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스 시판돈 여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다
라오스 시판돈(Si Pan Don)은 4,000개의 섬이란 뜻으로 메콩강에 크고 작은 섬 4,000개가 모여 있는 자연의 선물이다.
섬의 크기는 사람이 거주할 수 있는 규모가 있는 섬도 있지만 많은 섬들이 소규모며 섬들 중에는 한 사람이 설 수도 없을 만큼 작은 크기도 있다.
아무튼 이런 모든 섬을 모은 숫자가 4,000개나 된다.
시판돈은 베트남 여행을 마친 후 슬리핑 버스를 이용하여 하노이에서 훼를 거쳐 팍세에 도착하여 며칠을 머물다 팍세에서 나까송으로 이동하여 배를 타고서 4,000개 섬 중의 하나인 돈뎃(Don Det)으로 이동하였었다.
하노이에서 시작한 긴 여정이었다.
네팔어에 “끼 거르네”(Ke Gar Ne)라는 말이 있다.
네팔 사람들이 문제가 생기면 아주 자연스럽게 사용하는 단어이다.
“끼 거르네”의 의미는 "어쩔 수 없지 않은가?"이다.
네팔에 "끼 거르네"가 있다면 라오스는 “보뺀양"이 있다.
"보뺀양'은 "No Problem"혹은 “괜찮아”란 뜻이다.
라오스에선 심각한 문제든 사소한 문제든 모두 "보뺀양'이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뤄도 "보뺀양'이다.
아마도 코로나 팬데믹도 라오스에서는 “보뺀양”이며, 네팔에서는 “끼 거르네”라 했는지도 모르겠다.
“보뺀양”과 “끼 거르네”는 현재는 해결할 수 없지만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라는 믿음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결코 포기하거나 게으르거나 혹은 나태한 것은 아닐 것이다.
라오스는 불교국가이기에 “보뺀양”은 부처의 가르침에 따르는 깊은 불심에서 나오는 정신적 여유라는 생각도 든다.
흔히 라오스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른다고 한다.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이유가 “보뺀양“때문은 아닐까?
시판돈의 돈뎃에 도착해 숙소 몇 군데를 둘러보다 선착장에서 멀지 않은 메콩강가에 시설은 낙후하나 작은 발코니에 개인 해먹이 있는 저렴한 방갈로를 발견하고서 숙소로 정했다.
시판돈은 첫인상이 참 잘 왔다는 느낌이 왔던 곳이다.
며칠 동안 시판돈의 돈뎃에서 지내며 느낀 것은 시판돈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미덕인 여행지라 말하고 싶다.
여행지도 여행자와 궁합이 있는데 시판돈은 나와 궁합이 잘 맞았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심심하거나 지루하지 않았고, 바쁘지 않았으며, 그냥 단순해서 좋았다.
여행지에서 억지로 추억을 만들거나 꼭 무언가를 하여야 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시판돈에서는 더우면 강에서 수영하고, 잠 오면 해먹에서 낮잠 자고, 가져온 책이 있으면 책을 읽거나 음악을 들어도 된다.
아니면 자전거를 타거나 걸어서 주변을 둘러보다 메콩강을 바라보며 맥주 한잔 마시고, 옆자리에 대화 상대라도 있으면 농담을 나누고, 배가 고프면 시간에 관계없이 배를 채우는 일상을 보내면 되는 곳이다.
시판돈은 일상과 여행이 구분되지 않는 곳이라고도 말하고 싶다.
일상이 여행 같기도 하고 여행이 일상 같기도 한 곳이다.
일상에 있으면 여행이 그리워지고 여행을 하면 일상이 그리워지는 것이 통상적이다.
그러나 시판돈은 여행과 일상이 경계를 서로 넘나들고, 때론 무너져 여행과 일상이 하나가 되기도 하고 분리되기도 하는 그런 곳이었다.
시판돈은 나처럼 게으르고 아무것을 하지 않아도 무심히 지낼 수 있는 여행객에겐 더없이 좋은 곳이지만 다른 여행객에겐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곳이다.
시판돈의 시간은 느리게 흐르기에 느리게 지내면 된다.
온종일 웃통을 벗고 지내도 좋고, 잠만 자는 나무늘보가 되어도 좋고, 유수도식해도 좋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시간을 허송하는 것이 아니다.
설사 시간을 허송해도 “보뺀양”이다.
시판돈의 매력이다.
무라까미 하루끼의 여행에세이 “라오스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에서 이렇게 라오스를 이야기한다.
“라오스(같은 곳)에 대체 뭐가 있는데요?”라는 베트남 사람의 질문에 나는 아직 명확한 해답을 찾지 못했다.
내가 라오스에서 가져온 것이라고는, 소소한 기념품 말고는 몇몇 풍경에 대한 기억뿐이다.
그러나 그 풍경에는 냄새가 있고, 소리가 있고, 감촉이 있다.
그곳에는 특별한 빛이 있고, 특별한 바람이 분다.
무언가를 말하는 누군가의 목소리가 귓가에 남아있다.
그때의 떨리던 마음이 기억난다.
그것이 단순한 사진과 다른 점이다.
그곳에만 존재했던 그 풍경은 지금도 내 안에 입체적으로 남아있고, 앞으로도 꽤 선명하게 남아 있을 것이다.
그런 풍경들이 구체적으로 어떤 쓸모가 있을지는 아직 알 수 없다.
결국은 대단한 역할을 하지 못한 채 한낱 추억으로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원래 여행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인생이란 그런 것이 아닐까.
다시 가고픈 라오스 시판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