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은보리 Oct 18. 2021

목포의 두 겹 하늘

목포로 스케이트 보드 타러 간 두 사람의 이야기

프리랜서인 나는 남편의 스케줄에 여름휴가를 맞춘다. 우리 둘 다 더운 것, 사람이 많은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10월 중에 날짜를 잡곤 한다. 이번에는 10월 중순의 2박 3일, 목포로 떠나기로 했다. 몇 년 전부터 스케이트 보드를 타기 시작하여 아직도 열심인 남편과 올해 초부터 운동 삼아 스케이트 보드를 타기 시작한 나, 둘 다 보드를 백팩에 매달고 목포의 평화광장이라는 곳을 목표로 기차에 올랐다.


2시간 반 정도를 달려온 기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기차역 근처에서 점심으로 먹은 낙지 비빔밥이 위장 안에서 '나 먹혀버린 거야?'라고 소스라치게 놀라기도 전에 평화광장에 도착. 바로 뒤에 있는 호텔을 예약해뒀는데, 짐과 보드를 들고 오느라 이미 약간 지치긴 했지만 체크인 전에 광장을 둘러보았다. 한눈에 봐도 스케이트 보드의 휠이 거침없이 나아갈 것 같은 바닥,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넓은 크기, 그리고 눈앞에 보이는 수평선과 초가을의 선선한 공기에 우리의 마음은 두근거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바로 보드를 타서 체력을 소모하는 일은 있어선 안된다. 살짝 굴러가는 맛만 본 뒤 체크인을 하고 커피를 마시며 휴식 시간을 가졌다. 그래야 이따가 본격적으로 실컷 보드도 타고 생맥주도 한 잔 하고 그리고 내일도 타고 모레도 탈 것 아닌가!!


그 이후로는 시간이 매우 빠르게 흘러갔다. 상대성이라는 것은 예문을 읽어가며 어렵게 배울 것이 아니라 휴가지에서 시간이 얼마나 빨리 가는지만 생각해보면 될 일이다. 우리는 보드도 실컷 타고 생맥주도 원 없이 마셨으며, 잠은 충분히 자고 해장도 든든히 했다. 목포가 처음인 남편을 위해 한낮의 쨍한 햇살을 한가득 받아가며 갓바위도 구경하고, 해양유물전시관과 자연사박물관도 관람했다. 둘째 날 오후에는 늦은 점심을 먹으며 미리 낮술을 마시고 호텔에서 한잠 푹 자고 난 뒤 목포 로컬 스케이터들이 모여드는 저녁 시간에 광장으로 나갔다. 이 얼마나 용의주도한가!


이내 마지막 날 아침이 밝았고, 11시에 문을 여는 식당에서 게살 비빔밥으로 야무지게 식사를 한 뒤 마지막으로 광장에 가기로 했다. 평일 점심시간의 광장에는 자전거라든가 킥보드라든가, 아무튼 무언가를 타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산책 중인 사람들과 점심을 먹으러 가는 직장인들의 그림자만 띄엄띄엄 드리워졌다. 나는 또 예의 이제 마지막이야... 이제 또 언제 여기에 오게 될까... 하는 생각에 잠긴 채 광장 구석에서 목포 로컬 길고양이에게 닭고기를 던져 주고는 물끄러미 먹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햇살이 점점 강해지고, 이제는 슬슬 목포역 쪽으로 이동해야지 싶어 한참 알리를 연습 중인 남편에게 가자는 손짓을 하고, 살짝 푸시오프를 해서 멀리 놓아둔 가방을 가지러 갔다. 아니 가려고 했다. 그런데 내 몸이 도착한 곳은 가방 근처가 아니라, 휠이 잘 나아가 우리를 감동시켰던 아주 딱딱한 그 바닥이었다. 잠시 어리둥절했지만... 그렇다, 목포 평화광장에서 마지막 푸시오프를 하다가, 보드가 무언가에 걸려 나는 바닥에 꽤나 세게 내동댕이쳐진 것이다...!


팔꿈치로 바닥에 착지하며 왼쪽 팔, 허벅지와 다리를 전부 바닥에 부딪혀서 온 몸이 쨍하게 욱신거리고 이거 팔 부러진 거 아냐 라는 생각이 빠르게 머리를 스쳐 지나감과 동시에 멀리서 엎어진 나를 보고 달려온 남편이 당황하며 나를 살피는 동안, 바닥에 완전히 누운 자세가 된 나의 눈에 목포 하늘이 한가득 들어왔다.

낮의 햇살이 너무 강해 눈을 뜨기 힘들었는데 남편이 상체를 내밀어 내 눈에 일직선으로 달려드는 빛을 가려주고 보니, 파란 하늘에 흘러가고 있는 구름이 두 겹이었다. 더 위에 몽글몽글하게 뭉쳐져 있는 구름들은 아직 시간이 있으니까 뭐 라는 듯이 조금 천천히 움직이고 있었고, 그 밑에 흐릿한 연기처럼 듬성듬성한 구름들이 이번 기차를 놓치면 끝이야!!!!라는 듯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었다.


머릿속에 그런 생각이 들었다. 아, 목포 하늘은 두 겹이구나... 그리고 팔은 안 부러졌네. 움직이네, 움직여. 다행이다!!!!!!!




#목포

#목포여행

#스케이트보드










작가의 이전글 기억 속 요코하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