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색"

도란도란 프로젝트 - 열한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열 아홉,
‘대학생이 되면~’
뭘 하고 싶은지 버킷리스트를 만들었던 적이 있었다.


구두신기
귀뚫기
염색하기


세가지가 아마도 가장 큰 '로망'이었다고 할 수 있었다


168이라는 '큰 키'에 속하던 나로서는 높은 굽의 구두를 신고
당당하게 걷는 여대생을 상상하며 행복해하곤 했다.
목걸이 하나 허용하지 않았던 나름의 보수적인 아빠탓에
바늘이 귀에 통과할 수 있었던 것은 스무 살 때 겨우.
하지만 이내 이것도 화장조차 제대로 할 줄 모르는
게으른 주인을 만나 귀걸이와 구두는 갈곳을 잃었다.


마지막 염색.
나는 지금 4년 째 노란머리(?)를 고수중이다.


원체 자연적인 연한 갈색 머리에 매직이나 파마, 염색을
일체 해보지 않았던 터라 염색은 내 나름의 파격변신이었지.


스물 한 살, 여름에 고심끝에 염색을 강행했다.


사실 난 머리에 대한 애착이 커서
(3년 간 단발머리로 지내와서일까)
쉽게 자르지도 않을뿐더러
세팅되지 않은 일자 생머리로는 쉽게 다니질 않는다


주위 지인들도 화장을 포기하고 머리세팅에 시간을 투자하는
나를 너무 익히 잘 알고 있을 정도니까.


무튼
그 해 여름의 밝은 노란빛 갈색 염색은 스물 네 살이 된 지금까지도
열심히 이어지고 있다.


염색은 생각보다 고단하고 지독하다.
피부 하얀 백인이나 파란 눈의 여성이 아닌지라
홍익인간임을 증명하듯 뿌리부터 자라나는 갈색머리를
때되면 열심히 다시 노란빛으로 채워줘야 한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마지막 자존심 같은 것이었다.


내 인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멋부림'은 염색이다.
나는 평생토록 웨이브진 머리와 햇빛에
탐스럽게 빛나는 밝은 색 머리를 고수하고 싶었다
(빨간머리는 싫다.)


하지만 아마 곧 차분한 검정색 머리로 돌아와야할 것 같다.
취업이라는 문턱에 서성이고 있는 중
머리색이 나의 경력과 실력을 감추는 것도 아니지만
숨막히는 하나의 사회인으로 발을 들이기 시작하려면
아마도 고등학생처럼 이른바 '단정한’ 머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난 지금도 충분히 단정한데…


마지막 염색은 눈이 따갑도록 아프고
지루하도록 긴 시간동안
영겁의 시간을 걷듯, 마치 나의 청춘을 내려놓듯
큰 이별이 될 것같아 조금은 슬퍼지려고 한다.


- 마지막 노란머리를 기념하며..


-Ram


1. 나의 하루는 내 머리가 갈색이였을때, 검정색으로 염색을 하고 싶었다. 친구 Y양에게 물어보니, 검정색은 집에서 염색을 해도 괜찮다고 나에게 일러주었다. 그래서 검정색 염색약을 사들고 집으로 갔다. 집에 도착하니, 엄마 아빠가 약주를 하고 계셨다. 그래서 엄마에게 염색을 해달라고 하니, 술을 드셨다며 모른척을 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오늘은 염색을 못하겠구나, 했는데, 갑자기 청하 한 병에 얼큰하게 취한 아빠가 염색을 해준다고 했다. 음. 일단 고마운데, 과연 그 아빠 상태에서 염색을 할 수 있을까.. 의심을 해봤다. 하지만 내 성격은, 한번 마음 먹으면 바로 실행에 옮기고, 또 그렇게 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아빠에게 내 머리를 맡겼다. 아빠의 손아귀 힘은 굉장히 세서 머리가 아팠다. 그리고 아빠의 성격은 굉장히 꼼꼼해서 일단 한번 시작하고 나니 굉장히 꼼꼼히 내 머리에 검정색 염색약을 바르는게 아닌가………. 새벽 한 시에 내 머리 염색은 끝이 났다. 이미 엄마는 주무시고 계셨고, 아빠는 내 머리카락에 (나는 머리숯도 많다) 꼼꼼히 염색약을 모두 바르신 후, 유유히 컴퓨터를 하고 계셨다. 나는 정해진 30분이란 시간이 지난 후 머리를 감았다. 머리를 모두 감고 나서 거울에 내 얼굴을 비추어 보니 머리 염색이 굉장히 잘 되있었다. 물론 검정색이라는 고유의 색 때문에 잘 되었을 수도 있곘지만, 다시 한번 아빠의 꼼꼼함에 놀랐다. 그리고 돌이켜보면 아빠가 내 머리에 염색약을 발라주리라곤 상상하지도 못했다. 우리 아빠의 성격은 굉장히 무뚝뚝하며, 살갑지 않다. 3형제 중 첫째로 태어났고, 할아버지 고향이 경상도인데다가 군인이셨기 때문에 집안 분위기 또한 딱딱했다. 덧붙여 할머니 이야기까지 하자면, 우리 할머니는 3형제를 낳으셨고, 군인인 할아버지에게 아주아주 어릴 적에 시집을 갔기 떄문에, 할머니 또한 성격이 살갑지 않았다. (그래서 우리엄마가 아빠에게 시집와서 8년동안 할아버지 할머니와 같이 살면서 서운함을 굉장히 많이 느꼈다) 무튼 나중에 우리가족이 따로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독립을 하면서도, 집안 분위기가 굉장히 (예전에 할아버지댁에 살던 것을 닮아) 무뚝뚝했다. 누구 하나 애교있는 사람이 없었다. 당연한 아빠도, 그리고 8년동안 시집살이를 한 엄마도, 그리고 그 밑에서 자란 나와 내 동생도. 그래서 나는 중,고등학교때 친구를 부를 떄, 그냥 이름을 부르지 못했다. 꼭 성을 붙여서 불러야 편했다. 동생을 부를때도 그랬다. 괜히 이름만 부르기가 어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나보다 지금의 나는 정말 많이 살가워졌고, 유해졌으며, 정다워졌다. 어떤 이들은 예전의 내 모습을 이야기하면 전혀 상상이 안간다고도 했다.


