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두옥 Jan 26. 2022

원하는 삶은 [목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다

스페인에서 프랑스까지, 3개월 유럽 리모트워크 후의 통찰과 결심 9가지


여행기간 : 94일

귀국하는 비행기 안에서 입국 신고서를 적는데,

이번 리모트워크 기간이 무려 삼 개월을 넘었더군요. 



일년의 1/4 를 8시간의 시차가 나는 곳에서 살며 일했던 이번 경험으로 저는 엄청난 '리모트워크 경험치'를 쌓았는데요, 이것은 스마트워크 디렉터로서 강력한 무기가 될 것 같습니다. 미래의 업무 방식이라고들 부르는 '하이브리드 워크'는 그저 개념을 이해하고, 옳은 게 뭔지 안다고 되는 게 아니니까요. 


그것은 무엇이 실제로 작동하는지, 현실적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에 있는 사람과 협업을 하려면 어떻게 업무를 조직해야 하는지를 직접 경험하고, 수정하고, 연습해야만 가능한 것이니까요. 


토요일 밤 귀국, 오늘로 자가격리 5일차. 

3개월 리모트워크에서 얻은 살아있는

통찰과 결심을 간단히 공유해 봅니다. 



1. 우리를 움직이는 건 '논리'가 아니라 '인간성'



한국의 스마트워크는 이제 선진국에서 보고 배울 수 있는 수준이에요. 다만 인간을 수단화하는 전 세대들의 마인드셋이 가장 큰 리스크인데, 이는 믿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캠페인이 아니라 시간이 가장 확실히 해결할 수 있는 부분임을 알게 됐습니다. 노력해서 될 일이 아니라는 사실에 힘이 빠지면서도, 동시에 시간이 확실하게 해결해 줄 거라는 생각에 희망적입니다. 


새로운 업무방식이 지배하는 미래(실은 현재)에 힘을 갖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관점입니다. 그리고 스마트한 사람들을 움직이는 것은 '논리'가 아니라 진정성에 기반한 '인간성'임을 깊이 느끼고 또 체감했습니다.



2. 삶을 바꾸는 건 '이벤트'가 아니라 '방향성'



큰 이벤트는 삶을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겉으론 비록 그렇게 보일지라도, 특히나 우리가 욕심을 가질 때는 더욱 말이죠.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지루하고 반복적인 습관입니다. 즉 방향성을 가진 지속적인 행동이 우리의 삶을 바꿉니다. 그것은 숨쉬는 시간, 잠자는 시간에도 우리는 움직이기에, 느리지만 나중에 보면 결과가 큽니다. 


투자의 대박이나 대회의 우승은 출발점을 좀 더 유리하게 옮겨줄 뿐 방향성을 바꾸지 못합니다. 그래서 빨라 보이지만 큰 시간의 스펙트럼에서 보면 정지한 것과 다를 바가 없어요. 


앞으로 저는 사업에서든 삶에서든 화려한 이벤트에 시간과 돈과 사람을 끌어들이지 않을 것입니다. 대신 작은 습관을 만드는 데 적금 붓듯이 내 삶의 시간을 꾸준히 투자할 겁니다.   



3. 내 행복의 근원은 '일'이 아니라 '자연'


스페인의 집은 한 겨울에도 15도를 기록하는 따뜻한 해변의 테라스 딸린 집이었어요. 네플릭스 'Marsille' 시리즈에도 나오는 마르세유의 집은 킥보드가 달릴 수 있는 지중해 해변과 가까운 곳에 있었어요. 보르도의 집은 강가를 따라 산책을 할 수 있는 포근한 마을에 있었고, 파리 외곽의 집은 실내보다 더 큰 정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카드 키도, 헬스장도, 어떤 집에선 초고속 인터넷도 없었지만 그 공간에서 저는 생전 처음으로 마시멜로우가 된 듯한 편안함을 느꼈습니다. 단지 일출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나는 내 자신에 놀랐고, 노을을 보면서 눈물을 흘리는 내 자신이 좋았습니다. 


이런 편안함과 행복감이 존재하는구나. 자연은 그 자체가 치유이고 사랑이구나. 그걸 매일매일 온 몸으로 느꼈던 시간이었죠. 저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일과 성취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더 강력한 '자연'이라는 요인을 알게 됐어요. 이제 놓치지 않을겁니다. 



