작되어 2022년 웨이브 유료 가입자 견인 1위를 달성한 효자 콘텐츠다.



중심에 있는 세 배우는 말 할 것도 없고 이들을 이끌어 낸 유수민 감독과 한준희 크리에이터의 협업이 빛났다. 재미는 물론 웰메이드 작품으로 가는 길을 만들었다. 부당함을 참지 못하는 MZ 세대의 폭발적이고 전폭적인 지지까지 얻어냈다. 전지전능한 영웅이기 보다 유약하지만 똘똘 뭉쳐 헤쳐나갈 수 있는 영웅. 전체적으로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하는 이야기다.

지난 11월 30일 삼청동의 카페에서 작품의 궁금증을 해소하는 시간을 가졌다. 영화 <차이나타운>, 드라마 [D.P]의 한준희 감독과 만나 이야기를 들어봤다. 한국에는 아직 생소한 크리에이터의 역할과 책임감, 앞으로 만들어질 콘텐츠의 미래까지 그려 볼 수 있었다.





=한준희 크리에이터는 ‘서패스’, ‘김진석 작가의 네이버 웹툰 <약한영웅>을 보다 시리즈화하기로 했다. 원작의 세 친구의 서사를 확장하고 프리퀄로 볼 수 있는 전사를 충실하게 풀어냈다.

“원작에서 시은의 과거 회상이라 할만한 프리퀄을 좋아했다. 내가 보고 싶었던 인물이었던 거 같다. 원작을 훼손하지 않는 선에서 서로 좋았던 시절의 관계를 다루고 싶었다. 그래서 수호와 범석을 각색했다. 수호는 원작의 박후민(바쿠)과 합쳐진 캐릭터다. 원작에선 분명 멋있는 인물이지만 영상화에서는 핍진성을 획득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범석도 입체적으로 확장했고 변주를 주어 완성했다.”

=웹툰에서 8편의 시리즈로 만들면서 어떤 점에 중점을 두었을까. 영화와 시리즈 모두를 해봤고, 웹툰의 영상화 경험이 있는 만큼 차이점을 확실하게 느꼈을거다. 전편공개의 부담은 없었을까.

“영화는 2시간 동안 주인공 한 명을 쫓아가는 친절한 매력이 있다. 그래서 집중도가 높다. 시리즈는 영화보다 인물들의 전사를 담을 수 있어서 좋아한다. 여러 인물의 사연을 이야기할 시간이 충분해 인물에 대한 표현은 시리즈를 이용하는 편이다. 그래서 [약한영웅]을 처음부터 전편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점을 웨이브도 흔쾌하게 결정해 주었다. 한 호흡에 보고 여운을 떠안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래야 시청자도 확장하고 입소문도 더 날 거라고 봤다. ”



제공: 웨이브

=시은, 수호, 범석 세 친구의 케미가 상당하다. 신인 배우와 감독과 작업이라 걱정이 있었을 거 같다.
“오디션은 따로 보지 않았고 캐스팅 제안을 했던 배우들이 운 좋게 모두 오케이 했다. 많은 시간 캐스팅에 할애했다. 무대, 독립영화, 웹드라마 등을 봤다. 이 배우가 어떤 표정으로 이 장면을 살릴 수 있겠다고 판단했고, 세 배우가 각자의 위치에서 잘 해냈다. 셋의 감정 변화가 중요했기에 일부러 캐릭터 밸런스를 맞추었다. 8부작을 이끌어 가려면 셋 다 동력이 있어야 한다고 봤다.”

=정서적인 포인트가 따로 있을까.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세 인물의 분량을 분배한 점이 인상적이다.
“결과적으로 배우 필모그래피에 누가 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임했는데 좋게 나왔다. 신인 필모에 보탬이 되어서 뿌듯하다. 성별과 나이에 치우치지 않고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셋 중 한 사람에게는 있지 않을까에 집중했다. 학창 시절 시은이처럼 하고 싶었는데 못 했다든지, 수호처럼 되고 싶었는데 그러지 못했다든지. 동경하고 싶은 친구, 따라 하고 싶은 시절에 초점을 두었다.”

