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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두옥 Feb 14. 2016

직장감정록

일이 힘든 건 대부분 '사람'이었음을 잊지 않도록

'일' 때문에 일이 힘들었던 건 손에 꼽을 만큼 적다. 일이 힘든 건 대부분 '사람' 때문이었다. 사이코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그렇게 일이 힘들다고 느껴질 때마다 나는 그 상황을 흠뻑 느끼려고 노력하곤 했다.


수년 전, 일관된 기준 없이 피드백을 주던 상사 때문에 남친과의 중요한 약속을 깨고 야근하던 날, (지금 생각하면 그저 무능한 개인에 불과했던) 그 상사의 입을 막기 위해 밤새 세 버전의 제안서를 쓰고, 나는 혼자 화장실에 앉아 엉엉 울었다. 그렇게 한 손으로는 눈물을 훔치며, 한 손으로는 당시의 쌩-감정을 다이어리에 기록했다. 그 때의 감정을 기억하기 위해서. 내가 위로 올라갔을 때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뭐였는지, 상사에 대한 내 감정이 어땠는지를 잊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렇게 쓴 글이 수십 개. 

처음엔 프랭클린 다이어리에 시작했고, 지메일이 나온 이후엔 검색을 쉽게 하려고 메일 드레프트(Draft) 기능을 이용했다. 가장 최근에 쓴 건 약 한달 전. 내가 겪은 일들인데도 이십대 때 적은 감정들을 읽으면 참 새삼스럽다. 일년 일년이 지날수록 "아- 맞다! 이럴 때 진짜 일하기 싫었지" 하면서 읽을 때가 많다.  


오늘 우연히 기회가 되어 다시 그 글들을 읽었다. 

상사의 피드백 기준이 일관되지 않았을 때, 상황 설명없이 일을 던져줄 때 (신입일수록 상사가 하라는 일이 왜 중요한지 더 모르기 마련이다. 정보가 적어 큰 그림을 스스로 못 보니까), 상사가 업무 파트너와의 전화 통화 후 다 들리게 뒷담화를 할 때, 회사 카드를 개인적으로 쓸 때 (정말 내가 모른다고 생각했던 건지, 자존심이 다 상한다), 앞에선 직원이 가족이라고 하면서 뒤에선 알바들의 인건비를 줄이려고 인력 에이전시를 고용할 때, 아랫사람의 주장을 논리로 이기려고 할 때, 그저 나이가 더 많다는 이유로 동의도 없이 내 직책을 생략할 때 등등...이었다.


내가 이 기록을 남긴 건 누군가를 나쁜 모습으로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내가 누군가의 상사가 되었을 때, 적어도 나를 일하기 싫게 만든 그 사람이 나는 되고 싶지 않아서였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한은. (개인의 경험을 모두 일반화할 순 없지만, 동시에 인간의 경험은 생각보다 보편적이다. 대학때 진행한 수많은 심리학 실험들은 내가 별볼일 없는 흔한 인간 샘플임을 여실히도 증명해 주었다)


인간은 참 약삭빠르다. 

어느 누구도 손해보는 짓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 감정적인 손해를 봤다고 생각하면 어떤 식으로든 상대에게 실질적인 손해를 주려고 한다. 침묵이 그 시작이고, 무기력이 최종이다. 결국 회사 입장에서는 엄청난 돈과 시간의 손해다. 나 역시 약삭빠른 인간이라 나와 일하는 누군가에게 돈과 시간을 손해보고 싶지 않다. 그러고 보면 '직장감정록'을 쓴 나 역시 약삭빠른 흔한 인간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직장감정록을 통해 나만의 '직장 감정론'을 만들라는 페이스북 친구 이상동 님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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