4. 관계의 주인은 '받는' 사람이 아니라 '주는' 사람 



비행기로 나라와 나라를 넘나드는 동안 잠과 명상 사이에 낀 시간을 많이 가졌는데요, 그때 크게 깨달은 게 있습니다. 사랑으로 얻을 수 있는 충만함은 오직 주는 것으로 채워진다는 사실이예요. 


사랑은 여러가지 색이라, 내가 원하는 모든 사랑을 한 사람에게 받는 것은 불가능해요. 그렇다고 모든 사람의 사랑을 기다리며 내 팔레트를 채우는 것도 현실적이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랑이란 팔레트를 채우는 유일한 방법은 먼저 주는 것이고, 내가 줄 수 있는 사랑을 상대에게 먼저 건넬 때 사랑의 주인이 됩니다. 주는 사람이 그 관계의 주인이 되는 거죠. ins

우리는 그 동안 잘못 배웠습니다.



5. 다른 무언가가 되려하지 말아야 빛난다  


예산에 맞는 집을 찾아 간 곳이지만, 파리 외곽의 Vaires-sur-Marne 은 동화같은 곳이었습니다. 아파트는 없고, 블럭마다 대가족이 살 수 있는 큰 집들이 하나씩 있는 마을이었어요. 


더 멋있었던 건, 수백 채의 집 어느 것 하나 같은 모양이 없었다는 겁니다. 하나하나가 그 가족만을 위한 공간이었고, 나름의 컨셉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비교 자체가 무의미했습니다. 모든 집은 그 자체로 아름다웠습니다. 다른 무언가가 되려고 흉내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본연의 빛을 품고 있어서 그 자체로 아름다웠습니다. 


그 집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저는 여러 번 사진으로 담으려고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그 아름다움을 담기엔 역부족이었어요. 단순히 시각적인 아름다움 그 이상의 요소가 너무 많았기 때문이죠. 심지어 어떤 집은 직접 보면 놀랍게 빛이나는데, 사진에선 오히려 허름해 보이기도 했어요. 사진을 잘 찍는다는 건, 대상이 가진 본연의 아름다움을 최대한 캐치하는 기술이란 사실을 알게됐어요.   



6. 한국에서의 내 모습이 '나'라고 착각하지 말자  



환경의 힘은 엄청납니다. 

일반화할 순 없지만, 날씨가 흐리고 추운 지역의 사람들은 '옳은 것, 효율적인 것'을 찾았고, 맑고 따뜻한 지역의 사람들은 '기분이 좋은 것, 행복한 것'을 더 찾았습니다. 적어도 이번 저의 출장에서는 그랬습니다. 


깉은 사람인 저 역시도 어떤 환경에 있는가에 따라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달라졌어요. 크로아티아와 북이탈리아에서는 더 많이 따졌고, 스페인과 남유럽에서는 더 많이 나눴습니다. 추운 곳에서는 미래를 대비하는데 시간을 썼고, 따뜻한 곳에서는 현재를 즐기는데 시간을 썼습니다. 추운 곳에서는 돈이 중요해져서 스쿠루지가 됐는데, 따뜻한 곳에서는 사람들을 위해 돈을 썼습니다.


이제 저는 한국에서의 내 모습을 '나'라고 착각하지 않습니다. 나는 물처럼, 그림자처럼, 공기처럼 환경에 적응하는 존재더라고요. 이제는 행복한 최두옥이 되는 환경이 어디인지 자각하고, 그런 환경에 더 자주 가는데 힘쓰기로 했습니다. 물 같은 나를 규명하면서 '차가운' 곳에서 억지로 따뜻한 모습을 보이려고 노력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7. 오래 볼 수록 사랑스럽다, 사람도 집도 그렇다 


저는 여섯 도시, 여섯 마을에 머물렀어요. 도심 한 복판에서 머물렀던 밀라노와 회사가 정해준 호텔에 머물렀던 자그레브를 제외하고, 제가 머물렀던 모든 곳이 이제 저에게는 마음의 고향이 되었습니다. 


어떤 곳에선 겨우 닷새를 머물고 "내년에 여기가 그리워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고, 심지어 하루를 머물렀던 - 안뜰에 있는 작은 주방이 너무 포근했던 - 한 숙소는 몇 번이나 꿈에 나오기도 했지요. 강변을 따라 산책을 자주 했던 한 프랑스 마을은  집 한채를 사고 싶을 정도로 정이 들었습니다. 특히 이웃들과 관계가 좋았던 스페인(말라가)에서는 실제로 내가 구입할 수 있는 원룸을 찾아보기도 했어요.


