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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OTT 수다

속편제작 무산된 비운의 시리즈 3편

기껏 정주행했는데..이거 나만 재미있었던..거늬..?

by 장혜령

무한한 콘텐츠의 바다 OTT를 항해하다 보면 다양한 작품을 접한다. 이때 남들 다 보는 TOP 10 리스트 보다, 개인 취향에 맞는 작품을 만날 때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내가 숨은 보석을 찾았네?” 하지만 신나게 정주행했는데 뒤 이야기가 나오지 않아 고구마로 시즌을 마무리했던 작품이 꽤 있었다.


답답하고 궁금한 상황을 해결하지 못하고 엉겁결에 시즌을 마무리해야 하는 심정은 겪어 본 사람만 알 거다. 그래서 준비해 봤다. 나만 즐거우면 될 줄 알았는데.. 더는 만들어주지 못한 슬픔, 사심 가득한 시리즈를 소개한다. 누가 또 아나? 꺼진 줄 알았는데 어디서 활활 불 붙여 줄지. 내게는 웰메이드였지만 아쉽게도 다음 시즌이 무산된 3편의 시리즈를 묶어 봤다.




디즈니플러스 시리즈 [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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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플러스 시리즈 [킨]은 21세기의 흑인 여성이 1800년대로 시간여행하며 겪는 살벌한 에피소드를 담고 있다. 미국 작가 옥타비아 버틀러의 대표작이면서도 1979년 출간된 후 꾸준히 미국 교과서에 실린 작품이다. 시리즈는 총 8부작이며, 원작의 등장인물과 기본 설정을 유지하고 있다.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사망으로 재산을 물려받게 된 작가 지망생 데이나(말로리 존슨)는 부푼 꿈을 안고 LA로 이사 왔다. 그러던 어느 날, 식당 웨이터 케빈(미카 스톡)의 차를 얻어 타고 집으로 향한 데이나. 이후 두 사람은 급속도로 친해졌고 하룻밤을 보내게 되면서 일이 꼬이기 시작했다.


한밤 중 노예 제도가 합법인 19세기 메릴랜드(남부)의 플랜테이션 농장으로 불려가게 된 데이나는 죽을 뻔한 아기를 구하게 된다. 대체 무슨 일이 왜, 일어나는 건지 알아차리기도 전, 몇 번이고 같은 장소로 소환되는 일이 잦아진다. 언제 또 소환될지 알 수 없어 불안하던 매일. 이번에는 케빈과 함께 동행하게 된다.


같은 시대에 떨어졌는데 백인 남성인 케빈과 흑인 여성인 데이나는 전혀 다른 경험을 한다. 개인의 의지로 바꿀 수 없는 상황은 누군가에게는 공포,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데이나는 주인 책을 읽었다거나, 복종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채찍을 맞아 등이 찢기는 고통을 참아야 했다. 반면 케빈은 호화 생활은 물론 한가롭게 피아노를 치며 재능을 인정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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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여행은 흔히 판타지아니였나?


[킨]에서는 회차가 거듭될수록 더 이상 낭만이 아닌 생존이 된다. <미드 나잇 인 파리>처럼 시간 여행으로 삶을 뒤흔든 작가를 만나 영감을 얻거나, <어바웃 타임>처럼 사랑을 이루는 즐거움이 아닌, 존재 이유를 만들어 가야만 하는 숙명이 펼쳐진다. 이 과정이 [킨]에서는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진행되니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조마조마한 시청자의 마음을 들쑤시며 안달복달하게 만든다.


데이나가 시간여행하는 이유는 바로 ‘혈연’이란 공통점이다. 제목이 ‘킨’이지만 원제는 KINDRED 혈통, 친족이란 뜻이다. 루퍼스가 죽으면 데이나는 존재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 후대가 선대를 보호해야만 하는 특별한 할아버지의 역설(타임 패러독스)을 주제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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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일까. 이 시리즈는 단순한 SF 장르, 흔한 타임슬립물이 아니다. 인종, 젠더, 권력 등 인류의 근원적인 문제점과 가족에 대해 다룬다. 페미니즘과 인종차별, 노예제도까지 한목에 담은 SF 드라마, 그 이상의 역사서이자 흔치 않은 작품이다. 스타일면에서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이 떠오르기도 했다. 시대와 나라는 다르지만 노예 제도의 문제점을 다루며 당시의 시대상을 훑어볼 수 있는 매력이 있었다.


“나의 잃어버린 8시간을 돌려줘!” 시즌 2에서 알려주겠거니 기다렸던 떡밥을 수거할 수 없어 소설을 읽어봐야만 했다. 비록 다음 이야기를 지켜보지 못하게 되었지만 숨 가쁘게 원작까지 읽으며 푹 빠져 있던 시간은 돌이켜 보니 즐거웠다. 시즌제를 염두에 두고 시작했겠지만 기대만큼 수요가 없었을 거다. 부디 다른 곳에 부활하길 기대한다. 아득한 시대에 낙오된 데이나가 집으로 돌아갈 방법을 터득했듯이, 다음 시즌 희망을 끝까지 버리지는 말자.




