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마흔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그리웠다.

얼굴도 목소리도

네 품도 전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은

끝내 우리의 관계 속에서

뭉개지고야 말았다.


영원하리라 믿었던 애정은

세월앞에 서서히 가라앉았고

네게 했던 말들은

조금씩 색이 바래어 갔다.


오래도록 사랑할 줄 알았다.


아무리 미워도

서로를 부르는 소리에는

곧잘 달려나오는,

서로의 끝이 되어주길 약속했었다.


허나,

그저 말로써 이어진 약속들이

이렇게나 쉽게 툭,

하고 끊어질 줄은.


너를 놓고서야 알았다.

그리운 사람.

그리운 그때의 나.



-Ram


1. 다른 대화를 하자

우리들은 지금 지키지 못할 말들을 서로 내뱉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말들로 인해 살아가는 동력과 동기가 불어넣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 말들로 인해 느끼는 허탈감과 상실감은 어떻게 견딜까.

그 말들이 일상의 임시방편으로 사용하고 있는 건 아닐까.

지킬 수 있는 말들만 내뱉고 싶은데, 정말 상황이 변해서 지키지 못하게 되는 상황을 느꼈고,

그 말을 어떻게든 지키려고 유연하지 못하게 행동한 적도 많았고,

내가 들었던 그 말들이 다시 화살이 되어서 내게 상처도 돌아온 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조금 더 신중해졌지만, 어쩌면 지키지 못할 말들을 어렵사리 내뱉고 있다.

어떨 때는 그런 말들에 질려 현재형의 말들만 믿고 싶었던 적도 있다.

현재형의 말들은 최소한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과, 지금 행하는 생각과 행동들을 포함하고 있을테니까.

그런데 불행하게도 현재형의 말들 조차 제대로 듣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들은 어떤 대화를 하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

무겁기도 싫고, 가볍기도 싫어하며, 쉽게 보이기도 싫고, 어려워하기도 싫어하는 우리들은 앞으로

어떤 대화를 더 해야 하는 것일까.

쉬이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을 받고, 선뜻 먼저 제안하기 어려운 질문을 망설이고,

머리 속으로는 백 번, 천 번 확인하고 싶은 생각들을 입 안에 머금으며 다시 삼켜버리는 지금.


2. "말이라도 그렇게 해줘"

내게 '말로만으로도', '말만 그렇게 해주면' 따위의 말을 건네며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그래. 말만 그렇게 해줄 수는 있지만, 그 말을 해서 내 목에 칼이 들어오는 것도 아니지만,

당장 내가 그 말을 한다고 내가 벌을 받는 것도, 곤란해지지도 않을 뿐더러,

되려 조금 더 지금이 편해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아니 대답하지 못했다.

말만으로 안심시키는 그런 상황따위를 나는 견디기 어렵다.

껍데기같은 말들로 상대방을 현혹하고, 상대방에게 기쁨을 주는 일 따위는 정말 못하겠다.

그런 왜곡된 말들로 기쁨을 느껴봤자, 행복을 느껴봤자, 왜곡된 감정일텐데.

말만 바라는 질문은 제발 내게 안했으면 좋겠다.


3. 시나몬

시나몬모카를 주문했다.

테이크아웃 컵에 담긴 시나몬모카를 받아들고 자리로 돌아와 뚜껑을 열고

한 모금 마셨다.

마치 지금이 엄청 추운 겨울이 온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제작년이였나. 11월에 학원 아르바이트가 끝나고,

동탄에 밝은 원목으로 따뜻하게 인테리어를 하고, 아기자기한 인형들과 소품들이 잔뜩 있던 카페를 간 적이 있는데,

그 카페에는 마침 라떼와 카푸치노를 많이 만들었는지, 고소한 시나몬 향이 가득했었다.

그 때 생각이 났다.

점점 추워지는 요즘, 이 카페를 올 때마다 시나몬모카를 마셔야겠다.



-Hee


도전을 시작한지 어느덧 일년이 지났다.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를 읽은지도 일년이 다 되어간다. 많은 어려움들이 있었지만 어떻게든 하나의 방향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 내가 원했던 곳에서 원하는 일을 하며 치열하게 버텨내고 있다.


그럼에도 여전히 부족한 것들 투성이다. 지켜지지 않을 언약들 속에서 제대로 된 언약 하나 지킬 여력이 없다. 힘든 때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담담히 받아들인다. 하야마 아마리가 책에서 말했던 것처럼 애초에 지금의 내가 욕심낼 수 없는 것이다 싶었다.


2년? 아니면 3년? 그정도의 시간이 지났을 때의 나를 빛내고 싶다. 그래서 지금의 부족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 너에 대한 욕심도 그렇게 마음 한 켠에 접어둔다.


친한 형의 결혼식에도 가지 않았다. 밀린 월세와 부족한 생활비의 돈 문제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질투가 났다. 그들의 언약을 보며 마음이 쓰릴 것 같았다.


다 핑계다.

그저 내가 부족할 따름이다.


그렇게 말해도 핑계를 대어 본다. 모든 것이 완벽할 수는 없으니까. 사소한 핑계도 댈 수 있는 것이라 스스로 위로해본다.



-Cheol


1.

술 마실 때나 찾던 담배를 죄책감도 없이 피우고 그렇게 할 생각도 없이 ‘곧 끊어야지.’ 버릇처럼 말한다. 빈 담뱃곽 꽉 쥐어 구겨버리면 이내 불안한 듯, 뭐에라도 홀린 듯 새 담배 비닐을 뜯으면서. 아빠가 엄마에게 곧 끊을 거라 거짓말 해왔던 20년 세월을 곁에서 배운 것이라고, 이러나저러나 변하는 것 하나 없을 말을 핑계랍시고 자주 흘린다. 면세점에서 보루 채 사 온 담배가 어느새 한 갑 남아있었다. 이내 초조해지는 스스로를 알아차린 순간에 두려움이 스멀스멀 기어든다. 많은 것들이 잘못되고 있었다. 손 넣은 주머니마다 흩뿌려진 담뱃잎 자잘하게 만져질 때는 외면하던 사실인데, 지금 나는 분명하게 안 좋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그리고 담배는 나를 다시 무감각하게 만들 것이다.


요즘 나는 점점 더 나약해지는 스스로를 구원할 마음이 없다. 욕심부리던 것들을 쟁취하려는 미세한 흔들림도 없다. 태도를 급변시킬 어떤 계기들을 기다리는 듯, 기다리지 않는 듯.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만큼 망가져 있다. 다만, 언약이란 단어가 내게 어떤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종종 내가 쓴 글에 휘둘렸던 것처럼, 이곳에다 금연 같은 단어를 써 놓으면 당장 내일부터는 뭐라도 조금은 달라지지 않을까 싶어서.


2.

지금 자고 일어나서부터 완전 열심히 잘 살겠습니다.



-Ho


2016년 10월 16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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