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예순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네가 나에게 처음 건넸던 말.


너와 내가 이어졌던

첫 매듭.


그 한 마디 속에

수 십번의 고민과 망설임이

꾹꾹 담겨있었음을.


닿지 못할까

마음 졸였던 한 마디.


네가 그리웠다.

네가 궁금했다.

마음에 담아두었던 것들을

네게 건넨다.


"안녕하세요."


보고싶었어요.



-Ram


1. 약속시간을 너무나도 어겨버린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던 그날

"어머, 죄송해요. 많이 늦었죠."

그를 처음 만난 나의 인사는 안녕하세요, 대신 죄송해요, 였다.

약속시간을 거의 한 시간 반 남짓 늦어버리고야 만 나는,

빈 손으로는 갈 수 없어 사과의 의미로 작은 꽃기린 화분을 하나를 내밀었다.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별로 심심하지 않았다며, 괜찮다며 어색하게 나를 위로했다.

이야기의 흐름은 다채로웠다.

근황에서 서비스로, 서비스에서 우주로, 우주에서 사람으로.

"전 그 때 그런 모습이 참 책임감이 없다고 생각했어요." 라고 말하려던 것을 참고,

그 당시 왜 그러셨냐고 질문했다.

그와 만나기 반 년 전 쯤, 한 아카데미에서 그와 나는 각자 다른 조의 조장이였다.

아카데미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은 매주 열심히 서비스를 기획했고, 수정하고, 또 조사하고, 다시 수정하고.

그렇게 두어달을 보낸 후 최종 발표를 했는데, 최종발표때 유감스럽게도 그는 없었다.

그 대신 조원 한 분이 나와서 대신 발표를 했다.

(그 조원분과도 친했었는데, 나중에 나에게 정말 힘들었다고, 그조차도 도망가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그대로 사정이 있었다. 꽤나 인생에서 큰 방황을 하고 있었다지, 아마.

그래, 인생에서 큰 방황을 하고 있는데, 발표가 눈에 보이겠어, 라고 그에게 공감하려 했지만,

내 머릿 속에서는 사실 쉽사리 공감되지 않았다. 그래도 그렇지, 라며.

생각보다 그와 나는 굉장히 많은 시간을 할애하며 대화를 했다.

어느덧 창 밖은 어두워졌고, 생각지도 못하게 저녁까지 같이 먹게 되었다.

나는 뛰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는 산책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했다.

나는 마음이 지치고, 괴로울 땐 집을 나서고, 친구들을 만나고, 대화를 하며 이겨낸다고 했다.

그는 마음이 지치고, 괴로울 땐 집에서 꼼짝없이, 방 안에 불을 다 끄고, 그렇게 생각을 하며 이겨낸다고 했다.

나와 그렇게 달랐던 그는 지금도 열심히 그의 세상에서 살고 있는 듯 보였다.

꽤나 좋아하는 것에 열정적이였던 그의 모습이 내게도 일정 시간동안 큰 동기가 되었었다.

그를 한 번 만났던 사람은 그의 독특함과, 순수한 열정을 잊지 못할 것이다.

멀리서나마 그를 조용히 응원해본다.


2. 날 어떻게 생각해?

생각보다 관심을 받고 싶어 했고,

생각보다 사랑을 받고 싶어 했고,

생각보다 위로를 받고 싶어 했다.

나도 몰랐다. 내가 그럴 줄은.

내 자신에 대한 호기심을 바랐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진 못하더라도, 어루만져주길 원했고,

따뜻한 말 한 마디가 그리웠다.

그게 그렇게 어려운 일인 줄 생각도 못했다.

내 안에는 당연한 것들이,

생각보다 저 멀리 있었고,

전혀 내게 다가올 생각을 안했다. 무심하게도.


3. 그래, 그렇게 해보자.

"나는 뻔히 칭찬받으려고 이야기하는 그 말을 알면서도 칭찬해주고 싶지 않아. 지금까지 그렇게 살았어."

