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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즐겨찾기 Nov 01. 2020

<인간의 굴레에서> - 삶의 굴레와 삶의 의미

서머셋 모옴

고전 읽기에 도전하는 프로젝트의 첫 번째 책은 서머셋 모옴의 작품으로 정했다. 이 책보다 앞의 순서에 있는 카프카의 <변신·시골의사>과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이 흥미를 끌었다. 하지만 <변신>은 예전에 읽은 기억이 있고, 후자는 읽지는 않았지만 왠지 내용을 전부 알 것 같았다.      


책꽂이를 훑던 나의 시선은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책에서 멈추었다.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얼핏 봐도 인간과 인생에 대해 이야기 할 것 같은 제목이었고, 실제로도 그랬다. 더구나 작가가 서머셋 모옴이었다. 망설임 없이 손을 뻗어 책꽂이에서 책을 꺼냈다.      


서머셋 모옴은 <달과 6펜스>로 유명한 작가다. 하지만 나에게는 <서머셋 모옴 단편집>으로 익숙했다. 대학 시절 집안 책장에 꽂혀 있던 것을 우연히 읽게 되었는데,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방식과 결말 부분의 여운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그런 이유로 낯선 제목이었지만, 서머셋 모옴이라는 작가에 대한 막연한 신뢰감만으로 <인간의 굴레에서>를 읽기 시작했다. 두 권으로 이루어진 다소 두꺼운 책이었다.     


책의 제목이 의미심장하다는 느낌을 받았으나, 책을 읽는 동안 ‘굴레’가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 아, 나의 빈약한 어휘력이란! - 사전을 찾아보니, 굴레는 말이나 소 같은 짐승의 머리 부분에 씌우는 장비로 행동이나 의사의 자유를 얽매는 것을 의미했다. 이 책의 영어 제목은 <Of Human Bondage>이다. 'bondage'가 속박, 노예의 신분을 뜻하므로, <인간의 굴레에서>라는 제목은 제법 훌륭한 번역이었다.     

그림 출처 : 한국 화가 이무성


첫 장을 열어 보니, 이 책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소설 장르 중 하나인 ‘성장소설’이었다. 더구나 그 중에서도 특별히 더 좋아하는 ‘자전적’ 성장소설이었다. 이 책은 서머셋 모옴 자신을 나타내는 ‘필립’이라는 주인공의 유년기부터 서른 무렵까지의 인생사를 다루고 있다. - 다만 후반부는 실제 성장과정과는 조금 다르다.     


성장소설은 기승전결에 해당하는 큰 줄거리 없이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이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 적어도 초반부에 나타난 문제(혹은 사건)가 마지막에 이르러 해결되는 구조는 아니다 - 따라서 박진감과 흥미진진함이 떨어지는 단점이 있는 대신, 천천히 끊어서 읽기 좋고 마음에 드는 부분을 음미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주인공 필립은 어린 나이에 부모님을 잃고, 엄격하고 가부장적인 큰아버지와 자상한 큰어머니에 의해 길러진다. 이 책은 필립의 삶을 학창시절(10대 중반까지)부터 하이델베르크 유학(10대 후반), 회계사 견습생(20대 초반), 파리 미술 유학(20대 중반), 의사 과정 실습생 시절(20대 후반)까지 그린다. 이러한 연대기적 구성은 다른 성장 소설에서도 볼 수 있지만, 이 책의 독특한 매력은 그러한 과정에서 주인공이 자신의 삶에 씌워져 있던 굴레에서 하나씩 벗어난다는 점이다.     


필립이 가장 먼저 벗어던진 굴레는 일방적으로 주입된 교육과 종교이다. 필립은 읽고 이해하는 능력이 뛰어나 성적이 우수했고, 목사인 큰아버지 밑에서 신을 믿도록 교육 받는다. 큰아버지와 기숙학교의 선생님들은 성적이 우수한 필립이 성직자가 되기를 원한다. 하지만 필립은 나이가 들면서 신의 존재에 의문을 품는다. 결국 필립은 영국식의 딱딱한 교육제도와 성직자가 되는 길에서 벗어나 하이델베르크로 유학을 떠난다. 그는 자신이 선택하지 않은, 남들이 요구하는 삶의 굴레로부터 벗어난 것이다.      

