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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성사진사 Jan 03. 2023

게스트하우스는 처음입니다

고양이의 마음 04

너무 늦게 도착하다     

우리나라에선 처음 들러본 게스트하우스. 춘천. 낯선 감정을 만끽하기에 너무 늦은 방문과 더 이른 이별. 며칠 전 예약을 하고 찾아갔지만 난 새벽 2시가 다 돼서 도착했다. 일찍 가보고 싶었는데. 마음이 원하는 대로 발길을 돌렸더니 방황이 길었다. 

게스트하우스 매니저로 보이는 청년이 베개에 뉘었던 머리를 하고는 새벽 방문자를 맞이했다. 벌써 두 시간도 전에 모두 잠들었다고. 눈을 반쯤 뜨고는 개미의 목소리로 나지막이 얘기한다. 여덟 명이 머무는 방 한편에 남은 침대를 쓰라고. 궁금한 게 떠올라 질문을 하려는데 개인 물품을 주고는 자기 할 말만 하고 얼굴을 피한다. 사라졌다. 

어둠에 남겨져 그가 내민 수건 하나와 칫솔을 주섬주섬 챙겨 들고 걸었다. 남의 집에 몰래 들어온 도둑이 이런 맘일까. 컴컴함이 길을 안내한다. 동공이 어둠과 친밀해지기도 전 빈손 하나로 벽을 쓰다듬으며 방을 찾는다. 스마트폰 배터리는 9%. 어둠을 밝히려다 위태로운 전화기를 확인한다. 스마트폰 불빛이 세상을 비추는 10초. 성냥팔이 소녀의 심정으로 빛을 아껴 밝히며 매니저가 안내한 방까지 도착했다.

도미토리룸 구석 이층. 어둠이 푸근히 감싸 안아 더 좁아 보이는 침대. 사방으로 에워싼 남자들의 거친 코고는 소리와 들숨 날숨에 좁은 방 산소를 나눠 마셔도 되는지 덜컥 겁이 났다. 이층 침대로 오르는 사다리를 디뎌 내 자리에 몰래 짐을 내려놓았다가 이내 집어 들고 거실로 나왔다. 

스마트폰 충전기를 찾았는데 가방에는 없다. 가지고 오지 않은 게다. 걱정은 두근대는 가슴 위로 기어올라 얼굴까지 화끈 거리게 만든다. 짐을 다시 가져다 놓고 조용히 욕실을 찾아 들어가 씻었다. 그리곤 다시 숨소리를 죽이며 돌아와서 내 키보다 높은 침대에 올라와 몸을 뉘었다.     



잠에서 깨다

피곤했다. 사실 종일 걸었다. 하나도 피곤하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분명 이 생각 저 생각을 하며 뒤척였는데, 어느 순간 나도 몰래 잠에 들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보통 학창시절에 그런 경험이 많다. 수업시간. 졸면 안 되는 순간. 졸음이 쏟아지지만 억지로 버텨내며 잠을 방어했는데. 분명 잠에 든 적이 없는데, 깨어난다. 주변 친구들은 웃는데 난 당황스럽다. 정말 졸지 않았는데, 깨어나다니. 그날도 그랬다.

누군가의 고함소리에 눈을 떴다. 스마트폰을 눌러서 보니 자리에 눕고 40분이 지났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함이 아니라 누군가가 코를 고는 소리다. 거인이 한손으로 움켜쥔 듯 작은 방에 여덟 명의 남자가 고개를 뉘었다. 술도 마셨겠다, 누구 하나 큰소리로 코를 곯아도 신기할리 없는 상황. 소리가 얼마나 컸던 것일까. 코골이 왕에게 승리를 내어준 일곱 명의 난쟁이 코골이들의 패배가 어둠을 밝혔다. 코골이 왕에게 당한 건 나뿐만이 아니었다. 가장 안쪽 이층침대에서 베개에 고개를 뉜 채로 내려다본 풍광. 

한명씩 잠에서 깨더니 스마트폰으로 시간을 확인한다. 나를 포함해 하나도 빠짐없는 일곱 개. 코골이 왕의 승리는 쉬지 않고 어두운 고독을 가른다. 소음이 아니라 고함이다. 스마트폰 불이 켜지지 않은 입구쪽 1층 침대. 그곳에 코골이 왕이 잠을 자고 있었다. 소리의 방향은 가늠할 수 없다. 방을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 그저 혼자만 코를 골며 잠을 잔다.     



