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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연이 Apr 04. 2019

과일가게 주인과 고객으로 만나 공동 창업한 사람들

"제철 과일이 얼마나 맛있는지 아세요?"

귤은 겨울이 제철인 줄 알았습니다.

뜨뜻한 이불 안에서 까먹는 귤은 가끔 사탕보다 달았으니까요. 그런데 실제 하우스 감귤의 제철은 8,9월이었다는 사실은 아일랜드박스의 스토리를 보고서야 알았습니다. 


제주도에서는 귤을 비롯해 천혜향, 한라봉 등 각종 감귤류가 생산됩니다. 과일마다 가장 맛있는 제철이 다르고, 제철에 맞게 먹어야만 적당히 시고 단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마트에서 사 먹은 한라봉이 왜 그렇게 밍밍했는지 알게 된 순간이었습니다.


궁금해졌습니다. 제철 과일은 때에 맞게 보내주는 서비스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또 수익은 날 수 있는지. 과일가게의 주인과 고객으로 만났다는 두 공동 창업자의 이야기도요. 그래서 만났습니다. 아일랜드 박스의 박용순, 전진호 메이커 님의 이야기를 지금부터 들려드립니다. 






안녕하세요! 먼저 아일랜드박스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제주도의 제철 신선 식품 사전 구매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트업 아일랜드박스입니다. 




쉽게 말해 과일을 제철에 맞게 보내드리는 서비스지요?


네 그렇습니다. 농수산물 상품이 가장 맛있는 제철에 전문가가 직접 맛을 보고 골라 검증한 최고 품질의 상품을 1년에 한 번씩 일괄 배송합니다. 




스토리를 보니 과일의 제철을 계절이 아닌 월로 나누시더라고요. 심지어 귤의 제철은 겨울이 아닌 8, 9월이었고요.

좋은 식품, 맛있는 음식을 먹기 원하는 소비자들의 욕구는 급속도로 커지고 있지만 보통의 소비자들은 수많은 식품들의 가장 맛있는 제철을 알기 어렵습니다. 또 겉모양 만으로 진짜 맛있는 과일, 채소, 생선 같은 신선 식품을 골라 먹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기에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작한 서비스입니다.




과일가게의 주인과 고객으로 만나 아일랜드박스를 창업하게 되셨다고 들었습니다. 주인의 입장에서는 원래 비즈니스를 해왔다고 해도, 고객이 비즈니스를 결심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먼저 고객이셨던 박용순 메이커 님께서 창업을 마음먹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저는 이전에 두 번의 스타트업을 창업한 경험이 있습니다. 보다 안락한 생활을 위해 제주도로 이주한 후에도 창업을 준비하기 위해 적절한 사업 분야를 찾고 있었고요. 앞선 2번의 창업이 성공적이지 못했고, 또 50대에 접어들며 창업을 준비하는 게 더욱 신중해졌습니다. 그때 과일가게 주인과의 우연한 인연이 창업의 방향을 잡아주었지요.


저는 부모님께 보내기 위해 시지 않고 당도 높은 귤을 보내달라고 하는 까다로운 고객이었어요. 그때 가게의 주인은 품종별로 맛이 좋은 제철이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좋은 품질의 귤을 보내주었죠. 소비자로서 저와 제 가족이 겪은 경험이 환상적이었고, 이를 토대로 구상한 사업의 주변 반응이 좋았어요. 또 최근 들어 도시에 계신 소비자들의 라이프 스타일도 저희 서비스에 충분히 관심을 가질 만큼 변화하고 있다고 생각했고요. 종합했을 때 크게 실패할 사업은 아니겠다고 결론을 내리고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대학교 졸업하면 취업해야 해, 취업하고 돈을 모아서 결혼을 해야 해.’처럼 우리 사회에는 보이지 않지만 가시적이고, 정해지지 않았지만 정해진 듯한 공식들이 존재합니다. 스토리를 보고 짐작한다면 메이커 님께서는 그런 공식에 억압받지 않는 시간을 보내신 것 같아요. 


저는 직장 생활에 올인해도 그 결과가 평생을 보장해주지 못할 거라는 생각을 오래전부터 해왔습니다. 또 내 시간을 내가 원하는 대로 쓸 수 있는 자율적인 생활을 원했죠. 그래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창업을 생각했고 창업하는 과정을 즐길 수 있었습니다. 대기업과 스타트업을 바꿔가며 옮겨 다닐 수 있었던 행운도 따랐죠. 다만 창업을 하는 과정에서 현실적인 문제들을 함께 헤쳐나가야 했던 아내에게 미안함이 남아 있습니다. (웃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공지능, 머신러닝 등 최첨단 기술이 매일같이 등장하는 IT 분야의 마케팅 전문가로 일하시다 전통 산업 분야인 농수산물 유통에 도전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셨을 텐데요.

저는 한국 기업인 삼성전자와 외국 기업인 노키아에서 근무하면서 국내외 IT 업계를 꽤 오랫동안 경험했습니다. 다이내믹한 IT 업계도 재미있었지만 이 시장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다른 영역에서 창업한다면 더 경쟁력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기술 분야로 창업을 했다가, 두 번째는 아시아의 에어비앤비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진 숙박 공유 플랫폼으로 창업을 했죠. 


