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부작? 16부작? 그 정답은….
숏폼에 적응한 시청자, 짧은 TV 드라마가 답인가
최근 12부작 드라마가 16부작 보다 많아지고 있다. 나아가 14부작, 10부작 드라마도 생겼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채널이 다양해지면서 소비자의 시청 패턴이 변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속도감 있는 전개를 선호하는 시청자들의 니즈에 따라 이야기를 압축하고 1회 안에 최대한 많은 기승전결을 넣는다. OTT 스트리밍 서비스의 등장과 함께 달라진 드라마 소비 방식의 결과다. 숏폼 콘텐츠의 유행도 한몫했다. 최근 빠르게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 시청자 니즈가 반영된 웹드라마, 숏폼 드라마가 등장했다.
하지만, '숏폼 뜨고 롱폼 진다'고 단순화하기엔 무리가 있다. 숏폼이 뜬 건 맞으나, 롱폼이 진 건 아니다. 2024년 초부터 숏폼 콘텐츠의 대척점에 있다고 여겨진 롱폼 콘텐츠에 대한 시청 시간이 늘어나고 있다. 2025년 4월 5일 한겨레 '숏폼에서 딥폼으로...소비 트렌드 재편'에 따르면 최근 유튜브는 사용자의 시청 행태를 반영해 롱폼 콘텐츠 추천을 강화하는 알고리즘 개선을 진행하고 있다고 발표했다.
최근 떠오르는 긴 분량의 콘텐츠를 '딥폼(Deep Form)' 콘텐츠라 부르기도 한다. 숏폼에 비해 시간뿐만 아니라 콘텐츠의 깊이까지 더해졌다는 의미다. '짧은 콘텐츠보다 깊이 있는 콘텐츠에 더 만족감을 느낀다'는 젊은 시청자의 의견이 늘어나고 있다. 젊은 세대를 타깃으로 1시간 이상 되는 콘텐츠를 제작하는 현상도 이러한 트렌드를 반영한다.
숏폼 콘텐츠의 장악과 딥폼 콘텐츠의 부상은 정반대의 현상으로 보일 수 있다. 혹자는 숏폼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 반대 성격의 딥폼이 등장한 것이라 해석한다. 하지만, 숏폼과 딥폼 콘텐츠는 충돌하는 현상이 아니다.
두 유형의 콘텐츠가 발생한 배경은 이러하다. 영상 콘텐츠를 시청하는 경우 전전두엽 부위의 중전두회(middle frontal gyrus), 위이마이랑(superior frontal gyrus)이라고 불리는 부분이 평소보다 활성화된다. 콘텐츠 소비로 인한 자극이 지속될수록 뇌에는 일종의 '내성'이 생기며, 내성이 쌓일수록 기존 보다 더 큰 자극을 필요로 한다. 콘텐츠 노출이 많은 오늘날에 이러한 내성이 쌓인 시청자는 더 큰 자극을 주는 콘텐츠를 요한다.
시청자에게 자극을 주는 요인은 콘텐츠의 질적 요소와 양적 요소로 나뉜다. 질적 요소를 '질량', 양적 요소를 '부피'로 치환해 '밀도 = 질량/부피'라는 공식을 활용해 볼 수 있다. 이러한 가정 아래 '시청자에게 자극을 주는 콘텐츠'를 '밀도가 높은 콘텐츠'라고 정의 내린 뒤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해보고자 한다.
밀도 = 질량/부피
'밀도 = 질량/부피'. 이는 밀도, 부피, 질량 간의 공식으로 콘텐츠에도 적용할 수 있다. 콘텐츠의 밀도를 높이는 방법은 공식에서도 알 수 있듯, 두 가지로 나뉜다.
첫 번째 방법은 부피를 줄이는 것으로, 영상의 길이를 줄이는 방법이다. 콘텐츠의 내용이나 구성 등 질적 요소는 유지하면서 영상의 길이라는 양적 요소를 줄인다. 내용의 변형이 적고, 편집이 주된 영역이기에 실현하기 더 간편하다. 딥폼 콘텐츠보다 숏폼 콘텐츠의 강세가 먼저 일어난 이유이기도 하다.
두 번째 방법은 질량을 높이는 것으로, 영상의 길이는 유지하면서 콘텐츠 내의 볼거리를 더 채우는 방식이다. 이는 딥폼 콘텐츠의 등장과 연관 지어 생각할 수 있다.
현재 드라마계가 펼치는 전략은 '길이를 짧게' 만드는 첫 번째 방법이다. 숏폼 콘텐츠와 동일하게 질량을 유지하면서 부피를 줄였다. 16부작이라는 불변 공식을 깨고 12부작, 10부작 드라마가 등장한 것이다. 길이를 줄여 밀도를 높인 드라마로는 '사내 맞선(2022)', '중증외상센터(2025)' 등이 있다. '중증외상센터'의 경우 편당 60분 10부작을 45분 8부작으로 축소하기도 했다.