다시 밖으로 나오다 

게스트하우스에 걸음을 들이고 다시 걸음을 내보내기까지 정확히 5시간. 매니저와 얼굴을 마주한 1분 남짓한 시간. 손님으로 가득하다는 이곳에서 아무도 날 본 사람이 없고 내가 본 사람이 없다. 자다 깬 남자들의 실루엣, 좁은 방에서 나눠 마셨던 산소, 코골이 왕과의 사투, 패배. 맞춰놓은 알람이 울리기 4분전, 몸을 일으켰다. 남아있는 배터리 1%. 알람이 울리기도 전에 꺼질 거라 생각했던 조바심. 단 한 번 편히 잠들지 못했다.

이를 닦고 욕실에 남은 엄지 손톱만한 비누로 얼굴을 문댔다. 이곳에서 한 거라곤 이빨만 두 번 닦고 세수를 두 번 한 일. 그리고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왔다. 

찬 공기. 언젠가 우리나라에서 춘천이 가장 춥다고 한 날, 오봉산에 올랐다. 소양강댐에서 배를 타고 들어가는 그곳. 눈이 무릎 위로 한참 위까지 쌓였다. 당연히 입산금지. 길도 이정표도 숨겨진 그날, 위험하다고 절대 생각도 하지 말라던 협박 같은 당부를 등 뒤로 떨구고 산을 올랐다. 문득 계절도 시간도 다른 그날의 춘천이 떠올랐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춘천역까지 걷는다. 로션을 바르지 않은 피부에 찬바람이 맹공을 퍼붓는다. 따갑다. 방패하나 들지 않은 적십자 요원에게 총을 난사하는 것처럼. 억울하다. 언제 또 이런 기분으로 걸어보랴. 거리는 태양이 깃들지 않아 시퍼렇다. 해가 지고 난 어둠은 시뻘겋고 해가 뜨긴 전 어둠은 시퍼렇다. 아마도 하루를 마친 열정과 하루를 시작하는 열정의 차이리라. 챙겨온 카메라가 생각나 새벽을 찍었다. 시리도록 차가운 공기와 사람이 수 없이 오가며 이야기를 흘렸을 길. 그 길 위에 죽어서 널부러진 가을의 낙엽, 

공기가 차가울 땐 웃어도 눈물이 흐른다. 슬퍼서가 아니라 찬 공기가 눈물을 떨구게 한다. 하지만 그만큼 공기가 차갑지는 않았던 새벽, 추위를 핑계 삼아 울었다. 너무 좋아서 눈은 웃고 눈물샘은 운다. 입꼬리는 웃고 마음은 울었다. 고독이 때로 사람을 즐겁게 하지만 온전하지 않은 가슴은 외로움에 운다. 

어머니의 자궁에서 세상 밖으로 흘러나올 때 사람은 시인이 된다. 너무 좁아서 손톱만한 몸뚱이로 시작해야하는 자궁 인생의 처음. 버텨온 버팀을, 견뎌온 견딤을 습관으로 여기며 태어난다. 때로 마음을 졸이고 왼쪽 갈비뼈 안쪽에서 쿵쾅대는 심장이 아파 눈물을 흘린다. 가슴이 아프다는 말을 정말로 가슴이 아파서 입밖으로 내뱉게 되는 날. 너무 슬프면, 정말 심장 한편이 아파서 운다. 울어서 아프고 아파서 운다. 뇌 한쪽에 쓸데없는 생각을 가두고 재빨리 소모했다.

멀지 않은 거리를 살뜰히 걸었다.      



새벽 기차에 오르다   

가장 이른 시간. 춘천에서 서울로 향하는 기차에 올랐다. 종일 걷고 잠도 자지 못해서 쌓인 피로가 긴장이 풀리면서 한 번에 몰려온다. 강한 주먹 위에 솜을 둘둘 말아서 펀치를 날렸을 때, 그걸 맞으면 이런 느낌일까. 포근하지만 깊은 피로다.

