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아홉 번째 주제
평소에도 난 너무 생생한 꿈을 자주 꾼다
하지만 내용은 얼토당토 않는 이야기들
용이 날아다니고
좀비가 나타나고
섬이 뒤집히는 둥
블록버스터급 스케일로 날 찾아오곤 한다.
꿈을 꾸고 나면 이러한 꿈들을
사람들이 잘 기억하지 못하는게 다반사라고 하는데
한 번 영화같은 꿈을 꿔대면 하루종일 그 꿈이
머리 속에서 몇 번이고 리플레이 된다.
가장 최근에 꿨던 꿈을 메모해 두려 한다.
주인공은 나.
배경은 현대.
사람들과 6인용 테이블처럼 여럿 모인 큰 테이블에 앉아있었다
그런데 분위기란게 있지 않는가
쌔~ 한 분위기와 함께 멀리서부터 들리는 비명소리와
정체를 드러내지 않는 어떤 생물체가 다가온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는 중이었다.
주위 사람들과 그 느낌을 공유하다 어느새 근접해 옴을 느끼고
가장 빠르게 대피할 수 있었던 책상 위로 다같이 올라갔다.
극도의 긴장감을 주며 책상 밑으로 기어오던 생물체가
튀어올라 우리 책상에 안착했다.
‘좀비'였다.
좀비가 우리 눈앞에 서 있는 순간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잠시 동안의 찰나의 순간에
나와 눈이 마주쳤다.
영화같은 데서 보면 이럴 때에 영웅이 그 좀비와 맞서고
뒹굴고 함정에 빠뜨리며 위기를 탈출하던데
난 그러지 못했다.
뇌가 굳고 몸이 덜덜 떨리고 입만 벙긋 해도 그 생명체가
날 덮쳐와 언제든 와작와작 씹어삼킬 것만 같았다.
그리고 꿈 속의 내가 한 행동은
나의 손가락으로 다른사람을 가르키기. 였다.
간사하기는!
손가락의 의미는 '나 말고 다른사람!'을 격하게 나타내는 것만 같았다.
이후에도 난 도망가면서 과자봉지 주워가기
도망치려고 택시 줄서서 기다리기
등등의 현실감 돋는 행동으로 도망쳐다녔다.
…오늘 꾼 꿈에서는 내가 외계생명체의 아이들을 돌봐주게 된
시간이 있었다.
그런데 그 아이들이 울면서 나에게 했던말이 있었다.
'별들이 외로워서 울 때에, 그 외로운 시간에 당신을 그리워했다’
매일매일 스치어 지나가는 봄바람마냥 꿈은 그렇다.
내 현실에 어떠한 힘을 쥐어주지도 않는다.
하지만 가끔 이렇게 멋진 말을 선물하고
허무맹랑한 스케일로 다가와서 하루를 흔들어주기도 한다.
그래서 언제나 꿈은 생각보다 멋지다.
-Ram
막연한 꿈
그냥 막연하게
내 꿈은 건강하게 살고싶은 것. 몸도, 마음도, 생각도, 모든 것이 병들지 않고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씩씩하고 건강하게 사는게 내 꿈. 그리고 애교 없는 내가 애교를 부리고, 칭얼대기도 하며, 내가 힘들거나 지칠 때 오래오래 기댈 수 있고, 나를 무지막지하게 사랑해주고, 끝까지 믿어주는 그런 사람과 함께 오랜 시간을 보내는 것.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고, 잘하고 싶어하니까 마음 껏 요리할 수 있는 것. 그리고 멋진 그릇에 그 요리를 담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두 초대해 대접하고 싶은 것. 그 사람들과 철학, 문학, 트렌드, 예술 등의 여러가지 분야를 넘나들며 시시껄렁한 담소를 나누고 싶은 것. 커피 향을 무지 좋아하니, 내가 사는 집엔 커피향이 가득 한 것. 움직이는 걸 좋아하니, 저녁을 먹고 밖을 나가 산책을 하는 것. 저혈압인 나는 아침에 일어나면 체온이 많이 떨어져 있어서, 이른 아침에 상쾌한 공기를 마시며 운동하는 것. 내가 만들어 낸 것들이 사람들에게 소소하지만 유용하게 쓰이는 것. 때로는 눈물을 잊지 않고 울기도 하는 것. 읽고 싶은 책을 마음껏 읽는 것. 보고싶은 영화를 큰 화면으로 보는 것. 입가에 미소가 떠나지 않는 것. 냉장고에 사과가 가득 차 있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하는 것. 우리 팀 사람들과 오래오래 함께 했으면 하는 것. 예쁘게 꽃꽂이를 해 식탁에 내가 내킬 때 마다 다양한 꽃들이 놓여있는 것. 사랑하는 가족들이 아프지 않는 것. 그리고 행복한 것.
