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노라면 마음 깊은 곳이 아날로그적 감성으로 충만해지는 건 나 뿐일까.
까마득히 잊혀져 내 기억 속에 있으리라 생각지 않았던 것들이 눈앞에서 아른거리고, 실재하지 않는 것들에 대한 촉감도 생생해진다. 어떻게 그 많은 것들을 잊고 살았을까. 한꺼번에 몰려드는 생각과 생각들에 맞춰지며 감각신경들이 부드럽게 퍼질러진다. 왜 그런지는 모르지만 지나간 것들은 모두가 따스하다. 그렇게 따스한 지난
시간들이 눈으로 보이는 글이 되고 그 글은 또 다른 따스함의 토대가 되어준다.
그렇게 쓰인 글들은 두고두고 읽히며 삶이 팍팍해질 때마다 위안을 받는 기대 처가 되곤 했다.
그런데 이러한 행복도 잠깐, 내가 가진 언어로는 내 안의 모든 것들을 표현해 낼 수가 없다는 걸
깨닫기까지이다. 나의 모든 감정, 의식 속을 흐르는 그 어떤 것들, 무언가 더 깊이 있게 얘기하고 싶은데
그게 안돼서, 그렇게 할 수가 없어서 고통스럽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말들을 정확하게 표현하지 못하자 종이 위에 늘어선 글들은 횡설수설 두서가 없고, 종내는 길을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내가 쓴 글들은 그저 내가 하고 싶은 말들의 표면일 뿐이었다.
예전, 끊임없이 손 편지를 주고받던 시절이 있었다. 하루에도 많게는 수 십 장씩 썼고 그렇게 쓰인 편지의 수신인은 대부분 친구들이었다. 내내 수다 떨다가 금방 헤어졌는데 못다 한 말들은 종이 위에서 되는대로 쓰인 글이 되었다. 그럼에도 생각과 마음들이 하나도 막힘없이 표현되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글을 쓰면서 단 한 번도 고민한 적이 없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는 글을 쓰면서 글을 쓴다는 생각을 한 적이 없는 것 같다. 글을 쓰되 글이 아닌 말의 이어짐, 수다의 연속이었던 것이다. 다만 조금 더 깊이 있는, 사유함이 들어간, 조금은 고상한, 그냥 수다였던 것이다. 글쓰기에 대해 그외의 특별한 의미 부여를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가벼웠고, 가벼워서 글쓰기는 하나의
놀이처럼 즐거웠던 것이다. 해서 하루에 수 십 장씩 편지를 썼어도 버려지는 글이 없었다.
지금은 쓰고 남겨진 것보다 버려지는 글들이 더 많다. 아니, 아예 써지지가 않는다. 커서가 껌벅거리는 하얀 화면을 쳐다보면서, 나도 눈만 껌뻑거리다 닫아버리는 날이 허구한 날이다. 그럼에도 머릿속에서는 어김없이 ‘글 써야지’ 하는 생각이 떠나지 않는다. 글쓰기가 마치 내 숨인 것처럼.
거의 잡았다 놓쳐버린 물고기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 낚시꾼의 마음처럼, 나는 잡히지 않는 문장들을 생각하며 눈알을 굴린다. 하지만 청년 시절, 툭하면 써대던 글을 중지한 후 수 십 년 만에 시작하는 글은 내게 쉽게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그럼에도 글을 쓰겠다고 덤비는 이유는 무엇인가.
삶의 경험들이 켜켜이 쌓여 할말이 많아진 지금의 글쓰기는 왜 고통스러운걸까.
그냥 예전처럼 말의 연속, 즐겁고 유쾌한 수다의 연속이 될 수는 없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