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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혜령 Apr 19. 2023

<렌필드>직장 상사의 괴롭힘에서 벗어나는 단호한 방법

500년도 더 된 뱀파이어를 소환하는 기발함


사람들은 왜 나이 많은 드라큘라에게 여전히 열광할까. 목이나 손목에 송곳 같은 이빨을 드러내고 흡혈하는 행위가 욕망에 충실해 보여서인가. 젊음을 유지하는 영생, 이 닿을 수 없는 초월적 욕망에 충실하기 때문일까. 최근 들어 좀비에게 인기를 내어주긴 했지만 여전히 사랑받는 괴물 드라큘라. 역시 뿌리가 튼튼한 원작이 있으니 쭉쭉 뻗어나가는 이야기 가지가 풍성한 건 당연하다.


500년도 더 된 드라큘라를 소환하는 기발함

영화 <렌필드> 스틸컷

19세기 ‘브램 스토커’의 소설 《드라큘라》 (1897)에서 출발한 16세기 캐릭터는 다양하게 재해석되었다. 영어덜트 소설을 원작으로 한 <트와일라잇> 시리즈부터 최초의 흡혈귀 영화라 불리는 ‘F.W 무르나우’ 감독의 무성영화 <노스페라투>,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감독의 <드라큘라>, 넷플릭스 시리즈 [드라큘라], 스웨덴 영화 <렛미인> 등. 필자는 죄근까지 닥치는 대로 도장 깨기 하며 최애 크리처를 탐구해갔다.


드라큘라는 시대와 나라, 영화와 드라마 포맷 등으로 각색되었지만 기본은 동일하다. 동유럽 출신이며, 사람 피로 영생하는 언데드다. 이를 동구권의 서구권 복수로 읽기도 하고, 전염병을 몰고 오는 원흉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혼자, 살며시, 어둡고 음산할 때 다닌다. 때로는 다수의 인간과 다른 소수의 존재를 상징한다. 이민자, 인종, 성차별이나, 전통과 과학, 본능과 이성 등의 해석도 가능하다.


그는 성에 사는 백작이고 신사다. 상대방의 초대를 얻어야만 집안에 들어갈 수 있다. 햇빛을 보면 불타버리고, 십자가에 약하며 인간을 홀려 먹잇감으로 삼고야 만다. 낮에는 고향 땅에서 가져온 흙이 깔린 관에서 자고 밤에 활동하는 야행성이다. 때때로 박쥐, 늑대 등으로 변신하기도 한다.


주변 인물도 화려하다. 변호사이자 공인중개사 조나단, 그의 약혼자 미나, 심복 렌필드, 교수 반 헬싱 등이 등장한다. 지금까지 드라큘라를 모티브 한 작품이 많아서 다 열거할 수 없을 지경이다. 최근에는 정신병원에 수감되어 있던 추종자이자 하인 렌필드의 시점에서 서술된 영화까지 등장했다.


90년간 퇴사 없는 종신 일자리의 덫

영화 <렌필드> 스틸컷

<렌필드>는 드라큘라와 렌필드를 상사와 부하 관계로 풀어 웃음과 케미를 선사하고 있다. 렌필드는 상사의 폭언과 폭력, 끝나지 않는 업무와 지속된 괴롭힘에 시달리고 있다. 동반의존증과 우울증에 자존감은 바닥난 지 오래다. 하지만 쉽게 끊지 못해 힘들어한다.


먼 옛날, 부동산 전문 변호사였던 렌필드(니콜라스 홀트)가 드라큘라 성에 취직해 정규직이 되면서 시작된다. 평생직장과 영생 보장을 빌미로 사악한 꼬드김에 넘어가 종신계약을 맺게 된다.


벌레를 먹으면 슈퍼 히어로급의 능력이 생겨 우쭐해지기도 한다. 그러나 파워는 드라큘라(니콜라스 케이지)를 지키고 거처를 옮기는데 할애한다. 애초에 잘못된 만남이었다. 가족도 버리고 욕망을 좇은 결과는 참혹했다. 휴가도 반납, 밤낮없이 죽도록 일만 해왔다. 결국 번아웃이 온 렌필드는 이 관계를 벗어나고만 싶다는 생각이 차오른다.


쇠약해진 주인님을 밤낮없이 보필하고, 신선한 먹이(?)를 잡아 바치는 데만 90년을 할애했다. 지쳐버렸고 이제는 좀 쉬고 싶다. 그러던 어느 날, 해로운 관계를 청산하고자 중독 치료 모임에 참여한 렌필드는 비슷한 처지인 사람들을 만나며 위로받는다. 우연히 지독한 상사의 가스라이팅을 단번에 해치워 줄 경찰 레베카(아콰피나)를 만나 조심스레 퇴사를 결심한다. 자존감을 회복하고 홀로서기를 할 용기를 얻게 된다.


상사의 가스라이팅 이젠.. 벗어나고 싶어요

영화 <렌필드> 스틸컷

영화는 만화적 상상력과 우스꽝스러운 B급 유머로 시종일관 떠든다. 색다른 재미와 유머를 보장한다. 꼰대 사장과 직속 비서 관계로 고전을 비틀었다. 원작에서 조나단 하커의 역할을 렌필드가 맡아 유쾌하게 재탄생 되었다. 연쇄 살인마와 탐정의 관계로 재해석된 드라큘라와 반 헬싱을 애증의 관계로 삼은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드라큘라]처럼 흥미롭다.


자신보다 약한 상대에게 빨대 꽂고 야금야금 피 빨아먹는 악랄한 상대를 처단하는 온갖 상황이 펼쳐진다. 상사 갑질에 분을 삭이기만 하는 슈퍼 을의 입장에서 서술되다 보니 내 이야기 같아 통쾌하다.


호러 장르의 오랜 전설답게 유혈낭자, 사지절단, 파괴지왕 액션은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고어물에서 등장하는 잔인한 장면이 여과 없이 등장한다. 일과 관계에 지친, 해방을 꿈꾸는 직장인을 대변하는 통쾌한 복수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두 니콜라스의 찰떡같은 캐릭터 소화력이 기대 이상이다. 오래된 캐릭터를 재활용한 ‘크리스 맥케이’ 감독의 기발한 솜씨는 뉴트로의 영화적 변주로 기억될 것 같다.


덧, 쿠키영상은 없지만 엔딩크레딧의 깨알같은 재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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