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기를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세대다”
“우리는 자기를 말하는 법을 잃어버린 세대다”
"자서전 쓰기 강좌에 참여해 보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대부분 사람들의 표정에는 얼음 같은 경직이 스친다.
"내가 무슨 자서전이야…"
"그건 유명한 사람들이나 쓰는 거 아닌가요?"
"쓸 이야기가 없어요. 저는 평범하거든요."
‘자서전’이라는 말은 너무 무겁다. 이 단어에는 마치 삶 전체를 정리하고, 타인의 인정을 받아야만 의미가 있는 문서처럼 느껴지는 면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그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남이 써주는’ 것, 혹은 ‘죽기 전에 남겨놓는 유서 같은 것’으로 오해한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 말하고 싶다.
‘자서전’을 그렇게 거창하게 생각하지 말자. ‘자서전’이라는 단어가 부담스럽다면, 그냥 ‘경험담’이라고 생각해 보면 어떨까?
나의 삶에서 일어난 어떤 사건, 내가 감당해 낸 슬픔, 내가 깨달은 작은 기쁨들. 그것들을 솔직하게, 나의 언어로 풀어내는 일이 바로 자서전 쓰기의 시작이다. 그것은 대단한 업적이 없어도, 유명인이 아니어도 가능한 일이다. 오히려 평범한 사람이 솔직하게 전하는 이야기야말로 더 많은 사람에게 공감과 위로를 전할 수 있다.
좋아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에 ‘사연’을 적어 보내는 것처럼 ‘내 이야기’를 써보자.
그런데 한국은 어떤가? 우리가 아는 자서전 대부분은 정치인, 대기업 회장의 위인전이다. 잘난 척과 자기변명으로 점철된 한국의 자서전은 홍보를 위한 값비싼 찌라시로 전락해 버렸다. 인사치레로 사는 사람들은 있을지 몰라도 정말 재미있고 감동적이어서 읽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이유는 분명하다. 그 안에는 ‘진짜 이야기’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의 자서전이 영화화되는 이유는 그것이 특별한 업적 때문이 아니라, 인간적인 진실을 담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누군가의 영광보다 고통, 성공담보다 실패담, 정답보다 방황에 더 깊이 공감한다. 그리고 저자가 좌절을 극복하는 과정 속에서 깨달음을 얻고 성공을 거두는 모습을 보며 감동을 받는다.
자서전은 누군가가 살아온 삶의 '서사'다. 그리고 ‘서사’란 결국, 사람이 부딪히고 깨지고 다시 일어나는 이야기다.
그게 우리 모두의 인생이니까.
우리는 어릴 때부터 자기 이야기를 말하는 법을 배운 적이 없다. 오히려 우리는 그걸 숨기는 법을 배웠다.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려보자. 담임선생님은 말했다. “일기 써왔니?” 우리는 숙제처럼 일기를 써내야 했다. 처음에는 정말로 나의 하루를 기록했다. 친구와 싸운 이야기, 엄마한테 혼난 일, 혼자 울었던 밤. 하지만 그 일기는 선생님에게 제출해야 했다. 그리고 돌아오는 일기는 논술 첨삭처럼 빨간 펜으로 줄이 그어져 있었다.
“이건 무슨 말이니?”
“띄어쓰기 다시 해오세요.”
“욕은 쓰면 안 되지.”
“기분이 왜 나빴는지 이유를 써야지.”
그 순간부터 우리는 자기감정의 일부를 숨기기 시작했다. 선생님이 싫어할 말은 빼고, 착한 아이처럼 보일 이야기를 쓰고, 감정을 감추고 문법에만 신경 쓰기 시작했다. 일기는 더 이상 나를 위한 글이 아니라, 검사받기 위한 글이 되어버렸다.
어른이 되어서도 마찬가지다. 입시나 취업을 준비하면서 지긋지긋하게 쓴 ‘자기소개서’를 쓰면서 내 이야기를 남에게 들려준다는 것에 더더욱 거부감을 가지게 된다.
하지만 나는 말하고 싶다. 당신의 이야기는 중요하다. 그것이 설사 하찮고, 사소하고, 부끄러워 보일지라도, 그것은 오직 당신만이 할 수 있는 고유한 이야기다. 그것을 말할 수 있어야, 비로소 우리는 자기 삶의 주인공이 된다.
생각해 보면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의 경험담을 듣는 걸 좋아한다. 유튜브의 인기 콘텐츠는 성공한 CEO의 조언보다는, 이직 후기나 연애 실패담이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이 사람도 그랬구나” 하는 순간,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우리는 이야기로 살아간다.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을 돌아보고, 이야기를 나누며 타인과 연결된다. 그리고 그 연결은, 때로 우리를 다시 살아가게 하는 힘이 된다. 자서전은 그런 이야기다. 내가 나의 삶을 한 걸음 떨어져 바라보고, 그것을 천천히 풀어내며 정리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축복하는 과정이다.
그것은 세상을 향해 "이게 나야"라고 선언하는 일이자, "그래도 괜찮았어"라고 스스로를 다독이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니 이제 이렇게 말해보자.
“내 삶도 누군가에게는 한 편의 드라마가 될 수 있어.”
“나는 말할 가치가 있는 인생을 살았다.”
자서전 쓰기는 그 확신을 되찾는 작업이다.
그리고 나는 당신과 함께, 그 여정을 천천히 시작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