넷플릭스 [18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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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미국으로 향하던 배가 실종된다. 배는 다양한 인종이 타고 있었고 각자의 사연을 숨기고 아메리칸드림을 꿈꿨다. 하지만 기이한 일들의 연속이다. 몇 개월 전 실종되었던 프로메테우스호가 발견되었는데 승객은 전원 증발된 상황이다. 그 안에서 유일한 생존자인 소년은 의문의 피라미드를 갖고 있다. 과연 이 배는 무사히 승객을 태우고 뉴욕에 당도할 것인가? 아니면 앞선 배처럼 실종된 채로 어딘가로 표류할 것인가?


넷플릭스 [1899]는 시대극을 좋아한다면 추천한다. 독일 시리즈 <다크>의 보급형이라 불리며 미스터리한 실체에 조금씩 다가가는 컨셉이다. 그 이유가 마지막 화에 밝혀지게 되는데 다른 영화에서 봐왔던 반전이라 크게 놀랍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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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 흥미로웠다. 시대물을 좋아하거나 요즘 유행하는 인위적인 PC가 아닌, 자연스러운 다인종 배우가 배치되어 개연성을 갖는다. 특히 <리틀 조>로 알게 된 에밀리 비첨과 <덩케르크>의 아뉴린 바냐드 부부 설정이 좋았다. 에밀리 비첨이 연기하는 과학자를 두 번째 만나게 되었는데, 모성과 이성 사이에서 갈등하는 여성 엘리트의 모습을 잘 연기해서 두 번 다 반하게 되었다.


그러나 나만 재미있었던 시리즈는 이번에도 제작 취소를 피할 수 없었다. 시즌1에서 등장인물과 상황을 소개하고 드디어 그 이유에 대해서 말해 줄 것 같았는데.. 외신 기사를 찾아보니 시즌 2가 갑자기 취소된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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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람들과 어떤 세계관을 공유하는지, 남편, 아들, 아빠는 대체 죽은 건지. 생존한건지 시청하는 알 길이 없이 붕떠 버렸다. 제작진이 시즌 2,3까지 염두에 두고 썼다고 했는데 이런 식의 중단은 시청자 기만이다. 시즌1의 결말이 전혀 납득되지 않아 당장 시즌2 수혈이 시급한 시리즈였다. 넷플릭스에서 제작 취소했지만 제발 다른 데서라도 가져가서 제작해 주길 바란다.



넷플릭스 [소년심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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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심판]은'소년형사합의부'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다. 한 재판에 총 3명의 판사가 입각해 공정한 판결을 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인다. 단독재판, 소년보호 사건이 원칙인 가정법원 소년부를 모델로하며 작가의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부서다.


소년형사합의부에 부임한 엘리트 심은석(김혜수)을 중심으로 마음 따뜻한 좌배석 차태주(김무열)와 존경받는 부장판사 강원중(이성민), 판결은 속도전이라 믿는 부장판사 나근희(이정은)와 얽히고설킨 이야기를 들려준다. 에피소드별로 뜨거운 논란이 되었던 이슈를 녹여 섬뜩한 기시감을 안긴다. 캐릭터는 살아 있다 못해 활개 치며 뛰쳐나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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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발률을 근거로 갱생이 안 된다고 믿는 처벌 주의 판사 심은석과 미결 사건도 많은데 한 사건을 질질 끌 수 없다고 믿는 계산적인 나근희 판사. 그런데도 소년의 교화를 믿는 차태주와 강원중 판사가 대립하며 서스펜스를 유발한다. 그동안 법조계와 관련된 로스쿨, 검사, 변호사 등은 다루었지만 소년부 판사라는 생소한 영역의 정보를 전달해 신선함도 최고다. 네 판사와 소년범을 연기한 배우들의 불꽃 튀는 연기 대결을 방구석 1열에서 직관하는 재미가 있다.


하나의 사건에는 가해자와 피해자만 존재하는 게 아니다. 방조, 은폐한 사람, 사회, 국가도 책임이 있다. 따라서 완벽한 판사란 존재할 수 없고 시간이 지체될수록 상처받는 사람도 늘어난다.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처럼 순번과 우열을 가릴 수 없어 답답하고 울분이 터진다. 극 중 4명의 판사 누구에게도 딱 떨어지는 응원을 보낼 수 없는 복잡한 마음이 커지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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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심판]은 공개 당시 엄청난 트래픽으로 몰리는 콘텐츠가 아니었다. 공개 직후 다른 시리즈보다 상위권에 머물지도 못했다. 하지만 소년범과 판사의 촘촘한 서사와 묵직함이 뒷심을 발휘했다. 어딜 가나 [소년심판] 이야기였다. 상위권을 몇 주째 유지했었고 동심원을 이루듯 파장은 커졌던 월메이드 시리즈였다. 하지만 출연자 오디션까지 봤던 수고로움은 어디 가고, 제작 철수를 막을 수 없다. 시즌1의 흥행에도 불구하고 제작이 무산된 사례다.




어디 이와 같은 일이 한두 번이겠냐. 세상에는 더 많이 전해져야 할 이야기가 차고 넘치지만 종종 시청자는 힘없는 을이 된다. 재미, 인기, 성적에도 불구하고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볼 수 없게 된 수많은 시리즈. 그 시리즈를 만든 스태프를 격려하며 오늘도 남들 안 보는 콘텐츠를 탐독하러 OTT의 바다를 누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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