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에서 프랑스까지, 3개월 유럽 리모트워크 후의 통찰과 결심 9가지
여행기간 : 94일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입국 신고서를 적는데,
이번 리모트워크 기간이 무려 삼 개월을 넘었더군요.
일년의 1/4 를 8시간의 시차가 나는 곳에서 살며 일했던 이번 경험으로 저는 엄청난 '리모트워크 경험치'를 쌓았는데요, 이것은 스마트워크 디렉터로서 강력한 무기가 될 것 같습니다. 미래의 업무 방식이라고들 부르는 '하이브리드 워크'는 그저 개념을 이해하고, 옳은 게 뭔지 안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것은 무엇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에 있는 사람과 협업을 하려면 어떻게 업무를 조직해야 하는지를 직접 경험하고, 수정하고, 연습해야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토요일 밤 귀국, 오늘로 자가격리 5일차.
3개월 리모트워크에서 얻은 살아있는
통찰과 결심을 간단히 공유해 봅니다.
한국의 스마트워크는 이제 선진국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수준이에요. 다만 인간을 수단화하는 전 세대들의 마인드셋이 가장 큰 리스크인데, 이는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캠페인이 아니라 시간이 가장 확실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임을 알게 됐습니다.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힘이 빠지면서도, 동시에 시간이 확실하게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에 희망적입니다.
새로운 업무방식이 지배하는 미래(실은 현재)에 힘을 갖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관점입니다. 그리고 스마트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진정성에 기반한 '인간성'임을 깊이 느끼고 또 체감했습니다.
큰 이벤트는 삶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겉으론 비록 그렇게 보일지라도, 특히나 우리가 욕심을 가질 때는 더욱 말이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습관입니다. 즉 방향성을 가진 지속적인 행동이 우리의 삶을 바꿉니다. 그것은 숨쉬는 시간, 잠자는 시간에도 우리는 움직이기에, 느리지만 나중에 보면 결과가 큽니다.
투자의 대박이나 대회의 우승은 출발점을 좀 더 유리하게 옮겨줄 뿐 방향성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빨라 보이지만 큰 시간의 스펙트럼에서 보면 정지한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앞으로 저는 사업에서든 삶에서든 화려한 이벤트에 시간과 돈과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작은 습관을 만드는 데 적금 붓듯이 내 삶의 시간을 꾸준히 투자할 겁니다.
스페인의 집은 한 겨울에도 15도를 기록하는 따뜻한 해변의 테라스 딸린 집이었어요. 네플릭스 'Marsille' 시리즈에도 나오는 마르세유의 집은 킥보드가 달릴 수 있는 지중해 해변과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보르도의 집은 강가를 따라 산책을 할 수 있는 포근한 마을에 있었고, 파리 외곽의 집은 실내보다 더 큰 정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드 키도, 헬스장도, 어떤 집에선 초고속 인터넷도 없었지만 그 공간에서 저는 생전 처음으로 마시멜로우가 된 듯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단지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내 자신에 놀랐고, 노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내 자신이 좋았습니다.
이런 편안함과 행복감이 존재하는구나. 자연은 그 자체가 치유이고 사랑이구나. 그걸 매일매일 온 몸으로 느꼈던 시간이었죠.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일과 성취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더 강력한 '자연'이라는 요인을 알게 됐어요. 이제 놓치지 않을겁니다.
비행기로 나라와 나라를 넘나드는 동안 잠과 명상 사이에 낀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요, 그때 크게 깨달은 게 있습니다. 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충만함은 오직 주는 것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이예요.
사랑은 여러가지 색이라, 내가 원하는 모든 사랑을 한 사람에게 받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사랑을 기다리며 내 팔레트를 채우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팔레트를 채우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주는 것이고,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상대에게 먼저 건넬 때 사랑의 주인이 됩니다. 주는 사람이 그 관계의 주인이 되는 거죠. ins
우리는 그 동안 잘못 배웠습니다.
예산에 맞는 집을 찾아 간 곳이지만, 파리 외곽의 Vaires-sur-Marne 은 동화같은 곳이었습니다. 아파트는 없고, 블럭마다 대가족이 살 수 있는 큰 집들이 하나씩 있는 마을이었어요.
더 멋있었던 건, 수백 채의 집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이 없었다는 겁니다. 하나하나가 그 가족만을 위한 공간이었고, 나름의 컨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교 자체가 무의미했습니다. 모든 집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습니다.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흉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연의 빛을 품고 있어서 그 자체로 아름다웠습니다.
그 집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저는 여러 번 사진으로 담으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담기엔 역부족이었어요.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 그 이상의 요소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죠. 심지어 어떤 집은 직접 보면 놀랍게 빛이나는데, 사진에선 오히려 허름해 보이기도 했어요. 사진을 잘 찍는다는 건, 대상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캐치하는 기술이란 사실을 알게됐어요.
환경의 힘은 엄청납니다.
일반화할 순 없지만, 날씨가 흐리고 추운 지역의 사람들은 '옳은 것, 효율적인 것'을 찾았고, 맑고 따뜻한 지역의 사람들은 '기분이 좋은 것, 행복한 것'을 더 찾았습니다. 적어도 이번 저의 출장에서는 그랬습니다.