2. 나는 내 고유의 색을 잃지 않으려고, 지키려고 애쓰는 측에 속한다. 어느 누가 안그러겠냐만은. 사실 그 전엔 지금의 색에 만족을 못하고, 조금만 더, 조금만 더, 이렇게 저렇게 변하면 어떨까, 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지금의 나보다 더 나은 내가 되고 싶었기 때문에. 그런데 누군가가 그랬다. 넌 지금 너의 모습, 그 자체를 지키는 게 중요하다고. 내 모습을, 내가 소중하게 간직하려고 하는 것들을 잃지 않는게 중요하다고. 그 얘기를 듣는 순간, 어쩌면 내가 변하는 것보다, 내 자신의 모습을 지키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느꼈다.


-Hee


문득 날이 따듯해지더니 봄비가 내린다. 엊그제까지만 해도 내 옷깃을 여미게 하였던 겨울은 결국 떠나갔다. 이대로 겨울은 나와 헤어져 버리는 것만 같아 서운하기도 하고, 추위 속에서도 따듯히 빛나는 사람을 참 많이도 좋아했던 그 겨울이 그립기도 하다. 이제 나에게는 또다시 새로운 따듯한 봄날과 땀을 내리는 쨍쨍한 여름이 다가오고 있겠지. 세상은 푸른 녹색 빛으로 그리고 빨갛고 노오란 빛으로 자신을 염색하겠지.


변해가는 나처럼.


*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 카를 바르트


스무살이 되고 나서 나는 놀랐어. 입시라는 하나의 목표, 하나의 색깔이었던 문을 열고나오니 내 앞에는 수 많은 갈림길과 장애물과 그 보다 더 많은 빨갛고 파랗고 형형색색의 문들이 저멀리 놓여있었기 때문이지. 나는 무서웠고 당황했고 머리카락을 염색하듯이, 여기저기 이런저런 색들로 물들어 버렸지. 그렇게 나의 긴 방황이 시작되었어.


돌이켜보면 당시의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는 ‘열심히 살아라’ 같은 이야기가 아냐.


‘ 두려워 하지 말라’


‘ 조급해 하지 말라’


‘ 오늘을 행복히 살아라’


이 세마디면 될 것 같아. 하나만 더 붙이자면 ‘자신을 믿고 스스로 소중히 해라’ 정도랄까. 그리고 이 말들은, 남들보다는(남들이 하듯이 대부분이 가는 길을 따라가야 한다면) 뒤쳐진 지금의 나에게 역시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해.


*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 카를 바르트


나는 너를 믿지 못해. 너의 과거와 너의 현재 그리고 당신이 나를 생각하는 너의 감정까지도 나는 믿지 못해. 너는 나를 믿을 수 있겠니. 우리가 함께 보내었던 짧았던 시간들은 분명 행복하였었지. 하지만 이대로라면 당신이든 나든, 우리의 행복이 분명 우리에게 더 큰 독이 되고 상처가 되는 날이 오게 될거야.


감자 싹에 숨어든 소라닌처럼, 처음 그 감자를 먹는 순간은 우리의 허기를 달래주고 우리에게 포만감을 안겨주겠지.


하지만 그 뿐이야.

