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색 실을 마주할 용기

<콩만 한 마음>

by 이두래


검은색 실을 마주할 용기


《초강력 밤.마.실》에서는 실을 인연에 비유했다.

그중에서도 검은색 실은 끊어내야 할 실, 그럼에도 괜찮은 실로 등장한다.



나는 오래도록 모든 색깔과 두께의 실을 품고 싶었다. 어떤 실은 따뜻했지만 약해서 금세 끊어졌고, 어떤 실은 질겨서 절대 끊어지지 않았다.


때로는 그런 질긴 실을 다시 꿰매고 이으며,

징그럽게 오랜 시간 함께한 적도 있었다.


그중엔 시간이 지날수록 마음을 무겁게 조이고 묶는 실도 있었다. 나에게 그런 실이 있는 것처럼,

누군가에게 나는 검은색 실이었을 수도 있다.


한 육아 프로그램에서 본 적이 있다. “모든 아이와 친하게 지낼 필요는 없다. 친구와 클래스메이트는 다르다.”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가족 같은 직장은 없듯, 학교도, 이웃도 마찬가지였다.


나도 아직은 인생을 논할 만큼 살아보지 않아서 인지 실의 색을 구분할 줄 몰랐고 모든 실을 붙잡으려 애쓰기만 했다. 그러다 어느 날 깨달았다.

상처를 주기 위한 관계는 잘라내도 된다는 걸.


특히, 의도된 상처 앞에서는 반사! 하고 돌려보낼 마음도 필요했다. 검은 실을 마주하고 끊어내는 일은 결국 용기였다.



서서히 멀어지는 게 아니라,

가위로 싹둑—




검은 실을 끊고 나면, 방 안에 흩어진 머리카락을

한 곳에 모아 동글동글 말아 쓰레기통에 톡- 하고 버릴 때와 비슷하다.


이렇게나 많이 빠졌어? 놀랍고 허전하지만, 깨끗해진 방을 보면 마음이 시원한 것처럼.


그리고 머리카락은 다시 자란다.


검은색 실을 끊고 나면 새로운 인연은 또다시 시작된다. 나는 그걸 아이들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끊는 것도 용기라는 걸.



어느 날, 작은 아이가 말했다.

“사과는 받았는데요. 그래도 괜찮아진 건 아니에요. 잘못한 게 없어진 건 아니잖아요.”


그리고는 집에 와서 울었다.

“엄마, 미안해. 그런데 무조건 ‘괜찮아’라고 안 해도 되지? 그럼 또 괴롭히니까.”


장했다.


...



정말 장했다.



늦은 오후, 나는 전화를 한 통 받았다.

“‘괜찮아진 건 아니고요.’라고 말한 아이는 처음이에요. 용기 있는 아이로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나는 아이가 집에 와서 울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그 전화를 끊고 나도 눈물이 터졌다. 어쩌면 나보다 아이의 용기가 먼저였다. 내 아이인데, 잘 키워줘서 감사하다는 말이 이상하게 아프고 저릿했다.


검은색 실을 끊고 나니, 따뜻한 실들이 천천히 이어지고 있었다.




당신의 상처는 작지 않아요. 그럴수록 초강력한 용기가 필요할 때도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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