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와 상관있을 뿐이다
이번 출장의 키워드는 ‘괜찮아' 였습니다.
보통 이 말은 내 스스로에게 하는 말이지만 이번에는 방향이 달랐습니다. 세상을 향해 괜찮다고 말해주는 것이었거든요. 더 정확히는 제 주변의 사람들에게 ‘괜찮다'는 메세지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말이 아닌 경청과 응원으로요. 출장 전에 계획한 건 아니었어요. 순전히 그 즈음 기억난 책의 한 구절 때문이었습니다.
삶은 내가 무엇을 하는가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가와 상관있을 뿐이다
수십 년의 제 삶이 전자에 치우쳐저 있었기 때문일까요. 오래 전에 읽은 이 구절은 중요한 시기에 제 마음을 때리곤 합니다. 한달 간 ‘내가' 해야할 일들로 가득했던 올해 출장 계획표. 그 끄트머리에 작은 칸을 하나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력을 줄 수 있을지를 적어봤습니다.
Angelique, Daniel, Chantal, Benjamin, Gaelle, Etoile, Galaxy, Peter, Olivier, Marie Paul, Maryam, Loxy, Sylvie, Alex...
처음엔 이렇게 이름을 적고 ‘어떤’ 영향력을 줄 것인지를 적을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내 그건 넌센스란 걸 알아차렸습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서 만날 지 모르는데, 그 때 어떤 영향력을 줄 지 미리 결정한다니요. 그건 계획도 준비도 아니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불안을 최소화하려는 방어기제, 또는 한 건 없으면서 뭔가를 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직장인 시절 스킬일 뿐.
그래서 이번 출장에서 만날 사람들의 이름 열댓 개만 적었습니다. 한 사람 한 사람과 만나는 그 상황에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도와주자고 되뇌이면서요. 뭔가 허전한 느낌이 들었지만, 이 부족한 느낌이 나를 행동으로 이끌 거란 직감이 들었습니다.
지난 한달 간, 저는 리스트에 적힌 사람들과 만났습니다. 아주 다양한 상황이었어요. 이벤트처럼 두 세 시간을 보낸 사람도 있었고, 매일 오전을 함께 보낸 사람도 있었죠. 나흘 간 현지의 작은 프로젝트를 함께 한 사람도, 간헌적으로 만났던 사람도 있었습니다. 신기한 건 말이죠,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할 수 있는 게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책에서 읽었던 그대로 내가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기회들이요.
본업이 사진 작가인 그는 언젠가부터 우리가 볼 수 없는 천체 사진만을 찍었습니다. 적지 않은 많은 돈과 시간을 전체 사진에 쏟지만 아쉽게도 스튜디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사진은 아닙니다. 그의 스튜디오에서 미팅이 있던 날, 그는 자기가 찍은 전체 사진들을 구경시켜 줬습니다.
별에도 사진에도 문외한인 제겐 모두 같은 사진처럼 보였습니다. 하지만 같아 보이는 사진을 찍은 스토리는 모두 달랐습니다. 저는 그 스토리에 집중했습니다. 그는 별에 진심이었습니다. 그 진심이 보통 사람에게는 보이지 않은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능력으로 이어졌구나 싶더군요.
그때, 문든 그 능력을 알아봐 줄 지인이 생각났습니다. 바로 다음 날, 저는 화상회의를 통해 서로를 소개시켜줬습니다. 지금 한 사람은 천체사진을 테마로 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드는 중이고, 다른 사람은 프랑스 프로젝트를 검토하고 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진을 찍으면서 멋진 프로젝트를 할 수 있구나"
저는 그가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길 바랬습니다.
매주 두 번, 온라인으로 프랑스어 수업을 함께 듣는 그녀는, 제게 프랑스어를 공부에 도움이 되는 책을 이것저것 다양하게 사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래서 출국 전 저는 프랑스의 대형 서점인 프낙(fnac)에 들렸습니다. 수업에서 그녀가 잘 틀리는 표현들, 그녀의 평소 관심사, 그녀의 스케줄 등을 생각하면서 서점을 몇 바퀴 둘러봤죠.
