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와이 편
하와이에서 반년,
중미에서 한달, 한국에서 반년.
어느 생계형 직장인이
1년간 놀면서 되찾은
77가지 삶 이야기.
1994년 로스앤젤레스에서 지진이 일어나 정전이 됐습니다. 일부 주민들은 밤하늘을 보고 깜짝 놀라 경찰에 신고를 했지요. 사유는 하늘에 “거대한 은빛 구름”이 나타났다는 것. 알고 보니 그것의 정체는 은하수였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은하수를 말로만 들어봤지 실제로 본 적이 있어야죠. 인공조명으로 인해 낮처럼 환해진 밤의 세상. <잠의 사생활>이란 책에 보면 미국 주민 중 3분의 2, 유럽 주민 중 약 절반이 밤하늘이 너무 밝아서 맨눈으로 은하수를 볼 수 없는 곳에 살고 있다죠. 우리는 어떨까요? 최근 조사에 따르면 한국인 90% 정도가 별을 완벽하게 볼 수 없는 지역에 살고 있다네요.
십여 년 전 인도에 갔을 때 오르차라는 작은 마을에서 머문 적이 있습니다. 하루는 저녁을 먹고 게스트하우스 옥상에 올라가 일행들과 놀고 있는데 갑자기 마을 전체가 정전이 되었습니다. 가로등이며 전등불이며 모든 조명이 꺼지자 밤하늘의 스위치가 탁 켜졌습니다. 수많은 별들이 일제히 반짝반짝. 하지만 채 감탄하기도 전에 전기가 들어왔고 동시에 별들은 제모습을 감추었지요. 다시 육안으로 볼 수 있는 별이라곤 고작 열 손가락 정도. 그때 알았습니다. 밤하늘을 빼곡히 채우던 별들은 사라진 게 아니라 계속 제자리에 있었다는 걸. 단지 눈으로 보지 못했을 뿐.
별은 저에게 노스탤지어 같은 것입니다. 별이 사라진 텅 빈 밤하늘을 보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아련해지죠. 아무 생각 없이 고개를 들었을 때 시야에 별이 꽉 차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자주 생각하곤 합니다. 그 소원을 마침내 하와이 빅아일랜드 섬에서 이루었지요.
친구와 드라이브를 한 후 에어비앤비로 돌아와 시계를 보니 아직 오후 6시도 안된 시간. 그런데도 바깥은 검은색 크레파스를 몽땅 써서 칠한 스케치북처럼 새까맸습니다. 밥 먹기 전에 가볍게 산책이나 할 겸 마당을 나서는데 사방이 칠흑이어서 문자 그대로 한치 앞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혹시나 하고 고개를 들어 올린 순간, 저는 그만 로스앤젤레스의 주민이 되어버렸습니다. 경찰에 신고하는 대신 옆에 있는 친구에게 물었지요. 저것이 무엇이냐고. 친구는 답했습니다. 저것이 은하수라고.
정전이 되지 않아도, 천문대에 오르지 않아도, 망원경이 없어도, 그냥 동네에서 그냥 맨눈으로 고개만 들면 볼 수 있는 은하수. 집 돌담에 벌러덩 누워 그토록 보고 싶었던 별을 천천히 오랫동안 보았습니다. 청승맞게 눈물이 조금 나왔습니다.
십년 전쯤인가 코닥이 디지털카메라 시대를 따라가지 못해 필름 생산을 중단한다는 소식을 접한 적이 있었습니다. 충격이었습니다. 아니, 그보다는 슬펐습니다. 갖고 있는 필름 카메라도 없으면서 슬퍼했던 까닭은, 앞으로 필름을 구매하지 못한다는 단순한 이유를 넘어 필름 사진이 주는 어떤 감수성 하나를 영영 잃게 되는 기분 때문이었습니다. 필름 사진에는 디지털 사진으로 대체할 수 없는 감성이 있으니까요. 별이 없는 밤하늘을 볼 때마다 느끼는 기분도 비슷한 것 같습니다. 별이 주는 특별한 감수성 하나를 잃게 된 슬픔.
여행이 주는 감수성을 음악이 대체할 수 없습니다. 음악이 주는 감수성을 영화가 대체할 수 없지요. 영화가 주는 감수성을 책이 대체할 수 없고요. 각각의 감수성은 개별적인 영역을 가지고 있습니다. 별이 주는 감수성 역시 음악이나 미술, 여행과 같은 걸로는 대체할 수 없는 영역이 있습니다. 어쩌면 그 예쁘고 소중한 감수성을 잃고 싶지 않아서 저는 그토록 별을 갈망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