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놓은 아사달과 아사녀가 함께 하는 곳
독일을 떠나기 한 달 전 도시 근교에 있는 남녀공용 사우나를 가게 되었다. 독일에서 알게 된 지인분이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 “반드시 가봐야 할 곳”이라면서 나를 데리고 가셨다.
독일의 남녀공용 사우나에 대한 이야기는 생애 최초로 유럽을 방문했던 2006년이래로 심심치 않게 들어왔다. 단지 남녀가 혼욕을 할 뿐 한국의 사우나와 다를 바가 없다는 둥, 가운을 걸치고 있고 수증기가 가득해서 민망할 게 없다는 둥, 완전한 나체로 다녀야해서 부끄러웠다는 둥, 소문이나 경험담을 제법 들었다.
하지만 직접 사우나에 가서 보니, 백번 듣는 것이 한번 보는 것만 못하다는, 백문이불여일견은 만고의 진리였다. 일생일대의 문화충격, 혹은 기존에 가지고 있던 패러다임의 무너짐이었다.
지인의 말에 따르면 우리가 방문한 사우나(스파)는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크다고 했다. 두 번째로 크다는 것이 객관적인 사실인지는 잘 모르겠다. ‘간장게장이 전국에서 두 번째로 맛있는 집’이나 ‘세상에서 세 번째로 재밌는 유튜브 채널’처럼 매우 훌륭하기는 하지만 최고는 아닐 것이라는 표현일 가능성이 높다. - vabali라는 곳인데, 베를린과 함부르크에도 있다.
역시나 객관적인 자료는 없지만, 지인의 말에 의하면 그 사우나의 수용 인원은 1000명이다. 적은 인원이 아니지만, 우리가 갔을 때는 평일의 이른 오후였음에도 이미 만원이었다. 정원이 차면 더 이상 입장이 안 되기 때문에 사우나를 마친 손님이 나올 때까지 20분 정도 기다려야 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손님들은 대부분 서양인이었다. 그런데 독일 현지인들이 아닌 외지인들이 제법 있었다. - 이러한 사실은 그들이 타고 온 차의 번호판을 보면 알 수 있다. - 그들이 일부러 사우나를 찾아온 것인지 아니면 여행 중에 잠시 들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손님들 대부분은 미리 준비한 커다란 가방에 각종 짐을 잔뜩 꾸린 채 줄 서 있었다.
줄 서 있는 사람들 중에는 동양인들도 한두 명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혼자였다.
카운터에서 열쇠를 받아 탈의실로 곧장 향했다. 사람들의 행색은 예상했던 것보다 무난했다. 모두들 준비해 온 가운을 입고 있었다. - 가운이 없는 사람은 빌릴 수도 있다. - 얇은 천으로 된 가운이 아닌 호텔에서 입는 두꺼운 샤워용 가운이었다. 오히려 보통의 수영장보다 더 많이 가린 셈이었다.
그럼에도 탈의실에서 옷을 갈아입을 때는 짧은 순간이나마 나체가 되어야 했다. 탈의실은 우리나라 찜질방과 마찬가지로 방 하나가 두세 평 정도로 좁았다. 그 안에서 남녀노소가 나란히 옷을 갈아입었다.
탈의실 안의 사람들은 서로 시선을 마주치지 않았다. 모두들 자연스러워 보였지만, 일부러 자연스러운 태도를 취하려고 노력했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하는지 대놓고 보지는 않으려고 했지만,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두리번거렸다. 사람들의 신체에 호기심이 있었던 게 아니라 그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가 궁금했다. 그렇다고 사람들을 뚫어지게 쳐다볼 수는 없으니, 시선을 어디다 둬야할지 몰랐다. 괜히 땅바닥만 쳐다보고 있는 건 왠지 더 어색해서 이리저리 시선을 돌렸다.
여기까지 글을 읽는 사람들 중 누군가는, 그래서 '결론'이 무엇인지, 사우나에서 옷을 전부 벗는 것인지, 사람들의 나체를 볼 수 있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결론은 반은 볼 수 있고, 반은 볼 수 없다.
스파를 찾아온 손님들은 이동 중이나 휴게실에서는 가운을 입었다. 하지만 수영장처럼 생긴 풀장에 들어가거나, 나무로 만들어진 커다란 사우나룸에 들어갈 때는 완전히 옷을 벗었다. 풀장 입구와 사우나 입구에 있는 옷걸이에 가운을 걸어 놓고 입장했다.
나는 가운 대신 커다란 수건을 두 장 가져갔다. 지인이 가운이 없으면 커다란 수건을 가져오면 된다고 했었다.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 역시 모두 가운을 입고 있었고 우리처럼 수건을 두른 사람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우리에게 신경 쓰는 사람은 없었다.
사우나의 크기는 실내와 실외를 합쳐서, 우리나라의 리조트나 콘도에 있는 작은 워터파크 정도의 규모였다. 실내와 실외에 각각 하나씩 커다란 풀이 있었고, 백 명 이상이 들어갈 수 있는 크기의 사우나룸이 여러 개 있었다.
풀장은 뜨거워진 몸을 식히는 곳이었다. 스파나 사우나라고 생각하면 뜨거운 물에 몸을 담그는 모습을 떠올리는 우리나라와 달랐다. 풀의 수온은 약간 시원한 정도로, 실외의 풀은 조금 춥기까지 했다.
