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도란도란 프로젝트 - 열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건강함


밥을 한숟갈 푸욱 떴다
건강에 좋다는 흑미인지 잡곡인지
흉내내기에 적합한 정도로만
흰 쌀에 뜨문뜨문 섞여있었다


입 안에서 조잡하게 뒤섞였다
식감이 좋지는 않았다
이를 위로라도 하듯
덜렁 밥상에 내던져진 것
계란후라이.


아아,
밥이라는 것은 6첩반상은 아니어도
젓가락이 제갈길 못 찾아
헤메일 정도는 되야지
이건 그냥 일방통행이지.


산뜻한 밥, 포근한 밥은
숟가락 하나씩 쥐어들고
양푼에 쓱쓱 비벼먹을지라도
숟가락끼리 부딪히는 소리내며
바쁘게 계란을 탐해야 제맛이지.


퍽퍽한 밥알을 이로 세며
씁쓰름하다 느꼈다
아직 홀로 곱씹는 건강 웰빙
나부랭이보다
따스한 국 , 반찬투정이 하고싶은
그런 철없는 나인데.


-Ram


1. 머리털나고 난생처음으로 엄마한테 밖에서 밥을 사 준적이 있다. 나는 21살 때였고, 염리동에서 자취를 하며, 홍대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을 적이다. 엄마랑 통화를 했는데, 내가 엄마보고 서울로 놀러오라고 한 것 같다. (잘 기억은 안난다)
엄마는 토요일이 되자 홍대를 방문하셨다. 나는 엄마를 데리고 홍대 미술학원 거리에 내가 좋아하던 ‘이찌방테리야끼'라는 가게를 갔다. 그 가게에서 고기를 찍어먹는 소스가 엄청 달달하며 맛있어서, 그걸 꼭 엄마랑 같이 먹고 싶었다. 엄마랑 둘이 앉아, 지금 어떻게 살고있냐, 밥은 어떻게 먹냐, 아르바이트는 괜찮냐, 는 등의 주제로 이야기를 하면서 음식이 나오길 기다렸다.
음식이 나오자 고기 한 점에 소스를 듬뿍 찍어 엄마에게 드렸다. 다행스럽게도 엄마는 맛있다고 해주셨다. 나는 내가 맛있다고 느끼는 것을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도 권하고 싶은 그런 마음이 많아서, 엄마도 맛있어해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보면 소스가 굉장히 달 수도 있었으나, 괜찮다고 해주셨다.
마치 내가 한 음식도 아니면서, 내가 한 음식을 맛있다고 해줬을 때 드는 뿌듯함이랄까.
밥을 다 먹고, 지금보다 어린 나는 지금보다 젊고 날씬했었던 엄마와 함께, 홍대 길거리를 돌아다녔다.
그 때가 따뜻했을 때라 프리마켓이 했어서, 길거리에서 귀걸이도 구경하고, 지갑도 구경하고, 수제품도 구경했다. 아마 엄마는 이런 문화들을 경험하지 못했을거라 생각해서 마구마구 데리고 다니고 싶었다. 그 당시에 만나던 남자친구가 마침 프리마켓에서 공연을 한다고 해서, 저 사람이 내 남자친구야, 하면서 노래도 들려주고 싶었으나 엄마는 다음 약속때문에 엄청나게 아쉽지만 오후 4시쯤 엄마와 헤어져야 했다. 뭐야. 지금 생각해봐도 그때의 감정이 생각난다. 엄청 아쉽고 시원섭섭한.
아주 가끔은 그때가 그립기도 하다.


2. 점점 나이가 들수록 특이한 버릇이 생겼다. 버릇? 습관? 식습관이라는 말이 맞겠네.
어릴 적에는 국이나 찌개 등에 밥을 비벼먹는 걸 좋아했다. 국에는 물론 밥을 말아서 김치랑 같이 먹는걸 좋아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아주 어쩌면 본 재료의 맛을 느끼고 싶어서 일지도 모르겠다) 국과 찌개와 밥은 각각 따로따로 먹게 되었다. 뭐 그럴수도 있지, 하겠지만, 더 웃긴건 카레가 있어도 왠만하면 비벼서 먹지 않고 따로따로 먹는다. (물론 집카레 기준) 볶음밥도 왠만하면 먹지 않는다. 뭐 아예 안먹거나 그런건 아니지만, 난 그냥 따로따로 먹는게 참 좋다.
어릴 적에는 진 밥이 좋았다. 그냥 부들부들하고, 씹기도 편하고, 목구멍에서 잘 넘어가고. 그런데 커가면서, 그리고 현미밥의 그 꼬들함을 느끼면서 진 밥이 싫어졌다.
그리고 나는 방금 갓 한 밥을 싫어한다. 엄마가 보통 밥을 해두시면 집에서 밥을 먹는 사람이 거의 없다. 다들 직장에 다니고, 밖에서 밥을 먹고 오는 그런 날이 많아서, 밥을 해두면 대부분은 그냥 식게 된다. 그래서 나는 대부분 식은 밥을 다시 데워먹는 것이 더 맛있어졌다. 어느날 나는 갓 한 밥을 싫어한다고 엄마에게 선전포고하자 엄마가 넌 참 특이하다고 했다.