“대본을 최대한 유기적으로 만들고, 세 배우의 톤앤매너를 맞추려고 했다. 배우에게 중요한 것은 분위기, 매력, 연기라고 본다. 박지훈 배우의 분위기, 최현욱 배우의 매력, 홍경 배우의 훌륭한 연기력 삼박자가 완벽한 균형을 이룬 거 같다.”



사진: 웨이브


=가출팸인 전석대 역의 신승호, 영이 역의 이연의 존재감도 상당하다. 원작에 없는 오리지널 캐릭터다.
“신승호 배우는 좋은 감독님과 작업할 거라며 시나리오를 주고 설득했다. 스케줄 때문에 어려웠는데 선뜻 응해 주었다. 이연 배우는 세 인물을 이어주는 유기적인 존재가 있어야겠다고 생각했다. 1화는 연시은이 알을 깨고 나오는 이야기다. 그 범주가 학교였다면 학교가 아닌 밖이어야 했다.”

=그동안 남성 집단을 배경으로 자주 이야기해왔다. 다음 작품으로 염두에 둔 소재가 있다면 들려달라.
“젠더를 먼저 정하고 이야기를 만들지는 않는다. 이야기를 먼저 생각하다 보니 남성 집단이 주가 되었다. 창작의 첫 번째는 '재미있는 이야기'다. 대한민국 자체가 거대한 조직이다. 학교, 회사, 조직 내에서 개인 의견은 무시된다. 개인의 생각은 있지만 드러내기 어렵다. 조직의 논리, 룰을 따라가야 하는 상황이다. ”

“군대와 남고가 배경이라 자연스럽게 남성을 주인공으로 한 것뿐이다. 여성 집단을 고려하지 않은 건 아니었다.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의 소년(10대), 청년(20대 초반)의 이야기를 해왔다. 연작까지는 아니더라도 기회가 된다면 20대 중후반의 이야기를 해보고 싶다. 20대가 재미있게 볼 수 있고 공감할 콘텐츠를 고민하고 있다. 그 나이 때가 학교, 군대라는 사회를 지나면서도 청춘의 마지막인 타이밍이고 맞아떨어진다.”

=작품이 PTSD를 너무 잘 표현한다고 호평 일색이다. 자존심이 상한 걸 겉으로 표현하지 못하는 일종의 일그러진 남성성과 심리 말이다.
“누군가는 집단의 부조리를 말해야 한다고 느꼈다. 잘되지 않더라도 애써 보기라도 해야 하는 게 아닐까. [D.P]에서는 잘못된 건 잘못되었다고 말할 줄 아는 고지식한 인물이 바로 '안준호(정해인)'였다.”

사진: 웨이브

=웹툰을 좋아하는 사람도, 시리즈만 본 사람도, 둘 다 만족하는 반응이다. 특히 캐릭터 중에 자신을 이입하는 경우가 많더라. 시청자가 자신을 이입한다는 건 소위 ‘터졌다’라고 말할 수 있는 단계다.

“올해 부산영화제에서 반응이 꽤 좋았다. 물론 영화제는 우호적인 분들이 많은 자리라 감안했지만 조금 안도하는 느낌을 받았었다. 후반 작업을 하고 있을 때라 정신없었지만 복기해 보자면. 시은이가 자기 뺨을 때릴 때 감이 왔다. 업계 용어로 ‘실터치(실제로 때림)’라고 하는데 박지훈 배우의 임팩트가 강렬했다. 압도적이었다. 지문의 한 줄을 저렇게 표현할지 몰랐다.(웃음)”


=크리에이터라는 포지션은 해외에서는 흔하지만 국내에는 낯선 개념이다. 감독이 아닌 크리에이터의 역할이 궁금하다.
“(웃음) 사실 나도 정의를 찾아가고 있는 중이다. 작가들과 함께 하면서 관여하는 미드의 쇼러너(showrunner)와는 개념이 다르다. 큰 방향에서 대본, 캐스팅, 촬영, 편집까지 관여하고 설득해 나가는 직책이다. 유수민 감독이 좋아하고 잘하는 게 뭔지 잘 알고 있는 사람이 나였다. 그만의 색깔을 잘 찾을 수 있게 돕는 게 가장 중요한 포지션이었던 거 같다. 늘 한 발짝 떨어져서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했다. 연출자는 아무래도 객관적이지 못하니까.. (웃음)”


