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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mmer Dec 03. 2018

22_두근거리는 삶*

하와이 편

하와이에서 반년,

중미에서 한달, 한국에서 반년.

생계형 직장인이

1년간 놀면서 되찾은

77가지 삶 이야기.



하와이대학교에서의 10주 어학연수 프로그램이 끝날 즈음, 같이 수업을 듣는 일본인 마사코네 집으로 다들 모였습니다. 하와이에 오려고 오사카 시청을 그만둔 마사코, 후쿠오카 관광청을 휴직한 레이코, 여행사에 사표를 낸 와카나, 커피숍을 그만둔 사야, 영어학원을 퇴사한 무즈코, 남편을 홀로 도쿄에 두고 온 가정주부 유미까지. 하던 일도 전혀 다르고 나이도 천차만별이었지만 우리는 '하와이', '기존 삶과의 단절'라는 공통점만으로도 아주 끈끈한 동지가 되었지요. 그날은 며칠 뒤면 일본으로 돌아가는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하려고 모였는데요, 헤어지는 게 너무 아쉬워서 짧은 영어로 아주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나온 미래의 계획 이야기. 시작은 무즈코였어요.


“태어나서 한 번도 면접을 본 적이 없어. 아버지가 운영하는 학원에서 쭉 일해왔거든. 그런데 최근에 목표가 하나 생겼어. 3년 뒤에 다시 하와이에 올 거야. 여기서 영문과 대학원을 졸업한 다음에 외국 랭귀지 스쿨에서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 일본어로 영어를 가르치는 게 아니라 영어로 영어를 가르치고 싶어.”


무즈코의 얘기가 끝나자마자 유미가 말을 이었습니다. 요새 자신도 하와이 칼리지에 입학해서 한국어나 중국어를 전공해볼까 생각하고 있다고요. 왜 한국어야? 한국어는 별로 실용성이 없잖아?라고 묻자, 그냥, 배워보고 싶어서, 라는 대답이 활짝 웃는 표정과 함께 돌아왔습니다. 내일모레면 환갑인 그녀에게 외국어 공부는 가산점을 얻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다른 언어를 배우는 그 자체가 유희였던 거지요. 그런 그녀에게 실용성을 논하다니 저도 참 접니다. 득이 되고 실이 돼야만 가치 있는 배움으로 취급하는 치열한 연령으로 살다 보니 그런 느슨한 마음으로도 얼마든지 배움을 시작할 수 있다는 걸 잠시 잊었던 거지요.


며칠 전 버스 안에서 레이코와 마사코도 이런 얘길 했었습니다. 예전부터 미국이란 나라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고. 그런데 하와이에 오고 나니 이젠 미국 본토는 어떤 곳일까 궁금해졌다고. 그래서 내년에 둘이서 차 한 대를 빌려 국도 66번을 타고 시카고에서 라스베이거스, 그랜드 캐넌, 로스앤젤레스까지 가볼 거라고. 우연인지 필연인지 저도 이 무렵 그동안 실행할 엄두가 나지 않았던 글(지금 여러분이 읽고 계시는)을 써야겠다고 마음먹었던 터라 서로가 서로를 격려하고 응원해주었습니다. 밤 열 시가 넘어 슬슬 집에 가기 위해 밖으로 나왔을 때 우리는 수학여행에 온 여고생 마냥 살짝 들떠 있었지요.


예전엔 값싼 술로 꿈에 대한 얘기만 했다.
요즘은 비싼 술로 돈에 대한 얘기만 하고 있다.

어느 일본 술집의 카피입니다. 몇 년 전 사무실에서 이 카피를 처음 보았을 때 가슴이 뜨끔했습니다. 언제부턴가 사람들을 만나면 저도 그렇고 그들도 그렇고 대화의 주를 이루는 건 결혼이나 연봉, 이직, 집값 얘기뿐이었거든요. 3,40대에게서 그들의 재미있는 계획, 반짝반짝한 꿈 얘기를 듣는 게 정말 오랜만이었습니다. 꿈이라는 단어에 완전히 무덤덤한 나이가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그날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무척 설레더군요.  


저걸 이룰 수 있을까 없을까 하는 성공 여부는 더이상 제 관심사가 아닙니다. 도중에 그만두면 어떻고 계획을 바꾸면 또 어떤가요. 여전히 꿈을 꿀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게 그냥 멋있잖아요. 1년 후에도 10년 후에도 계속 무언가를 꿈꿀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꼭 이뤄내지 않더라도 꿈을 꾸는 행위 자체를 유희했으면 좋습니다. 아직 탑승하지 않은 비행기 티켓을 안쪽 호주머니에 품고 사는 것처럼, 언제나 삶에 두근거릴 수 있게.


친구들과 오아후 코코헤드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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