깉은 사람인 저 역시도 어떤 환경에 있는가에 따라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졌어요. 크로아티아와 북이탈리아에서는 더 많이 따졌고, 스페인과 남유럽에서는 더 많이 나눴습니다. 추운 곳에서는 미래를 대비하는데 시간을 썼고, 따뜻한 곳에서는 현재를 즐기는데 시간을 썼습니다. 추운 곳에서는 돈이 중요해져서 스쿠루지가 됐는데, 따뜻한 곳에서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썼습니다.
이제 저는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나'라고 착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물처럼, 그림자처럼, 공기처럼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더라고요. 이제는 행복한 최두옥이 되는 환경이 어디인지 자각하고, 그런 환경에 더 자주 가는데 힘쓰기로 했습니다. 물 같은 나를 규명하면서 '차가운' 곳에서 억지로 따뜻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여섯 도시, 여섯 마을에 머물렀어요. 도심 한 복판에서 머물렀던 밀라노와 회사가 정해준 호텔에 머물렀던 자그레브를 제외하고, 제가 머물렀던 모든 곳이 이제 저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어떤 곳에선 겨우 닷새를 머물고 "내년에 여기가 그리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하루를 머물렀던 - 안뜰에 있는 작은 주방이 너무 포근했던 - 한 숙소는 몇 번이나 꿈에 나오기도 했지요. 강변을 따라 산책을 자주 했던 한 프랑스 마을은 집 한채를 사고 싶을 정도로 정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웃들과 관계가 좋았던 스페인(말라가)에서는 실제로 내가 구입할 수 있는 원룸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단순히 기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연과 학연의 문제도 아니고, 좋은 스펙의 문제만도 아닌 것 같아요. 어쩌면 내가 그것과 얼마나 부대끼고, 얼마나 깊게 교감하고, 얼마나 집중해서 바라보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볼수록 사랑스럽단 말, 이제 이해가 됩니다. 사람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더군요.
말은 힘을 갖습니다. 단 그 말이 내 경험과 솔직한 느낌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만 그렇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어려운 용어로 포장될 필요가 없기에 쉽고 자연스럽습니다. 사람들은 요청하지 않아도 내 이야기에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집중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정보를 전하는 게 아니라, 지혜를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리모트워크를 하면서 정말 많은 이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수 많은 이야기 중에 제 마음을 움직인 건 하나같이 쉽고 간결한 말이었어요. 유투브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 때는 뭔가 대단한 정보를 들은 것 같았지만 하루만 지나면 잊혀졌어요.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무거운 이야기들은 기억에 안 남았고, 길고 어려운 문장은 정확히 이해를 하느라 지쳐서 다시 소화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글을 쉽게 쓰고, 말을 쉽게 하자고. 원래 소스보다 두 단계는 더 유치해 보이도록 쉬운 단어로, 짧은 문장으로, 소박하게 쓰기로 결심합니다. 외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구조, 가장 간결한 어휘로 말을 하려고 합니다.
글을 통한 감동과 깨달음은 주무르고 포장할 수록 무뎌집니다. 이번 리모트워크에서 받은 감동은 '말'조차 하지 않는 존재로부터 온 것도 많았습니다.
마르세유에서 마지막 주말, 일만 하던 우리는 작정을 하고 지중해 해변을 돌았습니다. 마스크를 벗은 채 따뜻한 겨울 바람을 맞으며 지중해를 도는데 나도 모르게 '여기서 일할 거야'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때의 행복감은 계산할 수도, 조절할 수도 없는 순수한 감정이었습니다. 그 감정이 너무나 확실해서 우리는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미래를 그 순간으로 데려오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집을 빌리자'
"그리고 매일 지중해로 뜨고 지는 해를 보며 일하자"
"저 아래 하얀 집을 찜했어"
"매일 킥보드로 일출과 일몰을 보러 나올거야. 그러면 자잘한 휴식은 없어도 휴식이 될 거야"
그렇게 우리는 2022년 여름의 리모트워크를 계획했습니다. 한번도 살아본 적 없지만, 잘 살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겁니다. 좋아서 죽으면 모를까.
마흔이 훨씬 넘은, 대기업에 있었다면 차부장을 넘어 젊은 임원이 됐을지도 모르는 워커홀릭 두 명이 그렇게 작은 열차 안에서 다음 리모트워크를 계획했습니다. 기쁨의 눈물이 날 정도로 충만한 감정을 경험하면, 순간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원하는 삶은 미래에 이룰 '목표'가 아니라, 지금 내 손에 닿는 '선택'이라는 걸. 그저 그렇게 살기로 결심만 하면 된다는 걸.
2002년의 미국 여행은 20대를 바꿨고
2013년의 유럽 여행은 30대를 바꿨습니다.
2021년의 리모트워크는 제 40대를 바꿀 것 같아요.
그 변화를 기꺼이,
환영하는 마음으로 맞습니다.
2022년, 1월의 26번째 새벽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