유학을 마친 필립은 큰아버지의 권유로 회계사의 길을 걷기로 한다. 그러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회계사에 맞지 않음을 깨닫는다. 필립은 1년 만에 회계사의 길을 포기하고 자유로운 예술의 세계를 찾아 파리로 미술 유학을 떠난다. - 그는 평소 그림에 관심과 재능을 보였다. - 그 과정에서 필립은 성인이 될 때까지 경제적, 정신적으로 예속되어 있던 큰아버지의 굴레로부터 벗어난다.     


하지만 필립은 시행착오 끝에 자신이 예술가의 재능이 없음을 깨닫는다. 많은 화가 지망생들이 재능이 없음에도 그 길을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성공에 집착하지만, 필립은 고민 끝에 예술가의 길을 포기한다. 성공에 대한 강박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 이후 필립은 자신조차 이해할 수 없는 열정으로 몸과 마음을 바쳤던 비참한 사랑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어린 시절부터 자신을 속박해 왔던 불구라는 굴레에서 벗어난다. - 필립은 절름발이다 - 즉, 그는 자신이 불구임을 더 이상 계념치 않게 된다.      


필립은 안정적인 생활에 안주하지 않고, 혹은 자신에게 주어진 기회나 역할에 순응하지 않고 새로운 세계 찾아 떠나는 모험을 거듭한다.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필립은 한때 회계사나 화가가 되려고 노력하지만 자신에게 맞지 않는 일이고, 자신이 원하는 일이 아님을 깨닫고 홀연히 다른 세계로 떠난다. 그런 선택에는 다양한 경험을 하고 넓은 세상을 보고 싶다는 이유도 포함되어 있다. 하지만 어떤 이유든지 분명한 것은, 필립은 살던 대로 살지 않고 생각하는 대로 사는 사람이었다. - 나는 이런 삶을 동경하기에 동질감을 느꼈다.      


마지막으로 필립은 “인생에는 어떤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굴레에서 벗어난다. 책의 후반부에 이르러 필립은 의사가 되는 과정을 밟는다. - 실제로 서머셋 모옴은 의사가 되어 병원에서 일하기도 했다. - 필립은 의사 자격증을 얻으면 돈을 벌면서 스페인의 톨레도를 여행한다는 새로운 모험의 꿈을 불태운다. 하지만 그는 그러한 꿈을 포기하고 사랑하는 여인과의 소박한 삶을 선택한다. 필립은 인생의 의미란 특정한 목적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양탄자를 짜듯 자신만의 실로 무늬를 짜는 것 그 자체에 있음을 깨닫는다.     

주인공 필립은 일생 동안 자신을 속박해 온 여러 가지 굴레로부터 벗어난다. 그는 그러한 과정에서 점차 삶의 영역을 넓혀가고, 살아가는 의미를 찾는다. 이런 주인공의 모습은 <12가지 인생의 법칙>(조던 피터슨 지음)을 떠올리게 했다. - 그는 내가 현재 가장 존경하는 철학자이다.     


<12가지 인생의 법칙>은 제목이 풍기는 분위기와는 달리 자기계발서나 처세에 관한 책이 아니다. 종교와 철학을 다룬 책에 가깝다. 이 책은 다소 어렵고 장황하지만, 핵심은 한 문장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인생의 의미는 길(道)에 있다”는 것이다.     


조던 피터슨은 우리가 살아가는 영역을 질서의 영역과 혼돈의 영역으로 나눈다. 그에 따르면, 안정을 추구하려는 우리는 본능적으로 질서의 영역에 머무르려고 한다. 하지만 질서의 영역은 혼돈의 영역으로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질서의 영역에만 머물러서는 우리의 세계가 넓어지지 못한다. 질서의 영역 안으로만 파고들면, 나의 영역은 점점 좁아지게 된다. 삶이 점점 힘들어진다. 질서의 영역에서만 안정을 찾으려는 노력을 실패한다.   