-Hee
우리에게 꿈이라는 것은 이따금 원대한 것들이, 때때로는 사소한 것들이 될 수도 있다. 어느 날은 친한
친구와 치킨에 맥주 한 잔을 하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는 것이 꿈이 될 수도 있고, 어느 날은 내 마음 속
깊숙한 곳에서부터 원하고 있는 본질적인 사회와 삶의 변화에 대한 욕구가 나의 꿈이 될 수도 있다.
사실 우리에게 꿈의 크고 작음이 중요한 것은 아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크건 작건 아름다운 꿈을
지금의 순간에 꾸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크고 작음에 대해서는, 이따금 사소한 꿈들이 모여 원대한
변화가 될 수도 있는 것이고, 이따금 큰 꿈 하나가 사소한 것들의 변화를 이끌어 낼 수도 있는 것이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우리가 매 순간 자신을 위하여 꿈을 꾸고 있는 가이다.
<꿈꾸는 다락방>이라는 책에 나오는 R=VD(Realization=Vivid Dream)라는 공식이 있다. 구체적으로
꿈을 꿀수록 그 꿈이 실현될 가능성이 크다는 내용의 공식이다. 나의 큰 꿈에 대하여 나는 이 공식을
핑계 삼아 한편으로 안심하곤 한다. 나는 동년배들 보다는 조금 뒤쳐졌다. 나의 꿈에 대해서 그만큼
방황하는 시간이 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분야, 내가 원하는 팀에서 일을 배우고 있고,
조금 더 내가 하고 싶은 일에 대하여 구체적인 환경에 내가 놓여져 있음이 한편으론 안심이 되곤 한다.
어쩌면 큰 꿈에 대한 이야기들은 모두 자기합리화 일지도 모른다. 나는 큰 꿈들 보다는 아기자기하고
사사로운 작은 꿈들이 나에게 더 매력적인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아니 사실 아기자기하고 사사로운
작은 꿈들은 그저 매력적인 것을 떠나 눈부시게 빛나는 것들이며 작지만 소중하다.
이따금 우리에겐 작은 꿈들을 꾸게 만드는 특별한 사람이 존재하기도 한다.
-Cheol
나는 꿈을 포기한 적이 있다. 원하던 것을 이루기 직전에 겪는 붕괴는 사람을 주저앉히기에 충분하다. 그 동안 쏟아부은 것들이 아무런 힘을 쓰지 못하는 상황이 찾아왔다. 내가 더 열심히 했거나 재능이 뛰어났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자책은 어렵사리 붙들고 있던 정신을 좀먹는다. 가끔 올라오는 기억들은 아직도 내 속을 흔들기에 충분한지 나는 ‘꿈’에 대한 이야기를 하기가 막막하다. 무의식 속을 헤엄쳐 다니는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기로 한다. 도망치는 것 맞다.
초등학교 때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꿈 속에서 등장하는 공간이 있다. 모든 것이 하얀. 온통 하얀 공간이 움직임으로 가득하고 스케일이 큰 내 꿈들의 연결 지점에 나타난다. 하얀 방의 첫 등장은, 중요한 버섯을 찾으러 다니던 꿈 속이었다. (당시 나는 ‘마법사가 되는 방법’이란 게임에 빠져있었다.) 동굴을 지나 발견한 문을 열고 들어간 하얀 방에서 나는 처음으로 꿈 속에서 정신을 깨워냈다. 그 이후, 하얀 방을 지날 때면 나는 꿈에서 깨어나 꿈 속 세상을 구경하게 되었다. 꿈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내 생각대로 움직일 수 있어서 좋았다. 무의식 속에 깨어난 의식인가. 아니면 의식으로의 전환인가. 설명하기 어렵지만 나는 종종 꿈속에서 깨어난다.