"그래도 거의 삶의 1/3을 살았으면, 2/3은 조금 다르게 살아가도 되잖아. 나머지 인생의 시간까지 지금이랑 똑같이 살아가면 재미없잖아. 안해본 것들도 해보고, 안해본 말들도 해보고, 안해본 것들도 해봐야하지 않겠어?"



-Hee


나는 어디에서부터 이렇게 삐뚤빼뚤하게 된 것일까?


겉으로는 사람들을 향해 허허실실 웃어보인다지만 점차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고 있다. 일말의 스트레스를 받고 나면 왜 나는 온통 삐뚤어지는 것일까? 왜 더 발전적이고 건설적일 순 없는 것일까?


온통 머리 속이 복잡하다. 단지 기분 탓인걸까?


늦은 저녁. 갈색 목조 가구들이 돋보이는 카페의 테이블에 앉았다. 홍차 한 잔을 테이블에 올려두고 자신을 마주본다. 지난날의 나보다 더 훤칠해졌다. 예전보단 살이 찐 것 같기는 하다만 보다 넉넉해져 보인다. 아직도 방황하느냐고 묻기엔 이제는 제법 눈동자가 확신과 신념에 차 있어뵈였다.


그럼에도 나는 왜 삐뚤어진 것인가?..


공허한 마음을 달래려 내 손에 쥔 종이조각 한 장을 응시하고 읽어내려 본다.


모든 곳에 있고, 어디에도 없는 관계.

그리하여 우리 각자의 영혼을 자유롭게 하는 관계.


함께 있지 않음이 더이상 상처가 되지 않는 사람.

내 주위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힘이 되고 따듯해지는 사람.


-'빨강머리 앤이 (아직 너무 늦지 않았을 우리에게) 하는 말' 중에서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을까?'

홍차 한 잔을 사이에두고 마주보고 있는 자신에게 안부 인사를 건넨다.


'안녕하세요?'



-Cheol


안녕. 하고 소리 내어 말해보면 참 좋아요. 무심하게 소리 내도 이미 많이 따뜻한 말이 되어 있어. 안녕히 잘 지내고 계신 거겠죠. 어제 차례를 지내는 동안에 할아버지 드실 문을 내가 열고 닫았는데 어쩐지 다녀가신 것 같지 않아서요. 하기는, 나도 전 부치는 냄새나 왁자지껄한 소음보다는 텅 빈 아침 골목에서 더 짙은 명절을 느껴요. 차린 것도 많지 않았는데 잘 하셨어.


이제 명절에도 사람들은 할아버지 이야기 한 번도 안 해요. 그마저도 잘 지내기 위해서 부러 그랬다고 생각은 하는데 괜히 내가 서글픈 마음이 들어요. 큰엄마 쌀쌀맞은 표정이 어째 큰일이라도 치를 것만 같았는데 다들 속에 품은 말들을 삼키고만 있으니까 명절도 이렇게 나쁘지 않게 지날 수 있구나, 새삼 놀랍고 좋았어요.


나도 잘 지내요. 어지간히 좋아요. 꼭 여섯시 내 고향에 나오는 사람들 같다니까. 좋아하는 사람도 생겼고 집에 먹을 것도 많고. 마음이 아주 부자야. 또 오백 원으로만 가득 찬 돼지 저금통이 곧 두 개나 되는걸. 할아버지 용돈 없이도 이제 이렇게나 잘 지낸다고. 그러니까 할아버지도 꼭 안녕하세요.


여기까지 쓰고 나서 많이 고민해봐도 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이제 없는 사람에게라도 거짓말이 참 어려워서. 더 아무 말 않고 끝내려 했는데 미안한 생각이 자꾸만 들고. 사실은 얼마간 마음이 엄마 잃은 애처럼 위태로워서 석연찮게 죽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했는데요. 지금은 안 그래요. 앞으로도 오래 괜찮을 거고. 내 손목을 타고 흐르는 애정이 만져졌으면 좋을 텐데.



-Ho


2017년 1월 29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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