사진: 웨이브

=유수민 감독과는 미쟝센 단편영화제와 인연이 있다. 실제 2살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자기보다 젊고 에너지 있는 감독이 잘 어울리겠다며 유수민 감독을 추천했다.
“유수민 감독은 2017년 미쟝센 단편영화제 때 알게 되었다. 4만 번의 구타 최우수작품상을 받은 <악당출현>이 계기다. 그때 김성수 감독과 심사를 했다. 눈여겨 본 친구였고 따뜻한 정서를 잘 표현할 수 있겠다 싶었다. [약한영웅]이 학원물이기 때문에 날카로운 구석도 필요하지만 관계의 서정적이고 서사적인 부분을 더 넣었으면 했다. 시사회 때 김성수 감독이 보고 나서 좋은 코멘트도 해주었다.”


=좋아하는 대사나 여운이 남았던 장면이 있다면..
좋아하는 대사는
 “우린 친구 아니냐?”  다. 벽산고 일진 영빈이 시은을 때리려다가 범석이 그만하라고 하자 내뱉는 대사다. 나는 너를 위해서 이렇게까지 했는데 서운하다는 말이었다.


“감히 벽산을 건드려?” 이 대사도 좋아한다. 영빈의 오른팔 정찬의 대사다. K-남고생스러운 정서가 반영되었다. 때려도 우리가 때리다는 의미, 우리 식구라는 복잡한 정서가 깔려있다.”


“좋아하는 장면은 범석이가 전학교 일진을 마주치는 노래방 시퀀스다. 어떤 공포영화보다도 무서웠다. 자판기에서 음료수를 꺼내다가 만나게 되는 장면인데 [D.P]의 연속성도 보여주었다.”


사진: 웨이브



=현장에는 가끔 들렀지만 연출엔 관여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래도 자신의 색깔이 들어간 시그니처가 있을 거 같다.
“이 작품은 폭력적인 수위가 세지만 전반적으로 따뜻하다. 그 이유는 유수민 감독의 색깔 때문이다. 나라면 좀 더 날 서 있을 수도 있고 화를 낼 수 있을 것 같은 장면도 다른 관점으로 끌어내더라. 결국 이 작품은 관계와 정서에 대한 거다. 다른 관점으로 보자고 초반에 둘 다 동의하고 시작했기 때문에 관여하지 않았다. (웃음)”

=결국 모두가 조금은 아프지만 성장했다. 실패를 거듭하면서 상처 입고 어른이 되어가는 것 같다. 시즌 2의 기대를 해봐도 좋을까.
“모두 연시은이란 인물에게 영향받아 조금씩 성장한다. 수호는 남신 경 쓰지 않고 살았다가 개입하게 되었고, 비뚤어진 방향이긴 하나 범석도 실패한 관계를 통해 성장했다. 옳은 방향이 아니더라도 변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했다. 십 대 후반에는 친구가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모든 것을 쏟아붓지 않나. 지나고 보면 별것도 아닌데 말이다. 흔들리는 10대, 《데미안》의 유명한 대사를 1화에 넣은 것도 원형이기 때문이다. 시즌 2는 아직 조심스럽다. 논의된 건 없다. ”



[약한영웅]은 외모부터 성격, 성적까지 다른 연시은, 안수호, 오범석이 교내 폭력에 맞서고 우정을 나누지만 서서히 금이 가기 시작하는 이야기다. 동명의 인기 웹툰을 바탕으로 이기기 보다 서로를 지키는데 맞서는 독특한 학원물이다. 웨이브 오리지널로 N차 정주행을 유발하며 각종 짤과 대사맛집 파워를 보여주고 있다.



+이 글은 키노라이츠 매거진에도 발행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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