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만 한 마음>
낮이 낯설었던 우리
어둠이 무서운 사람도 있지만 우리에게는 ‘낮’이 무서운 시간이었다.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그 눈빛과 표정, 말의 숨결이 매섭게 다가오던 날들이 있었다. 무지한 확신만큼 위험한 건 없다. 진실을 모르는 사람은 말이 통하지 않는다.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은, 결국 타인의 고통에도 무관심하다. 무지한 확신에는 단단한 경계가 필요하다. 말해도 모르겠지만.
그래서 우리는 대부분의 활동을 멈추고, 검은색 실을 싹둑 자르고 집에만 머물렀다. 조용히, 가만히, 무너지지 않기 위해. 한동안 우리는 사람을 피했다. 관계를 끊고, 활동을 줄이며 조용히 지냈다. 그것이 서로를 지키는 최선이라 믿었고, 사실이었다. 아이도, 나도 또래 관계를 거부했고 세상 밖으로 나아가는 일을 그저 ‘참는 것’으로 버텨냈다.
문득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를 청소년센터 동아리에 억지로 넣었다. 걸어서 15분 거리인데, 사람을 마주칠까 봐 데려다줄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대부분 아빠가 데려다줬다. 그것도 차로.
그러던 어느 날,
아이가 혼자서 집까지 걸어오겠다고 전화를 해왔다. 나는 말렸다. 데리러 가겠다고 했다. 그런데 아이는 “이미 걸어가고 있어.” 그렇게 아이는 혼자 걸어왔다. 나는 모자를 쓰며 데리러 나가겠다고 했다. 남편은 나를 말렸고, 아이도 “거의 다 왔어.”라며 전화를 끊었다. 작은 목소리에 단단한 용기가 담겨 있을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내 두 발은 동동거렸다.
집에 도착한 후, 땀을 뻘뻘 흘리며 돌아온 아이는 용기를 다 써버린 듯 기절하듯 잠이 들었다. 무려 15시간을 쭈욱 -
단 한 번도 깨지 않고. 생후 100일을 넘긴 아기가 처음으로 통잠을 자는 듯, 신기한 모습이었다. 안쓰러웠고 기특했다.
누군가가 만들어낸 거짓에 학교도 혼자서 걸어가지 못하는 아이. 혼자서 걷는, 거리는 어떤 시간이었을까. 땅만 보고 걸었을까? 나뭇잎이 흔들리는 것도 봤을까? 나는
아직도 그날들을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 기계처럼 오전 8시에 일어나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주고, 아이가 학교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걸 지켜봤다. 그나마. 학교는 안전한 곳이라고 믿었다.
그저 걷는 일이, 어떤 날에는 기적이 될 수도 있다는 걸, 그 15분을 기다리는 일이 누군가에게는 세상이 멈춘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는 걸.
햇빛 아래를 걷는 일, 사람들과 눈을 마주치는 일, 말을 섞는 일. 그 모든 게 우리에겐 모험인 날들이 있었다. 아이는 자라나는 아이였고, 나는 무너졌다가 겨우 일어선 엄마였다. 낯선 길 위에서, 내 아이는 나보다 먼저 혼자 걸었다. 지켜보는 마음은 아팠지만, 그 선택은 아이의 것이었다. 그날 이후로 나는 아이의 회복을 믿었고,
나도 창문을 열었다. 아이도 나를, 조금 덜 걱정했다. 결국, 우리는 다시 낮에도 걷기 시작했다. 누구의 시선도 닿지 않는 시간. 서로의 속도에 맞춰 달리고, 걷고, 웃고, 울던 밤을 생각하며.
《초강력 밤. 마. 실》은 그렇게 탄생했다. 그 밤들은 우리에게 정말 초강력한 시간이었을까. 밤이면 조용히 걷고 뛰었다. 말없이 숨을 고르며, 우리만의 꿰매는 시간. 그건 낮을 건너기 위한 아주 조용하고도 용기 있는 연습이었다.
무지는 모릅니다.
논리도, 부끄러움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