이번 농수산물 유통 스타트업 역시 IT와 동떨어져있지 않습니다. 기존의 유통 서비스업에 인공 지능, 데이터 분석 같은 정보 기술과 감성적인 사용자 경험을 융합한 '스마트 농수산물 유통' 기업을 만드는 것이 아일랜드박스의 목표입니다.




'스마트 농수산물 유통'의 스마트를 담당하고 계시군요. 유통을 주로 담당하실 듯한 전진호 메이커 님에 대한 신뢰가 공동 창업을 결심하는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 생각합니다. 


전진호 대표는 과일가게 주인으로 만나기 전에 제주 스타트업협회에서 먼저 인연을 맺었습니다. 저는 창업을 준비하면서 네트워킹을 위해 협회 창립 멤버로 참여했고, 전진호 대표도 단순한 과일 장사가 아니라 체계적인 사업을 하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 스타트업 협회에서 함께 활동했습니다. 


거기서 과일가게 주인과 고객의 인연도 이어 갔습니다. 그냥 상인과 고객으로 만났다면 쉽게 서로의 지향점과 마음을 알기 어려웠겠지만 스타트업 협회 활동을 통해 같은 목표를 가졌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서로를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에는 전진호 메이커 님의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박용순 메이커 님과 마찬가지로 농산물과는 큰 상관없는 자동차용품 유통 사업을 하시다 제주로 내려오셨습니다. 사업을 정리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있으셨나요?


아내가 오랫동안 투병 생활을 했습니다. 이제는 완치 판정을 받았지만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아내와 함께 어려움을 극복해야 했습니다. 치료 후 인생의 후반기는 느긋하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고, 제주도야말로 저희가 원하는 생활을 할 수 있는 곳이라 생각해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2015년에 제주도로 이주했습니다.




우연히 과일 유통을 맡게 된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평생 직업으로 정한 뒤 슈퍼마켓의 말단 직원으로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과일 유통을 평생 직업으로 삼겠다는 생각은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생각은 아닌 듯합니다.

제주도에서 중년의 이주민이 잘 자리 잡을 수 있는 분야는 펜션이나 카페처럼 유행을 많이 타고 경쟁이 심한 영역이 아닌, 안정된 시장이 있지만 전통적인 방식에 머물러 있는 영역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과일 유통을 제 사업 분야로 정했습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함께 운영했던 자동차용품 유통업 경험도 도움이 될 거라 믿었고요. 


본격적으로 과일 유통 사업을 시작하기 전, 현지 시장을 이해하고 사업에 필요한 지식과 경험을 쌓기 위해 제주시 교외 지역에 있는 대형 마트의 청과 부서에 들어갔습니다.




마트의 말단 직원으로 일을 시작해 1년 만에 매출을 월 3천만 원에서 1억 2천만 원으로 키우며 팀장으로 진급하셨습니다. 비결이 무엇이었을까요?


시골 마트에서 과일은 주된 매출원이 아니었어요. 기존 과일 매출과 잠재 수요를 분석한 결과, 지역 내 소비자는 제사나 사찰 의식에 필요한 과일의 수요가 매우 크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제수용 과일을 집중 공략했습니다. 제수용 과일은 가격에 덜 민감하고 좋은 품질의 제품을 찾는 경향이 강해 주변 마트에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큼직하고 예쁜 고급 과일들을 구비해두었더니 소문을 듣고 멀리서 찾아오는 고객까지 생겼습니다. 또한 기존에 매출이 거의 없던 여행객을 대상으로 과일 택배 서비스를 강화했습니다. 마지막 날 번거롭고 급하게 기념품을 사던 여행객에게 '마트에서 쇼핑하고 택배로 보내면 가벼운 마음으로 공항으로 갈 수 있다'는 서비스의 장점을 부각했죠. 덕분에 매출이 급신장했습니다.




말로만 듣던 니치 마케팅이네요. 그렇게 제주도 과일 유통 시장을 연구한 뒤 곱은과일이라는 감귤류 전문 매장을 오픈하셨습니다. 과일의 제철에만 맞춰 판매한다면 수익성이 떨어질 수 있다는 걱정도 하셨을 것 같습니다. 


과일은 식당의 음식과 같아서 맛있고 믿을 수 있는 가게에서 꾸준히 구매합니다. 생각해보면 저도 그전에 믿음이 가던 한 곳에서만 과일을 구매했어요. 즉, 고객에게 주는 신뢰가 바로 매출로 직결됩니다다. 최근에는 가격보다 품질에 보다 초점을 두는 고객이 드러나 수익성이 떨어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때문에 현재 곱은과일 매장은 전화와 문자만으로 주문하시는 단골 고객의 매출이 전체 매출의 40% 정도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박용순 메이커 님을 만나 함께 아일랜드박스를 만드셨습니다. 처음 제안을 받았을 때의 생각과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곱은과일은 오프라인 매장의 특성상 365일 과일을 판매해야 하기 때문에 시기에 따라 판매하는 과일의 맛이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항상 고민했던 문제가 '과일이 가장 맛있는 적기에 집중해서 판매할 수 없을까?' 였어요. 이것은 고객의 만족과 생산자의 수익성, 사업의 지속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거든요. 마침 박용순 대표가 이런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고 해결해 보자는 창업 제안을 해주어서 큰 고민 없이 아일랜드박스를 시작했습니다.




