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했던 수험생활. 그 끝에서 무엇을 마주하게 될지도 모르고.
나는 2014년의 가을과 겨울 사이 그 어느 날, 지금의 내가 되었다.
그때 나는 스물세 살이었다. 나는 그날, 학교 도서관을 나서며 수면제 반 알을 삼키고 있었다. 오래전 일이다. 사람들은 과거를 묻을 수 있다고 얘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틀린 말이라는 걸 깨달았다. 과거는 묻어도 자꾸만 비어져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돌이켜보면, 나는 지난 10년 동안 도서관 한구석을 내내 들여다보고 있었던 것 같다.
새해가 밝았지만 어떤 다짐도 할 수 없었던 2014년의 첫날을 기억한다. 새해가 시작된 날로부터 다섯 밤이 더 지나야 1차 합격 여부를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졸업예정자의 신분으로 치르는 첫 시험은 말 그대로 ‘시험 삼아’ 치는 거라는 주변 사람들의 말에 웃으며 고개를 끄덕거렸지만, 실은 사활을 거는 마음으로 일 년 동안 시험을 준비했더랬다.
목표는 중등 임용 초수 합격.
초수생이자 졸업예정자라는 애처로운 신분에 ‘비사대(사범대 출신이 아니라는 뜻)’ 꼬리표까지 더해지면 첫 시험에서 승부를 보기는커녕 스터디에 들어가기도 어려운 것이 내가 처한 현실이었다. 길이 보이지 않았고 같은 길을 걸으려는 사람은 더 보이지 않았다. 스스로 이 길을 선택했으니 힘차게 걸어야 하거늘, 하루하루가 무릎까지 오는 진흙밭을 걷는 기분이었다. 발을 들어 올려 한 걸음 내딛는 것만으로도 힘이 드는데 다음 걸음을 내딛기도 전에 나의 발자국이 사라져 버리는 마법. 그래도 걷다 보면 꽃길까지는 아니어도 평탄한 흙길도 나오겠지. 밥 대신 빵과 떡으로 끼니를 때우며 공부 시간을 확보했고 명절도, 축제도 지운 채 학교 열람실에서 밤낮을 보냈다. 바닥에서 시작한 만큼 치열하고 분주한 나날이었다.
“1차 합격자 명단에 없습니다.”
합격자 발표날 내가 마주한 한 문장. 합격선에서 3점이 부족했다. 겨우 3점 차이라니, 운만 좋았으면 합격했을 텐데 너무 아쉽다던 아빠의 말은 틀렸다. 이 시험은 0.01점으로도 당락이 결정되는 시험이고, 설령 내가 3점을 더 받았다고 한들 2차 시험에서 아주 넉넉한 점수를 받지 못한다면 어차피 최종 합격까지 가기에는 어려웠을 테니까. 다만 지난 일 년 동안 내가 걸어온 방향이 아주 틀리지는 않았다는 판단 정도는 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다시 목표 수정, 나는 다음 시험에서 10점을 더 받아야 한다. 1차 합격선에서 7점이 넘는 점수라면 승산이 있지 않을까.
아파트 커뮤니티 센터에 딸린 독서실 한구석에 내 자리를 마련했다. 개론서와 문제집, 독서대와 자습서를 몇 번 옮겨다 나르는 꼴이 꼭 이사라도 가는 사람 같았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재수 시절의 절반 이상을 보냈다. 아침에 일어나 독서실에 가서 공부를 하다가 밥때가 되면 집으로 올라와 식사를 하고 다시 내려가 공부를 하다가 밤늦게 집으로 돌아오는 일과. 어느새 햇볕과 바람 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 되어버렸다. 종종 아파트 벤치에 걸터앉아 소리 내어 책 읽던 시간과 자전거 타고 동네 빵집에 커피 사러 가는 길은 수험 생활에 숨을 불어넣어주는 한 가닥의 낭만이었다.
스터디가 있던 토요일을 제외하고는 지하 세계를 떠나는 일이 없었지만 크게 외롭지는 않았다. 첫 해에 내가 얼마나 허술하게 공부했는지 깨달으며 빈틈을 채워나가는 재미가 꽤나 컸고, 함께 공부했던 스터디원들과 호흡이 잘 맞아 바깥세상에 두고 온 친구들 생각이 날 틈이 없었으며, 무엇보다도 내가 지하 세계를 헤매고 있어도 늘 그 자리에서 응원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다. 비록 그 응원이 끝나는 날이 시험날보다 빨리 다가왔던 게 문제였지만.
힘겹지만 제법 괜찮은 나날이었다.
독서실 구석에 벽돌처럼 쌓아놓은 개론서를 야금야금 소화해 내며 실력을 쑥쑥 키웠다. 여름쯤 되었을 때는 국어교육론이니 중세 문법이니 제법 아는 척 좀 할 수 있는 재수생이 되어있었다. 기출문제를 분석하고 문제 풀이를 시작할 때쯤에는 예전에는 보이지 않던 문제의 비밀들이 어렴풋이 보이기 시작했다. 얼마나 간절하게 기다려온 순간이었던가. 들뜬 마음으로 문제를 풀고 또 풀었다. 하루에 모나미 펜 한 자루를 다 쓰는 게 어렵지 않았다.
걸음에 속도가 붙을수록 스스로에 대한 채찍질의 강도도 높아졌다.
첫 시험도 내 나름 최선을 다해 준비한 시험이었는데, 그 위치에서 10점을 더 올려야 했다. 그러려면 나는 무엇을 포기해야 하는가. 아니, 나를 어디까지 남겨둘 수 있는가. 수험 생활을 하는 내내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했다. 공부가 재미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너 지금 배부르고 즐거워도 되니, 이 순간을 후회하지 않을 자신이 있니, 너 정말 웃음기 빼고 실력 쌓는 데 집중하고 있는 거 맞니.
이 시험 자체가 말도 안 되게 어렵거나 경쟁률이 높아서가 아니었다. 나와의 싸움이었다.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는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했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최대치로 노력해야 했다. 내 전공과 상황을 탓하는 건 그다음 일이었다. 물속에서 숨을 참으며 손가락을 꼽아 시간을 헤아리는 기분으로, 결승점을 향해 달리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몰아쳤다. 이 시간만 다 끝나면 물 위에서, 결승점 밖에서 한없이 쉬리라 다짐하며.
그 다짐이 속절없이 흔들리기 시작한 건 어느 가을날부터였다.
(다음 글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