잠이 온다. 정말 잠이 온다. 뭔가에 취하면 이런 느낌일까. 열차 의자에 몸을 맡겨 기대고 눈을 감고 숨을 반씩 끊어 쉬며 손은 타자를 친다. 마약에 취한 사람처럼,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굳이 말짱하지 않아도 그래서 꽤나 괜찮은 사람으로 오해받지 않아도 이게 나고 내가 이거다. 

자면서 글을 쓴다. 생각을 먼저 하고 글을 쓰는 것보다는 글을 쓰고 생각하는 쪽을 선택한다. 어린 시절 가위에 자주 눌릴 때 자면서도 책을 읽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자다가 말짱해지는 가위눌린 순간 혹시 내가 누운 침대 양옆으로 읽고 싶은 책을 복사해서 순서대로 펼쳐놓으면 가위에 눌리고 난 뒤 순서대로 읽을 수 있지 않을까. 난 가위가 눌리면 몸은 침대에 있지만 책상 위에 있는 책을 읽을 수 있었다. 

친구들이 이런 날 무서워했고 교회 선생님은 이런 말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난 시험에 든 거라고 했다. 그런데 난 책이 좋았다. 읽어 제끼는 모든 것이 좋았고 눈에 보이는 종이에 글을 쓰고 마음을 써 내려가는 게 좋았다. 엄마에게 처음 뺨을 맞았던 날을 떠올린다. 나는 노트며 모든 교과서 모서리 남는 공간에 글을 썼다는 이유로 맞았다. 공부에 관심이 없느냐고. 커서 뭐가 되고 싶으냐고. 시인이라는 말도 꺼내기 두려울 만큼 엄마는 눈에 가시를 담고 계셨다. 그렇게 시인은 어른이 된다. 시 한 줄, 글 하나 마음대로 써보지 못하고. 가슴에 담았던 꿈은 가시에 찔린 채 자라지 못하는 울타리에 넣어 방부제로 덮어두었다. 눈물. 울어서 안 되는 곳에서의 눈물은 죄다. 웃어서 안 되는 곳에서 웃음은 죄다. 난 죄짓는 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모두가 예스라고 할 때 이따금 못된 상상이 노를 외친다. 남들처럼 살아본 적 없는 다름. 틀림이 더 많았던 날     



사람은 마음에 담지 말아야 할 사람을 담고 운다. 마음에 담았어야 할 사람을 비우고 운다. 사람은 생각의 간절함과 행동의 간절함이 다르다. 생각의 낮음과 행동의 낮음 역시 다르다. 누가 누구를 정의하고 어떤 말로 어떤 행동을 정의할 수 있을까. 제 마음 하나 자기 멋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제 몸 하나 자기 의지대로 움직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마음을 멋대로 움직일 수 있다면 사랑하고 싶은 사람을 더 깊이 사랑할 수 있으며 잊고 싶은 사람은 자를 대고 선을 긋듯 잊어야 한다. 그 누구도 상처받지 않고, 그 누구도 사랑으로 울어서는 안 된다. 사람은 아프다. 마음 때문에 마음이 아프고, 상처 때문에 상처가 아프다. 가슴이 아프다고 하면, 그게 너무 아프다고 말하면, 어느 순간 정말 심장 한쪽이 아프다. 적당히 아프면 마음이 아파서 울지만, 마음이 아파서 울면 소리 내어 울지만, 너무 아픈 가슴이면, 심장이 저미는 통증에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하고 운다. 마론 인형처럼 표정도 없이 그냥 눈물만 흐른다. 그땐 웃어도 울고, 울면서도 운다. 우는 내가 불쌍해서 또 운다. 심장이 아프면 그래서 아파서 죽을지도 모른다. 의지대로 자기 몸을 움직일 수 있다면 우린 공부의 왕이 되어야 한다. 알람이 울리면 기계처럼 일어나고, 정해진 시간에 운동할 수 있으며, 짜여진 식단대로 음식을 먹어야 한다. 아무도 살찌지 않고, 아무도 아프지 말아야 한다. 우린 몸이 원하는 대로 마음을 내어준다. 공부해야 하는 데 쉬었고, 일어나야 하는데 잤으며, 참았어야 하는데 먹었다. 의지는 이미 착한 멍멍이에게 준 지 오래. 건강을 잃은 것도 내 책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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