실내에 있는 풀장은 대리석 바닥에 물이 유리처럼 투명했다. 풀 안에서 수영하거나 노닐고 있는 사람들의 나체가 투명하게 드러났다. 하지만 야하다는 생각보다는 아름답고 신성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테네의 신전에서 여신들과 남신들이 휴식을 취하는 모습이랄까. - 실내에 있는 풀은 건물 중앙의 넓은 홀에 위치하고 있어서 사람들의 눈에 쉽게 띄었다. 그래서인지 실내 풀을 이용하는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실외의 풀은 밝은 햇빛에 반사가 되어서 물 안이 불투명했다. 실내 풀과 달리 실외 풀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들은 수영을 하거나 벽에 기대어 담소를 나누었다. 지인과 나는 풀을 왕복하며 수영했다. 나체로 수영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 물론 우리나라 목욕탕의 조그만 냉탕에서 물장구를 칠 수는 있다. - 매끄러운 물이 몸을 감싸며 흐르는 느낌이 좋았다.
풀장은 일단 옷을 벗고 들어가면 가릴 게 없었다. 하지만 사우나는 달랐다. 독일의 사우나는 우리나라와는 달리 전부 건식이었다. 커다란 방의 네 면에 3층의 계단으로 이루어진 좌석이 있는데, 서로 조금씩 거리를 두고 자리를 잡았다. 사람이 많아서 자리가 많지 않았다. 자리에 앉을 때는 각자 가져온 수건을 바닥에 놓아 자신의 땀이 나무에 묻지 않게 하는 것이 에티켓이었다.
사우나에서는 말 그대로 전부 다 볼 수 있었다. 가운을 입지 않았고, 독일의 사우나는 모두 건식이기 때문에 수증기도 없었다. 사람들이 자리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음부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상체는 완전히 다 드러났다. 일부 사람들은 다리를 쫙 벌리고 앉아서 가운데 부분까지 볼 수도 있었다.
사우나의 내부가 아주 넓지는 않은데다가 모두 가운데를 향해 앉다보니 여자든 남자든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신체를 보지 않을래야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나체로 남녀가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은 어떤 원시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하지만 놀라운 사실은 모두가 너무 자연스럽다는 점이었다. 원래 그렇게 사우나를 하는 것이 당연한 듯 행동했다. 몸을 움츠린다거나 부끄러워하지 않았고,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하지도 않았다. 자신의 모습이 어떻든 간에 모두 떳떳했다. 남들의 모습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나체 상태의 사람들을 보면서 인상깊었던 것은 모든 사람이 아름답게 느껴졌다는 사실이다. 괜히 하는 말이 아니다. 진심이다. 작은 사람, 중간 사람, 큰 사람, 마른 사람, 중간 사람, 뚱뚱한 사람, 모두 하나 같이 자신만의 매력이 있었다. 모든 사람들이 같은 인간일 뿐 거기에 어떤 우열 같은 건 없었다. 그들이 다른 사람들을 의식하지 않고 떳떳했기에 더 아름답게 느껴졌다. 에덴 동산에 살던 여자와 남자도 그러했을 것이다.
문명화된 우리는 언제나 옷을 입고 생활한다. 우리는 성별과 빈부와 신분의 옷을 입는다. 하지만 그곳에서는 달랐다. 옷이라는 껍데기를 벗어던진, 두 가슴과 그곳까지 내 놓은 아사달과 아사녀만 있었다.
독일의 성에 대한 관념은 우리와 상당히 다르다. 우리가 성을 숨기고 비밀스럽게 하려고 한다면, 독일에서는 드러내어 아무렇지도 않게 한다. 무조건 금기시 하는 것이 아니라 어차피 알 게 될 것은 알려 준다.
독일에서는 우리나라로 치면 초등학교 2학년 여자아이가 아빠와 함께 목욕을 한다. 아빠가 씻겨 주는 정도가 아니라 아빠 역시 나체로 함께 목욕한다. 그런 분위기에서 2년 넘게 생활한 첫째 아이는 가끔씩 나에게 거기를 보여 달라고 말한다. 자기 친구들은 다 봤다면서 자기도 보고 싶다고 한다. 아내와 나는 말문이 막힌다.
독일의 남녀공용 사우나는 그런 문화를 대변하는 듯했다. 사우나에 오는 사람들은 친구나 연인이 제일 많아 보였지만, 가족과 친지가 함께 오는 경우, 친구들 커플이나 친척들 커플끼리 오는 경우도 흔했다. - 혼자 온 사람들은 모두 동양인이었다. - 우리나라에서는 그런 모습을 상상이나 할 수 있을까?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독일의 건식 사우나는 우리나라 사우나만큼 덥지 않았다. 사우나 안은 알싸한 약초향이 진동했다. 사람들은 조금만 시간이 지나도 흠뻑 땀을 흘렸지만, (한국의 사우나를 잘 견디지 못함에도) 나는 10분 정도 지나야 땀이 흘렀다. 하지만 한번 땀이 흐르기 시작하니 물이 흥건한 걸레를 쥐어짜는 것처럼 폭포수 같은 땀이 흘러내렸다. 사우나에는 여러 종류의 프로그램이 있는데, 우리는 가이드가 나누어주는 생꿀을 얼굴과 몸에 발랐다.
입장 후 15분이 지나자 사우나에서 나가야햤다. 15분의 휴식 시간 이후 다시 입장이 가능했다. 정해진 시간에 따라 30분 단위로 사우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지인과 나는 사우나에 두 차례 들어가고, 풀장에서 두 차례 수영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휴게실에서 잠을 잤다. 전체적으로 보면 우리나라 찜질방과 비슷한 시스템이었다.
지인은 그날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는 독일에서 20년 이상 살았다.
“여기 오면 자신감을 갖고 떳떳하게 살자, 자신을 사랑하면서 살자는 생각을 항상 해요.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사람들 모두 생긴 모습이 다르기 때문에모두 소중한 존재죠. 남과 비교할 필요 없어요. 여기에서는 아무도 비교하지 않아요. 그저 있는 그대로의 모습에 만족하고 자신을 아낍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많이 배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