꿈 속의 하얀 방은 큰 일을 겪으면서 두 개로 나뉘었다. 꿈을 포기하게 되던 시기에 처음으로 가위를 눌렸다. 꿈에선 내가 타고있던 청룡열차가 어두운 공간에서 검은 터널을 향해 내달렸다. ‘터널 속으로 들어가면 안될텐데.’ 열차는 터널에 들어가기 직전에 방향을 바꿨고 속도는 점점 빨라졌다. 그 과정이 수십번 반복되었다. (터널로 들어가진 않았지만) 레일 아래 나락으로 떨어진 내 눈앞에 나타난 것은 흑과 백의 세계였다. 이제는 흑과 백의 세상이 꿈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 꿈 속의 나도 변했다.
꿈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기까지 오래 걸리지 않는다. 나는 하얀 세상과 까만 세상의 경계에서 누군가를 쫓고 있었다. 두 공간의 경계선을 따라 쉼 없이 뛴다. 꿈 속에서 자주 대면하는 익숙한 공간이기에 어색함은 없다. 여기에 얼굴을 마주하거나 이야기를 나눌 상대는 등장하지 않는다.
‘꿈이구나.’ 그와 함께 나는 멈춰 선다.
두 공간의 경계. 그레이 존.
꿈 속에서 나는 어느 쪽으로 가야할지 망설이고, 경계를 따라 달리다가 그 경계에 위치한 나무 아래에서 쉬기를 반복한다. 한 번은 하얀 쪽으로 달려나가 보았다. 아무것도 없는 곳에 나 혼자 있었다. 두려웠다. 다시 경계로 돌아온 나는 선택을 망설이고 있다. 그래. 이 무슨 개꿈인가 싶다.
‘꿈이 무엇인가?’ 그가 물어왔다.
직접적으로 물은 것은 아니다. 다만,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고 싶어한다. 내 생각을 듣기 위해 솔직하게 물어보는 것 같아 말 꺼내기가 쉽지 않다. 가벼운 마음으로 이야기해선 안 될 것 같다. 어쩌면 나 자신이 꿈에 대해 너무 많은 생각을 하고 있거나, 매여있는 걸지도 모른다.
꿈이 깨어지면 깨어질수록 꿈은 흐려지고 작아졌고 현실에서 길을 잃은 나는 고개를 숙였다. 적지 않은 나이 임에도 나는 아직도 꿈을 꾸고 하고싶은 일을 쫓지만, 정답 없는 인생 속에서 헤매는 기분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걱정하며 나 혼자 힘들다며 푸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넌 꿈이 뭐야?’라 물으며 친구들과 이야기 나누던 때는 지난 걸까. 꿈 많은 아이. 꿈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주던 어른들의 옅은 미소의 의미를 나는 몰랐다.
꿈이 없는 사람은 없다. 하지만 꿈에 대해 이야기하는 어른을 만나기가 어려워졌다. 오히려 꿈에 대해 이야기를 하면 비웃음을 사게 된다. 나이가 들면 인격적인 성장을 필요로 하게 되고, 남들과 같은 직장, 안정된 생활과 단란한 가정을 꾸리기를 요구받는다. 사회적인 분위기가 그렇다. 나도 그들과 함께 하기로 했다.(잘 해낼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 그것이 우리의 꿈이 된 건가. 꿈을 꾼다는 것은 결국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바람. 그것은 채워지면 다시 새로운 것이 태어난다. 과거에는 어떠한 행위나 위치에 대해 생각을 했다면 지금 나는 어떠한 상태를 꿈꾸고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미래라던지, 오랜 기간 가족들과 맛있는 식사를 하고싶다거나, 노년기에 접어든 나를 보며 아이들이 웃어준다던지. 아끼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상황을 그린다. 그게 무슨 꿈이냐며 반문하는 이도 있겠지만, 중요시하는 가치가 변화하면서 꿈에 대한 생각도 바뀌어 간다. 소위 말하는 행복. 개인이 원하거나 바라는 미래에는 차이가 존재하지만 ‘행복’은 그 모든 것을 포함한다. 만족하는 감정. 그 자체가 우리의 꿈이자 우리가 바라는 것 아닐까.
(사실 이런 이야기를 쓰면서도 이 글이 망설이는 나의 변명같아 많이 부끄럽다.)
-Min
2014년 3월 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