  

따라서 우리는 끊임없이 혼돈의 영역에 발을 들여 놓고 걸어가야 한다. - 정확히 말하면 한 발은 질서의 영역에, 다른 한 발은 혼돈의 영역에 놓아야 한다. - 그렇게 걸어가다 보면 혼돈의 영역이 점점 질서의 영역으로 바뀐다, 우리가 속해 있는 영역은 조금씩 넓어진다. 이처럼 혼돈의 영역은 불안하고 위험한 듯 보이지만, 성장과 모험,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는 곳이다. 그러한 길(道)에 인생의 의미가 있다.  

    

이것은 필립이 깨달은 바와 같다. 삶의 의미는 특정한 무늬의 양탄자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실로 자신만의 무늬를 짜는 과정 그 자체에 있다는 것이다.     


나는 이처럼 ‘길에 있는 사람들’, 혼돈의 영역에 과감히 한 발을 들여 놓고 용감하게 걸어가는 사람들, 자신만의 무늬를 그려가는 사람들을 사랑한다. 그런 사람들, 그들이 걸어온 길, 그려낸 무늬를 보면 - 그것이 꼭 '발전'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 왠지 가슴이 뭉클해진다. 이 책의 주인공 필립을 보면서도 그러했다.     

 

책 말미의 해설에 따르면, 서머셋 모옴은 이른바 위대한 작가 그룹에 속하지 않고 대중작가로 분류된다고 한다. - 그의 작품이 대학 영문학과의 교재로 사용되지 않는다고 한다. - 또한 이 책의 주인공 필립은 도스토예프스키, 토마스 만, 프루스트의 주인공들처럼 영혼의 심연을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고도의 통찰력과 언어 감각을 가진 사람들만이 즐길 수 있는 복잡한 언어 사용의 기법을 보여주지도 않는다. 전부 맞는 얘기다.   

 

하지만 서머셋 모옴은 이 책을 통해 필립이라는 사람이 어떠한 인생의 길을 걷는지, 그 한 걸음 한 걸음을 보여줌으로써 어떠한 영혼의 깊이와 복잡한 언어적 표현보다 더 직관적이고 구체적으로 삶의 의미를 드러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이 책에는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 이 책은 결말은 필립이 서른 살 무렵 의사 자격증을 따고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을 약속하면서 끝난다. 탄생부터 죽음까지의 일생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탄생부터 결혼까지의 반생만을 보여주고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의 굴레에서>는 일생 동안 우리가 짊어지게 될 모든 굴레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나는 궁금했다. 필립의 결혼 생활은 어떠했을까. 아이를 낳고 누군가의 아빠, 누군가의 남편, 어떤 병원의 일꾼으로 살면서 인생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힘들어하지 않았을까. 새로운 인생의 굴레를 쓰고 속박된 삶을 살지는 않았을지.     


학생시절에는 열심히 인생을 계획하고 의욕적으로 살았다. 하지만 사회인이 되어서는 - 혹은 결혼을 한 다음에는 - 주어진 일과 주변 사람들에 치여 하루하루 힘들게 살아간다. 자신이 원하는 삶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기대하는 삶을 사는 살고 있다. 어쩌면 인생의 실제적인 고난과 발전 없는 정체는 인생의 전반부가 아니라 후반부에 찾아오는 것이 아닐까.     


사람들이 방황에 빠지는 시기는 무언가를 이룬 다음이다. 그들의 성장이 제자리걸음을 하는 순간부터다. 작가인 서머셋 모옴이 아버지가 된 30대의 필립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은 것은, 그 때부터는 인생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신이 원하는 길을 가고 자신만의 무늬를 짜는 것이 그만큼 쉽지 않다는 반증이 아닐까. 그렇기 때문에 어른이 된 우리는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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