무언가를 좋아하게 되는 건, 단순히 기간의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지연과 학연의 문제도 아니고, 좋은 스펙의 문제만도 아닌 것 같아요. 어쩌면 내가 그것과 얼마나 부대끼고, 얼마나 깊게 교감하고, 얼마나 집중해서 바라보느냐의 문제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래 볼수록 사랑스럽단 말, 이제 이해가 됩니다. 사람도 그렇고, 공간도 그렇더군요.  



8. 내가 경험하고 느낀 것만 말하자, 쉽고 자연스럽게 


말은 힘을 갖습니다. 단 그 말이 내 경험과 솔직한 느낌에 뿌리를 두고 있을 때만 그렇습니다. 그런 이야기는 어려운 용어로 포장될 필요가 없기에 쉽고 자연스럽습니다. 사람들은 요청하지 않아도 내 이야기에 두 눈을 똥그랗게 뜨고 집중합니다. 그런 이야기는 정보를 전하는 게 아니라, 지혜를 전달하기 때문입니다.


리모트워크를 하면서 정말 많은 이들을 만났고, 많은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 수 많은 이야기 중에 제 마음을 움직인 건 하나같이 쉽고 간결한 말이었어요. 유투브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야기들은 그 때는 뭔가 대단한 정보를 들은 것 같았지만 하루만 지나면 잊혀졌어요. 명확하게 이해되지 않는 무거운 이야기들은 기억에 안 남았고, 길고 어려운 문장은 정확히 이해를 하느라 지쳐서 다시 소화하고 싶은 생각도 들지 않았어요.  


그래서 결심했습니다. 글을 쉽게 쓰고, 말을 쉽게 하자고. 원래 소스보다 두 단계는 더 유치해 보이도록 쉬운 단어로, 짧은 문장으로, 소박하게 쓰기로 결심합니다. 외국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단순한 구조, 가장 간결한 어휘로 말을 하려고 합니다. 


글을 통한 감동과 깨달음은 주무르고 포장할 수록 무뎌집니다. 이번 리모트워크에서 받은 감동은 '말'조차 하지 않는 존재로부터 온 것도 많았습니다. 



9. 원하는 삶은 '목표'가 아니라 '선택'의 문제 


마르세유에서 마지막 주말, 일만 하던 우리는 작정을 하고 지중해 해변을 돌았습니다. 마스크를 벗은 채 따뜻한 겨울 바람을 맞으며 지중해를 도는데 나도 모르게 '여기서 일할 거야'는 말이 나오더군요. 그때의 행복감은 계산할 수도, 조절할 수도 없는 순수한 감정이었습니다. 그 감정이 너무나 확실해서 우리는 어떻게 될 지도 모르는 미래를 그 순간으로 데려오고 있었습니다. 


"여기에 집을 빌리자'

"그리고 매일 지중해로 뜨고 지는 해를 보며 일하자"

"저 아래 하얀 집을 찜했어"

"매일 킥보드로 일출과 일몰을 보러 나올거야. 그러면 자잘한 휴식은 없어도 휴식이 될 거야"


그렇게 우리는 2022년 여름의 리모트워크를 계획했습니다. 한번도 살아본 적 없지만, 잘 살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죽지는 않을 겁니다. 좋아서 죽으면 모를까. 


마흔이 훨씬 넘은, 대기업에 있었다면 차부장을 넘어 젊은 임원이 됐을지도 모르는 워커홀릭 두 명이 그렇게 작은 열차 안에서 다음 리모트워크를 계획했습니다. 기쁨의 눈물이 날 정도로 충만한 감정을 경험하면, 순간적으로 깨닫게 됩니다. 원하는 삶은 미래에 이룰 '목표'가 아니라, 지금 내 손에 닿는 '선택'이라는 걸. 그저 그렇게 살기로 결심만 하면 된다는 걸. 




2002년의 미국 여행은 20대를 바꿨고

2013년의 유럽 여행은 30대를 바꿨습니다.

2021년의 리모트워크는 제 40대를 바꿀 것 같아요. 


그 변화를 기꺼이, 

환영하는 마음으로 맞습니다.

2022년, 1월의 26번째 새벽에.

매거진의 이전글 일 년에 한번 하는 비전서클 202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