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흡"

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여든 다섯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사람과 사람의 관계가

호흡과 같았다면,


들이쉬는 만큼

내어주는 관계였다면.


우리가 조금 더

따스하게 지낼 수 있지 않았을까.


사실

공평하게 주고받는 관계가

어디에도 없음을 알지만


메세지 하나에도

마음을 졸여야 했던 나는

그렇게나 가벼운 것들이

무척이나 어려웠다.


안녕이라는 인사가

네게 날아가서 사라져버릴까봐

아무 쓸모 없는 한 마디가 되어버릴까봐

더 많은 것들을 보내려 했을때


네게 부담이 된 것은 아니었을까.


숨을 쉬는 것만큼

자연스럽게 행복해지길

바랐던 것이

우리에게 부담이 되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Ram


1. 보물찾기

숨을 크게 들이마신다.

마음을 바로잡고,

내가 좋아했던 것들,

하지만 잊고 지냈던 것들에 대해 떠올려본다.

맞아.

난 새로운 걸 아는 것을 좋아했지.

괜시리 쓸데없는 호기심이 많았지.

처음 듣는 주제의 이야기를 좋아했지.

뭔가 내 마음을 들끓게 하는 대화를 좋아했지.

내 마음이 일렁거리게 하는 사람을 좋아했지.

담백한 노래를 좋아했지.

조금은 느리게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좋아했지.

정제되지 않은 질문을 좋아했지.

잊고 있었지만 좋아했던 것들을 물 흐르듯 떠올려보며,

숨겨두었던 보물을 찾은 것처럼 입꼬리가 올라갔다.


2. 어느 대화

달리기를 하면 숨은 가빠지고,

가슴은 터질 것 같고,

얼굴은 심각해지지만,

잡다한 생각들은 정리되고,

온전히 내가 좋아하는 것만 남게되요.

그래서 달리는 건가봐요.


3. 살다보면

10 Things I hate about you에서 캣이 하는 명대사를 들어보면,

그의 여러가지가 마음에 들지 않지만, 그를 싫어하지 않는 내가 싫다고 그랬다.

캣도 내면의 프레임이 깨지는 순간이겠지.

나도 그렇다. 머리로만 판단했던 것들이 있었다.

이를테면 4년 전인가.

내 의견의 90%이상을 반대했던 이가 있었다.

그를 보며 마음 속으로 생각했었지.

저 사람은 나랑 생각의 차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앞으로 계속 지속될 수 없는 인연이겠지.

하지만 그와 나는 지금까지 종종 밥을 먹고, 웃으며 대화하고, 커피를 마신다.

살다보면 예상대로 되지 않는 것들이 있고, 당연할 것만 같았던 것들이 당연하지 않을 때가 있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준이 변할 때도 있다.

보편적인 것들이 나에겐 보편적이지 않을 때가 많았고, 그것들을 보편적인 기준에 맞추려고 하다보면

수많은 갈등과 오해와 마음앓이가 뒤따르고, 그 이후에도 해결되지 않은 것들이 많았다.

또 하루는 친구와 이런 이야기도 했다.

세상에는 100% 나에게, 내 기준에 맞는 사람이 없다고.

결국 그 맞지 않는 차이들을 어떻게 이해하고 인정하느냐에 따라 결말이 다른거라고.

잃고 싶지 않은 사람이 있는데 어떠한 부분에서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면,

그 사람과의 차이를 이해하고 인정할 수 있는 내 자신의 그릇이 작은 것인가.

아니면 진정 그 사람과 본질적으로 맞지 않은 것인가.

이런 딜레마에 종종 부딪히기도 한다.

반대로 상대방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늘 변수였지만.

경험을 많이 하고, 많이 듣고, 많이 보고, 많이 관찰하는 것이 옳은 것에 수렴하는 실마리라는 사실을

항상 유념해두어야지.



-Hee


하고싶은 말이 많아. 우리 사이 감정의 끈이 끊어지지 않으면 좋겠어. 너에 대한 내 감정이 너무 앞서가지 않게 노력해보고 있어. 그래서 너와 발걸음을 맞춰봐. 하지만 난 언제나 종종걸음인것만 같아. 나만 종종걸음인 것 같아.


너는 나에게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만큼은 오늘도 변치않았어. 다만 서로 가까워지는 일이 이렇게 힘들고 애써야하는 일이라면 그건 인연이 아니래. 누군가 해준 그 한마디를 부정하기 힘들었어. 말을 잘한다는 이야기를 제법 듣는 나인데도 반박할 수가 없었어. 너를 떠나라는 말들에 한번도 흔들린적 없는 나인데도 말이야.


너와의 호흡을 맞추어보려 감정을 누르고 말을 아껴. 그런데 감정을 누를때마다 심장 언저리에서 눈물이 나. 요즘 난 내 아픈 맘을 외면해. 오늘따라 나는 우리가 인연이 아닌걸까 고민했어. 그렇게 오늘 조금 흔들렸어.


하고싶은 말이 많아. 우리 사이 감정의 끈이 끊어지지 않으면 좋겠어. 그래서 오늘도 너와 발걸음을 맞춰봐.



-Cheol


장마가 오면 통영에 내려가겠다던 말도, 그 대신이라고 하긴 뭐 하지만 공부를 할 거라던 말도 지키지 않았다. 그간 이삿짐을 일곱 번 나눠 옮겨야 했었으니까 불가피했다 생각하려 해도 실은 어쩔 수 없을 만큼이나 사는 게 급급하지는 않았다는 걸 스스로 이미 알고 있었다. 무턱대고 여유롭지도 대단히 막막하지도 않은 가운데 생각은 쉽고 행동이 따르지 않는 이유는 삶의 호흡이 뚝뚝 끊어지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살아내는 호흡이 쉽게 끊어진다. 사는 건 긴박한 일이니까 숨을 짧게 나눠 쉬는 일이 대수로울 것도 없겠지만 집중이 좀처럼 이어지지 않고 이상하리만치 쉽게 싫증을 느껴 꽤 자주 두려움에 질린다. 좋아하는 작가의 사인이 담긴 책을 받고서 바보같이 씩 웃은 게 한 달 전인데 아직 목차도 뒤적여보지 않았고 고장 난 노트북을 삼주 째 고치러 가지 않았고 이사 온 집 근처 수영장 등록도 여전히 하지 않았다. 하고 싶던 일은 금세 나쁘지 않은 일이 되고 해야만 했던 일은 좋을 것도 없는 일이 된다. 그리고 싫은 일과 그보다 더 싫은 일들은 점점 구분하기 버거워진다.


내가 많이 변했나. 내 작지만 확실한 행복들이 다 어디로 간 걸까. 나조차 답할 수 없는 물음에 약간의 뚜렷함이라도 얻고 싶어 만나는 사람마다 뭘 하면 행복하냐고 묻고 다닌다. 또 그 일들이 잘 되고 있냐고. 그러면서 알게 된 건 호흡을 이어가기란 누구에게도 쉬운 일이 아니고 행복은 늘 명확한 원칙 위에 설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통영에 갈 계획을 다시 세웠고 다음 한 주 동안에는 숨을 깊게 들이쉬고 두 달 째 읽고 있던 소설의 마지막 장을 꼭 넘겨야겠다.



-Ho


2017년 7월 2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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