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스 고딘이 쓴 <린치핀>이란 책을 읽고 있다.
린치핀이란 조직에서 ‘대체될 수 없는 사람‘을 의미하는데, 그 요건 중에 하나가 바로 ’관계’다. 관계의 핵심은 인간성과 진정성인데, 순수하고 진정한 관계를 얼마나 깊게 경험하고 기억하는가가 그를 린치핀으로 만든다는 게 핵심이다.
나는 최근 이렇게 순수하고 진정한 관계를 몇 번 경험했는데, 이런 관계에는 공통점이 있었다. 목적이 없는 만남, 몇 시간이 몇 분처럼 느껴지는 대화, 제삼자에 대한 이야기가 없는 ’우리’만의 이야기, 가슴 깊은 곳에 있는 꿈과 아픔의 공유, 돌아가는 길의 설렘.
이런 만남은 그 자체 힘이 있다. 그래서 다음 날도 만나고 싶을 만큼 아쉽고, 그게 마지막 만남이라도 괜찮을 만큼 감사하게 된다. 만나기 위해 얼마의 시간과 돈을 썼는지는 신경도 안 쓰이고, 더 좋은 곳에서 더 많이 교감하고 싶다는 생각만 든다. 이유가 있어야 만나는 사람들과는 화상회의를 하지만, 이유가 없이도 보고 싶은 사람과는 몇 시간을 달려도 직접 보고 싶다. 서로의 존재감을 느끼고 교감하는 게 유일한 목적이기 때문이다.
린치핀의 관계 챕터를 읽고, 나는 오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대학시절 서강대 성당에서 만난 친구인데, 초라한 첫 전셋집에 집들이를 와 주었고, 돈을 다루는 일을 하지만 돈으로 계산할 수 없는 마음을 주는 친구다. 프랑스 리옹을 여행할 때는 비용 아낀다고 한 방에서 자기도 했다. 일 년에 두어 번은 만났는데, 기흥으로 이사 온 후 연락을 못 했다.
동해에서 서울로 운전하는 차 안에서 친구의 번호를 누르자, 벨이 두 번 울리고, 익숙한 친구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그 목소리를 확인하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웃었다. 서로가 서로를 찾았다는 안도감과 감사함이 느껴졌다. 간단히 요즘 근황을 확인하고, 우리는 출국 전 하루를 빼서 만나기로 했다. 어떤 이야기라도 할 수 있는 그 친구가 “보고” 싶어서.
세스 고딘은 말한다. 이런 진실한 관계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이 AI 시대에 대체될 수 없는 린치핀이라고.
꼭 조직을 위해서가 아니라도, 우리의 행복한 삶을 위해서 그냥 ‘보고 싶은 ‘ 사람은 필요한 것 같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사람이 없었기에 더욱 그 중요성을 느낀다. 오늘 그런 사람이 생각난다면 올해가 가기 전에 만나자고 연락을 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