16부작보다 회차를 줄여 밀도 높이기에 성공한 드라마는 '전개가 빨라 지루하지 않다'는 호평을 받았다. 하지만, 드라마의 길이(회차)를 줄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길이를 줄여 ‘밀도를 높인’ 드라마가 성공한 것이지 길이를 줄였다고 흥행하는 건 아니다.
부피를 줄이지 않고 질량을 높여 성공한 사례도 있다. '옥씨부인전(2024)'과 '폭싹 속았수다(2025)'가 대표적이다. 두 작품 모두 16부작에 한 회 당 60분이 넘는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옥씨부인전'은 최고 시청률 13.6%를 기록했고 '폭싹 속았수다'는 넷플릭스 TV쇼 비영어 글로벌 1위에 오르는 등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다. 이는 16부작, 긴 러닝타임이 흥행의 방해 요소가 아님을 보여준다.
드라마가 살아남을 전략, 적정한 밀도
앞으로 드라마계가 나아가야 할 방향은 '적정한 밀도'를 찾는 일이다. 밀도 조절의 실패 양상은 저밀도와 고밀도로 나뉜다. 저밀도는 지루해지고 고밀도는 비약이 생긴다.
저밀도는 16부작 공식을 따르던 기존 드라마가 OTT 스트리밍 서비스와의 경쟁에서 밀린 요인으로 볼 수 있다. 기존 드라마계에서는 대본이 14부 분량이 나왔다 해도 16부로 끼워 맞추는 경향이 있었고, 이에 후반부에 힘이 빠지는 리스크를 지녔다. 전형적인 '질량에 비해 부피가 큰' 경우다.
고밀도는 질량에 비해 부피가 작은 경우다. 적은 회차에 많은 분량을 압축하다 보니 충분히 내용을 풀지 못한다. 장면 사이 삭제되는 내용이 생겨 이야기에 비약이 생기고 시청자는 압축된 내용을 소화하기 벅차다. 필요한, 매력적인 장면이 축소되거나 생략돼 기회비용이 발생한다. 고밀도의 사례로는 '견우와 선녀(2025)'가 있다. '견우와 선녀'는 당초 16부작으로 편성됐지만 12부작으로 축소됐다. 특히, 11회, 12회에서는 '후반부 전개가 너무 빨라 이해가 잘되지 않는다', '그동안 쌓아온 갈등 서사를 충분히 다루지 않고 넘어가 아쉬웠다' 등의 평이 많았다.
16부작이라고 인기를 얻지 못하는 것도, 12부작이라고 호평을 받는 것도 아니다. 회차에 있어 정답은 없다. 회차에 집중할 게 아니라 밀도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 콘텐츠마다 특성을 고려해 자기만의 '적정 밀도'를 찾고, 그에 맞는 회차를 편성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야기를 정해진 회차에 맞추기보단 이야기에 맞춰 몇 회차로 편성할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편성엔 유연성, 방영엔 창의성 필요해
오늘날 드라마 산업이 겪는 혼란을, '이야기를 편성에 맞추던 시대'에서 '이야기에 맞춰 편성하는 시대'로 전환할 기회로 보면 어떨까.
국내 TV 드라마는 OTT 스트리밍 서비스와 1인 미디어에 대항하기 위해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그중 하나가 기존의 '16부작'이라는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14부작, 12부작, 10부작 등 보다 유연한 회차 구성을 도입하는 전략이다. 이는 드라마 편성의 경직성을 완화하는 긍정적인 변화로 평가할 수 있다. 드라마마다 '적정한 밀도'를 탐색하는 과정이며, 궁극적으로는 이야기에 맞춰 편성이 결정되는 시스템으로 발전하길 기대한다.
더 나아가 고민해야 할 과제는 '창의적인 방영 전략'이다. 몇 부작이든 시청자가 지루함을 느끼지 않고 방송을 기다리며, 지속적으로 따라올 수 있도록 하는 전략이 필요하다. 현재까지는 주당 방영 횟수를 조절하는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이제는 여러 회차를 한꺼번에 공개하는 OTT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응할 수 있는 새로운 방영 방식과, 시청자가 피로감을 느끼지 않고도 다음 회차를 기다릴 수 있는 효과적인 마케팅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참고문헌
문동열. 숏폼에서 딥폼으로…소비 트렌드 재편. 한겨레. 2025.04.05.
우다빈. 요즘 드라마, 12부작도 길다고?. 한국일보. 2025.02.20.
천윤혜. 짧아진 TV 드라마, 여러분은 만족하시나요?. MTN뉴스. 2025.01.23.
최지원, 장은지. 숏폼에 중독된 사회…내성 쌓인 뇌, 충동조절 약화. 동아일보. 2025.0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