그리고는 다섯 권의 책을 샀습니다. <미니 한국어-프랑스어 사전>, <어린왕자> 원서, 어린이용 <프랑스 문화 소개>, 초등학생 수준으로 쉽게 쓴 <Paris> 탐험책, 그리고 그림이 많은 <100가지 프랑스식 점심 만들기> 요리책까지. 그리고 프랑스어가 쓰인 오븐 장갑도 추가했습니다.
“죽기 전에 프랑스에 한번 가 보라고 하늘이 돕는구나"
저는 그녀가 스스로 이렇게 생각하길 바랬습니다.
그녀가 준비한 하우스 파티가 열린 날, 저는 그녀의 아뜰리에에서 그동안 만든 샘플 자켓들을 구경했습니다. 대충 봤을 땐 몰랐는데, 내 옷이라고 생각하고 자세히 보니 그녀만의 재능이 보였습니다. 디자인으로 승화된 꼼꼼한 바느질, 대형 매정에서는 보기 힘든 대담한 색배치, 독특한 질감의 원단.
저는 순간 제가 받은 감동을 진심으로 표현했습니다. 이런 칭찬은 너무 흔해서 오히려 가식적으로 보이지 않을까 살짝 걱정도 하면서요. 하지만 그건 기우였던 것 같습니다. 제 피드백이 늘어나면서 그가 장에서 꺼내는 옷도 늘어났거든요.
“나는 동양인도 알아보는 수준의 옷을 만드는 사람이구나"
저는 그녀가 스스로에게 그렇게 생각하길 바랬습니다.
기억에 남아있는 세 사람에 대해서만 적었지만, 한달 간 프랑스에 있으면서 저는 최대한 ‘나는 이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을까'에 집중했습니다.
“내가 중간에서 코디를 잘 해서 워크샵이 잘 만들어졌구나"
“한 때 일잘러였던 나를 알아봐주는 구나"
“나는 오픈스페이스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구나"
“프랑스 문화를 답답해하는 내 마음을 이해 받았구나"
“한국에 갔을 때 숙소 부담을 좀 줄일 수 있겠구나"
“완벽하지 않지만, 나는 아그네스에게 운명의 상대구나"
“내 상황을 보고 경찰에 신고해 준 사람이 있구나"
그 영향력을 주기 위해 분명히 저는 무언가를 했습니다. 누군가의 잔디를 같이 깎아주는 시간을 일정에 넣은 적도 있고, 한국과 프랑스 시차 때문에 밤을 샌 적도 있었습니다. 한 레스토랑에서 300유로(약 43만원)를 쓴 적도 있고, 여분으로 가져간 핸드폰을 누군가에게 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읽었던 구절에 의하면, 중요한 건 제가 이런 일을 했다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상대의 삶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죠. 그 영향력이 '나'에게 나온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상대가 느낄 수 있는 좋은 영향력의 '근원'이 내가 되는 것이 중요했죠.
인생 처음으로 상대에게 미칠 영향에만 집중했던 출장. 그 한달의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저는 그 책이 맞았다는 걸 깨닫고 있습니다. 내가 주변 사람들에게 ‘당신은 혼자가 아니에요’ ‘지금 그대로도 괜찮아요' 라는 메세지를 전했을 때, 신기하게도 그 말은 메아리가 되어 제 자신에게 돌아왔습니다. 내가 한 일과, 내가 이룬 것에만 집중했을 때 느끼지 못한 안정감과 따뜻함.
정말로 삶은 내가 무엇을 했는가가 아니라,
상대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가의 문제인 걸까요.
그렇다면 곧 한국 땅을 밟는 저는
나에게 집중했던 전과는 다르게 살아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