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안 되는 글 쓰면서 살기를 선택한다
나는 어쩌다가 글쓰는 일에 관심을 갖게 되었을까?
내가 기억하는 가장 어린시절의 글쓰기는 독후감과 방학일기다. 많이들 그랬겠지만 그 시절에 방학일기라는 숙제는 방학이 끝나기 직전까지 미뤘다가 몰아쓰는게 트렌드였다. 개학 단 몇일 전 나는 일기로 둔갑하는 창작 에세이를 썼다. 한 달이 넘는 긴 시간의 일기를 몰아 쓰는 건 굉장히 힘든 작업이었는데, 미리 매일매일 일기를 쓰는 게 왜 그렇게 싫었는 지 모르겠다.
책을 읽는 건 정말 좋아해서 집에 책장이 남아나질 않았는데, 읽은 뒤에 글로 쓰는 건 또 왜 그렇게 싫었는지 독후감 숙제도 이야기를 지어내서 쓰곤 했다.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 그 책을 읽은 것 처럼 독후감을 쓰곤 했는데, 그게 내 아마 인생의 첫 소설인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허무맹랑하기 짝이 없지만.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도 예쁜 다이어리는 모을줄만 알지 안을 채워넣지 못하고 버리기 일수인 나에게 글로 쓰는 기록이란 절대 하기싫은 과제였고, 결국 실제의 일을 기록한 척 픽션인 창작글만 써왔던 것이다.
그런데 나는 왜 지난 30년간 글쓰는 것을 업으로 생각해본적이 없을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그리고 왜 지금은 글쓰는 사람으로 살고 싶어진 것인지에 대해서도.
나는 물질적으로 풍족하진 않지만 사랑이 가득한 가정에서 자랐다. 사랑을 듬뿍 주시는 부모님 덕분에 항상 당당하고 내가 받은 사랑을 나눌줄 알았고 언제나 내 삶 속에서 행복을 찾을 수 있었다. 나는 내가 받은 것과 가진 게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그만큼 나에게 넉넉하지 못한게 뭔지도 잘 알고 있었다. 사랑도 중요하지만 돈은 가정을 안정적으로 만드는데 정말 중요한 요소였다. 나는 항상 돈을 잘 버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하며 꿈을 키워갔다. 나에게 돈이 되지 않는 일은 가치가 없는 일이 되어갔다.
기록하기보다는 글을 쓰는 것을 좋아했고, 셈을 나누기보다는 붓을 들고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지만 나는 작가나 화가라는 꿈을 가질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돈이 안될거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 라떼는 그런 직업은 손가락을 빨면서 하거나, 이미 집안에 돈이 많아서 돈버는 일을 할 필요도 없는 사람이 하는거라고들 말했다. 그리고 그게 사실이기도 했다.
지금 나는 돈을 번다. 그러니까 나는 학생신분을 끝내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 내가 어렸을 때는 구태여 꿈도 꾸지 않았던 작가와 화가라는 꿈을 갖기 시작한 것 같다. 이제 돈을 벌고 있으니까 내가 좋아하는 일로는 돈을 벌지 않고 즐기기만 해도 먹고 살 수 있으니까.
여전히 그림과 글을 업으로 삼는 것은 가능성이 없다고 본다. 열심히 실력을 갈고 닦아 열심히 하다가 운이 좋으면 돈을 버는 일이 될수도 있겠지만 업으로 삼는건 창작에 들여야하는 시간 만큼의 금전적 공석을 감당해야하는 일이니까. 나는 그걸 감당할 자신은 없는 것 같다. 그저 지금처럼만 글을 쓸 수 있는 여유의 짬을 내어 꾸준히 글을 쓰고 싶다. 깊숙히 퀘퀘묵을 정도로 숨겨왔던 글쓰기에 대한 애정을 이제야 찾을 수 있어서 다행이다.
글쓰기는 나를 더 잘 알아가게 하고 때로는 위로도 해준다.
어쩌다보니 글을 쓰게 됬지만 앞으로는 소소하게 글을 쓰는 사람으로서 살아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