3. 나는 내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아침밥을 챙겨주는 것을 좋아한다. 나로 인해 든든하게 먹고 하루를 시작했으면 좋겠다. 아침밥 같은 존재가 되고싶다.


-Hee


밥을 먹을 때, 내 자신이 태도의 변화가 생긴다는 사실을 나는 얼마 전에 알았다.


누군가와 3년간의 사랑을 마치고 나서의 일이었다.


그 사람을 만날 때쯤에는 너무 당연해서 몰랐던 것일까, 아니면 익숙해져서 나도 모르게 생활습관으로 묻어있던 나의 모습이어서 몰랐던 것일까. 내가 좋아하는 음식을 나와 친한 친구 놈과 먹다가 문득 깨달았다.


둘이 먹는 그 철판볶음밥에는 군데군데 닭갈비가 들어가있는데, 내가 그 닭갈비를 신나게 먹고있는 것 아닌가! 아니 이게 뭐 태도의 변화야 라고 하겠지만, 생각해보니 내가 사랑했던 누군가와 지냈던 3년여의 시간 동안 나는 맛있는 알맹이들은 언제나 그 사람을 챙겨주곤 했던 것 같다.


참 별일 아닌데도 문득, 그렇게 챙겨줄 그리고 아껴줄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참 좋은 일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곤 한다. 정작 나는 중요하고 맛있는 것들은 다 상대방을 먹였어도 하나도 아깝지 않은 시간들이 참 좋았던 것 같다.


밥 먹는 시간은 참 소중하다. 더군다나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식사는 더더욱 그렇다. 나에게 부족한 것들이 별로 없던 시간에 난 그걸 잘 알지 못했다. 어쩌면 가난의 시기는 우리의 삶에 그렇기에 더욱 한번쯤 필요한 시간인 것 같다.


우리가 잘 느끼지 못했던 소중한 것들. 그것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진실의 마법 같은 거랄까.


-Cheol


누군가를 위해 밥을 한다는 것은 두근거리는 일이다.


밥은 해먹는 음… 다시 말하면 만드는 재미가 있다. 최근들어 다시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시간을 들여서 제대로 먹고싶단 생각이 든다. 예전엔 함께 먹을 요리를 정하고, 장을 보고, 음식을 나누는 일이 많았다. 또는 각자 준비한 음식들로 파티를 열기도 했다. 우리집을 아지트로 우리는 많은 요리를 함께했다. 본가에서 나와 혼자 지낸 기간이 길어지면서 주방용품 욕심도 생겼다. 요리에 재미도 붙어서 웬만한 요리는 레시피만 있으면 적당히 맛을 내는 편이고, 맛있는 음식을 먹이는 기쁨도 안다.


지금의 우리는 사먹는 것에 익숙해졌다. 나 역시 밥 해먹기가 귀찮을 때가 많다. 사먹는 것이 편하니깐. 다양한 음식들을 쉽게 접할 수 있고, 블로그 또는 SNS는 그들의 사진들로 가득하다. ‘카모메 식당’, ‘심야식당’을 시작으로 요리에 대한 드라마나 영화가 유명해졌고, 우리나라도 ‘식샤를 합시다.’나 ‘출출한 여자’처럼 늦은밤 싱글남녀의 먹방(?) 드라마들이 생겨났다. 누군가의 혼자 밥 먹는 모습이 익숙해져 간다.


밥. 나는 아직 혼자 먹는 것이 부담스럽다. 혼자라면 먹는 것을 포기하던지, 커피에다 빵 정도로 만족하게 되었다. 아끼는 이들과 함께하는 시간도 줄어간다. 다들 바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밥을 먹는다는 것. 그 간의 이야기를 나누고 시간을 공유하는 것, 함께하는 것이다. 밥을 잘 먹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혼자선 잘 챙겨먹지 않으니 우습다. 혼자니까 잘 챙겨먹지 못하는 것이겠지. 혼자 만들어 먹는 요리는 심심해진다. 맛이나 분위기가 허전해진달까…
오늘은 누군가를 초대해야겠다.

(요즘은 까수엘라를 만들어 먹는다. 그러니 놀러와.)


-Min


2014년 3월 1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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