‘제철과일’이라고 해봤자 여름에는 복숭아, 겨울에는 귤 정도가 전부였습니다. 아일랜드박스의 스토리를 보면서 과일의 진짜 제철을 알게 된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제철에만 수확할 수 있는 귤의 수가 충분한가요? 모자라서 내 차례가 안 오면 어쩌지 하는 생각도 듭니다.


1년 동안 제주도에서 생산되는 귤 품종의 규모를 모두 합치면 금액으로 했을 때 9천억 원에서 1조 원입니다. 이중 6-7천억 원이 육지 시장으로 팔리고요. 저희가 목표로 하는 상위 10% 이내의 고급 상품 규모는 어림잡아도 600억 원 규모입니다. 이만큼 큰 규모의 시장에서 생산량을 걱정한다면 아일랜드박스가 이미 거대한 대기업이 되어 있었겠죠. (웃음) 




다행이에요. 제가 먹을 과일은 넉넉하겠습니다. 퀄리티 컨트롤은 어떻게 하시나요?

품질 관리는 위미농협과의 협력이 큰 도움이 됩니다. 위미농협은 제주도 내 최대의 감귤 단위 농협인데요, 수확 전에 수시로 당도를 측정하며 품질을 관리하고 있어 저희에게 품질이 우수한 농가들을 추천해줍니다.


신기한 점을 하나 알려드리자면, 제주도민이 선호하는 귤 맛과 도시인이 선호하는 귤 맛이 조금 다릅니다. 저희는 그 차이를 알고 있기 때문에 추천받은 농장을 방문해 농장 안의 위치별, 과일 크기별 샘플을 직접 맛보고 가장 맛이 좋다고 생각하는 농장의 과일을 구매합니다. 


지금은 감귤만 자동화 시스템으로 당도를 선별할 수 있고, 한라봉이나 천혜향 같은 만감류는 직접 맛을 보고 분류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현재 위미농협에서 만감류의 자동 당도 선별 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 시설 투자를 진행하고 있어 하반기부터는 보다 높은 품질 관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희 프로젝트에 참여하신 서포터 분들 중에서도 과일 맛에 만족을 못하신 분이 계셨는데, 이 시스템이 도입된다면 이 같은 문제를 크게 줄일 수 있을 거고요. 


아직 창업 초기 단계라 그런지 한 품종 한 품종 보낼 때마다 예상하지 못했던 문제도 생기고 저희 스스로도 부족하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다양한 방법을 도입해 서비스 수준을 높이려고 합니다. 




아일랜드박스의 비즈니스 모델만 보아도 앞으로 그 수준과 규모가 더욱 커질 듯합니다. 제주 내 다른 과일을 활용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뻗어나갈 수도 있고, 꼭 과일이 아니더라도 가능하고요. 앞으로 아일랜드박스가 나아가고자 하는 방향, 브랜드의 비전은 무엇인가요?


당분간은 아일랜드박스를 제철 제주 귤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만드는 데 집중하려 합니다. 와디즈를 통한 개별 품종 펀딩뿐 아니라 한 번 주문하면 여러 품종을 제철마다 보내드리는 연간 구독 프로그램도 생각하고 있고요. 단체 선물용, VIP 고객 관리용 B2B 상품 등 귤과 귤을 응용한 상품 만으로도 1년 간의 사업 로드맵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정보 기술을 활용해 수요를 예측하고, 새로운 시장을 발굴해 우리나라 1차 산업에서도 높은 수익성과 성장성을 가진 기업이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이후 비즈니스가 자리 잡으면 귤 이외의 상품도 추가할 수 있을 거고요. 아일랜드박스가 제주 내에서 확실히 포지셔닝을 한 후에 전국 규모의 서비스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제주와 달리 다른 지역은 자기 고장 상품 만으로 1년 내내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 어렵거든요. 각 지역별로 파트너를 발굴하고, 생산자와 판매자가 협업하는 생태계를 만들어서 전문가의 검증을 마친 가장 맛있는 전국의 특산물을 1년 내내 구매할 수 있는 마켓플레이스를 만들 계획입니다. 


수확기 내내 상시로 판매하고 배송하는 다른 유통 서비스들과 달리 1년에 단 한번, 제철에 맞게 맛볼 수 있는 별미를 보내드리는 서비스를 만드는 것이 아일랜드박스의 궁극적인 목표입니다. 






아일랜드박스는 지난 1월 이후 3번의 펀딩을 진행했고 모두 성공했다.

그들의 펀딩 성공기가 궁금하다면 이곳 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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