그 순간의 충만함은 곧이어 큰 아픔이 되어 우리의 온 몸을 휘감을거야. 너는, 당신의 머리카락을 염색하듯이 나에게 물들 준비가 되었니. 그것이 독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삼킬 용기를 가졌니.

사랑이란 건 말이야. 큰 행복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큰 아픔이기도 하니까. 당신의 용기와 결정에 책임질 수 있겠니.

너의 허기짐을 채워주고 순간의 포만감을 넘어서서, 더 큰 믿음과 그에 따른 아픔들까지도 기꺼이 짊어질 수 있겠니.


지금 당신의 앞에 그런 사랑이 놓여있어.


그 독을 기꺼이 삼킬 수 있는 한 파아란 청년이 너를 기다려.


카를 바르트의 옛말을 홀로 중얼거리면서 말이야.


“ 어느 누구도 과거로 돌아가서 새롭게 시작할 수는 없지만, 지금부터 시작해서 새로운 결말을 맺을 수는 있다, 카를 바르트”


-Cheol


이제 염색은 하지 않는다. 충분히 해 봤다고 생각한다. 스무살엔 나도 많은 색을 가졌었다. 지금이야 머리카락은 적당히 잘라주면 되는 것이라 생각하기에 그렇게 신경쓰지 않는다. 관심이 없어졌달까. 필요를 못 느낀달까. 그런 이유로 자주가는 미용실에서도 나는 실속없는 손님이다.



스무살. 머리색을 자주 바꾸는 친구가 있었다. 첫인상은 강렬했다. “다음 시간엔 핑크색으로 해오지 그러냐!” 염색한 머리를 지적하시는 교수님이 계셨고, 한 주가 지나 우리는 핑크색 머리를 한 채로 웃고있는 친구를 볼 수 있었다. (교수님은 한숨을 쉬셨다.) 그 아이는 한 달에 한 번은 새로운 머리를 하고 나타났고, 나는 매번 그녀의 머리카락을 만지면서 신기해했다. 그럴만도 한 게 지금이야 핑크라던지 보라빛의 머리를 종종 볼 수있지만, 그 당시엔 사람들이 하는 염색이라고 해 봐야 갈색 계열이거나 붉은 계열 매니큐어 정도였으니까.


그녀는 다양한 머리 색을 무난하게 소화했고, 몇몇 색은 너무나 잘 어울렸다. 특히 화이트 블론드는 절정이었다. (그녀는 미인이다. 완성은 얼굴!!!) 그녀의 머리칼에 햇빛이 내리면 반짝반짝 빛이 났다. 머릿결이 상하는 것은 신경을 쓰지 않았던 것 같다. 수 많은 색이 입혀졌던 친구의 머리는 그 흔적들이 섞여선 아이스크림 같은 색이 되었다. 친구는 얼룩진 것 같다며 싫어했지만 나는 예쁘다고 생각했다.


원래 머리카락이 갈색을 띄던 나는 염색에 대한 욕심이 크지 않았다. 서로 다른 우리가 친해진 것도 재미있지만, 우리는 서로를 존중했고 간섭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왜 그렇게 머리카락의 색깔에 집착을 하는지 물어보지 못했다. 막연히 색깔보다는 ‘염색하는 행위 자체가 그녀에게 의미있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했다. 연인에게 심하게 차였다던가, 삶의 변화가 일어난다던가 하는 때에 머리를 자르는 것과 비슷하려나.


그런 그녀에 대한 소문은 좋지 않았다. 누군가가 지어낸 소문이었지만 화려한 그녀에 대한 시샘이 컷는지 나쁜 이야기가 많이 들렸다. 친하게 지내던 나에 대한 이야기도.


“나 흑발도 이쁠 것 같지 않아?”


그녀는 자신에 대한 소문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꽤나 오래 울었고, 다음날 흑발의 미녀가 되어 나타났다. 소문은 여전히 남아있는 듯 했다.


몇 일 지나, 나는 염색을 했다. 그냥 해보고 싶었다. 오히려 이번엔 쌍으로 난리라며 미친X 소릴 들었다. 몇 차례 머리카락에 색을 입혀보면서 머리색에 집착하던 그녀의 마음을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우리는 미친X병이 그녀에게서 나로 옮겨갔다며 히히덕거렸다.



화려한 색으로 염색을 하는 것은 재미가 있다. 사람들의 시선이 느껴지는 게 찌릿찌릿하다. 살면서 한 번 쯤은 해볼만 한 일탈이다. 친구의 영향도 있었지만 그 때가 아니어도 나는 언젠가 염색을 했을 것이다. 아주 강렬한 색으로.



(사실 나는 어울리지 않았다. 그래서 그 해가 가기 전에 원래의 머리색으로 돌아왔다. 아하하하하… 완성은 얼굴!!! T.T)


-Min


2014년 3월 2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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