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판결을 내리면, 이성은 판례를 뒤진다
스페인에서 두 달간 지낼 집을 구하는 과정은
내가 엄청난 깨달음을 얻는 시간이었다.
불확실과 변수가 시시각각 상황을 반전시키던 지난 한달 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정이 널뛰는 것을 경험했다. 그러면서 나는 인간의 이성이 얼마나 무력한지, 우리가 믿었던 논리라는 것이 얼마나 보잘 것 없는지를 깨달았다.
특별히 흥미로운 깨달음은 갑작스런 취소를 당하는 순간에 찾아왔다. 우리가 머물기로 한 숙소 중 한 곳에서 호스트가 일방적으로 예약을 취소한 적이 있었다. 그가 무례하다는 감정이 들자마자 나는 현지 법 조항과 플랫폼의 위약금 규정을 샅샅이 뒤졌다. 억울하고 암담한 감정 속에서 나는 정당한 대가를 요구하는 냉철한 법치주의자가 되었다. 반면 한 호스트가 어쩔 수 없는 개인적 사정 때문에 예약을 논의해 왔을 때는 정 반대의 모습이었다. 나는 상대를 최대한 배려하려는 따뜻한 휴머니스트로 변했고,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도움을 주었다. 그의 태도에서 진심 섞인 미안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재미있는 건, 두 경우 모두 '왜 냉정하게 대처해야 하는지' 혹은 '왜 최대한 배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완벽한 논리적 근거를 갖추고 있었다는 점이다. 법대로 하겠다는 결정도, 배려하겠다는 결정도 모두 논리가 있었다. 즉, 의사결정의 주체는 논리에 근거한 이성이 아니였다. '감정'이었다. 내 감정 상태가 분노일 때는 공격적 논리를, 공감일 때는 포용적 논리에 마음이 기운 것 뿐이다. 논리는 결론을 도출하는 장치가 아니라, 이미 내려진 감정적 결론을 정당화하기 위한 사후 영수증이었다.
우리는 흔히 감정이 이성을 방해한다고 생각하지만
과학은 그 반대가 진실이라고 말한다.
신경과학자 안토니오 다마지오의 연구는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그는 감정을 담당하는 뇌 부위가 손상된 환자들을 연구했다. 이들의 지능과 논리적 사고는 정상이었다. 하지만 그들은 일상의 사소한 결정조차 내리지 못하는 무능력자였다. 오늘 점심에 뭘 먹을지, 다음 미팅을 몇 시에 할 지 논의하는 데만 몇 시간을 허비했다. 논리적인 대안은 끊임없이 나열할 수 있었지만, 그 중 무엇이 나은지를 결정하는 가치 판단을 (감정 부위가 손상되어) 못 했기 때문이다. 감정이 없는 이성은, 마치 헛바퀴만 종일 돌리는 엔진처럼 의미가 없었다.
실제로 심리학자 조너선 하이트는, 이러한 인간의 정신을 코끼리와 기수로 비유했다. 직관과 감정이라는 거대한 '코끼리'가 방향을 틀면, 그 위에 탄 '기수'인 이성은 코끼리가 왜 그 길로 가야만 했는지를 설명한다. 이성은 회사가 내린 의사결정에 그럴듯한 이야기를 만드는 홍보담당자와 같은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우리는 흔히 기수가 코끼리를 조종한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기수(이성)는 코끼리(감정)가 저지른 일에 뒤늦은 명분을 발명하는 행정직원에 가깝다. 정보가 부족하거나 논리가 빈약해도, 우리의 좌뇌는 어떻게든 인과관계를 만들어내어 자신을 안심시킨다.
이러한 인간의 하드웨어적 결함은 관계에서 더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소위 냉정하고 논리적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이성적인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감정을 은폐하고 억누르는 데 익숙한 사람들일 가능성이 높다. 감정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고 위로받는 것에 서툰 그들은, 자신의 코끼리가 날뛰는 것을 숨기기 위해 견고하고 복잡한 논리를 만든다.
좌뇌는 감정이 내린 결론을 합리화하기 위해 억지스러운 인과관계를 짜내느라 과부하를 겪고, 이는 고스란히 번아웃과 스트레스로 이어진다. 논리로 무장한 사람일수록 자신의 오류를 더 정교하게 포장하기 때문에 이 늪에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다. 결국 자신이 만든 편향된 논리의 감옥에 스스로가 갇힌다.
타인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 함께 산다는 것은 논리와 논리의 충돌이 아니라 코끼리와 코끼리의 만남이다. 상대의 억지 논리를 공격하는 건, 날뛰는 코끼리의 발을 걷어차는 것과 같다. 코끼리가 위협을 느끼면 기수는 더 사나운 논리를 동원해 방어에 나선다. 밖에서 볼 때는 논리적으로 싸우는 것처럼 보이지만 본질은 상처받은 감정들의 전쟁터다.
이때, 관계를 풀고 설득을 이끌어내는 유일한 방법은 상대의 코끼리를 먼저 안심시키는 것이다. 감정을 달래고 나면 기수(이성)는 비로소 고집을 꺾고 상대의 논리를 받아들일 준비가 된다. 결국 최고의 의사결정은 최고의 논리가 아니라 최고의 감정 컨디션에서 나온다. 내 마음의 코끼리가 평온할 때, 비로소 기수는 가장 지혜로운 길을 안내할 수 있다.
그러니 스스로의 감정이 나빠지지 않도록 잘 돌보는 것, 그리고 상대의 감정이 나빠지려 할 때, 바로 캐치해서 달래주는 것은 결코 마음약한 사람들만의 감상적인 일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라는 불완전한 시스템을 운영하는 고차원적인 이성의 전략이다. 논리로 맞서기 보다 감정의 파도를 먼저 잠재우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훨씬 빠르고 확실한 해결책이기 때문이다.
인간은 이성의 가면을 쓰고 살아가지만, 감정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존재다. 내가 감정의 노예임을 인정하는 것, 나의 논리가 사실은 내 감정을 변호하기 위해 고용된 변호사일 뿐임을 자각하는 것. 이 껄끄러운 진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비로소 합리화의 늪에서 벗어나 메타인지의 문을 열 수 있다.
이번 스페인에서의 여정은, 집을 구하는 과정이 아니라 나라는 시스템의 설계도를 다시 읽는 시간이었다. 감정이 먼저 결론을 내리고 논리는 그 감정을 배달할 뿐이라는 이 오래된 진실. 그것을 깨닫고 나니 마음이 평온하고 홀가분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