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아흔 한 번째 주제
팔이며 다리에
언제 생겼는지 모를 멍자국이
드문드문.
분명,
덤벙대며 이곳저곳에
상처를 냈던 흔적일 것이다.
상처일줄 모르고
덤벼댔던 자국들은
푸르게 번졌다가
이내 노랗게 사라지고 만다.
매일이 그렇게 멍처럼
생겼다가 사라진다.
일에서도
사람에게서도
부딪히고 부서지다가
아물고 또 이겨내고.
멍든 자국들은
꼭 그렇게 사라지며
아픔을 만든다.
끝끝내 기억에 담기지 못하고
물들고 사라지는 순간들이
아쉽고 슬퍼서.
-Ram
1. 2017년 9월의 나의 이상형
누군가 내게 물었다.
이상형? 비스무리한 것을.
고민끝에 난 그냥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긍정적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생각보다 그런 사람이 많이 없다는 것을 느껴서 더 소중한 것 같다.
그리고 나조차도 내가 바라는 사람이 맞는지 사실 확실하게 대답할 수 없다.
마음에 든 멍은 사라지지 않을 줄 알았는데,
(물론 치유시간이 무릎 등에 든 멍보다는 꽤나 오랜 시간이지만)
서서히 사라지긴 하더라.
때에 따라 그 자리에 새로운 멍이 들기도 하겠지만,
겁내지 않고 그냥 난 오늘을 건강하게 살아보련다.
하루하루 건강하게 살아보려고 할거다.
2. 신 좀 그만 나
무릎에 또 멍이 생겼네.
맨날 어디에 부딪히는 줄도 모르고.
그냥 신나면 신나는대로 여기저기 돌아다니고.
분명히 어딘가 무릎이 부딪쳤기에 생기는 멍인데,
난 또 그 순간 신이나서 (또는 다른 데에 집중해서)
아픈 것도 모르고 그냥 지나쳤겠지 뭐.
운동할 때 빼곤 치마만 입고 다니는 내 취향 덕분에
오늘도 내 무릎은 남아나질 않는다.
3. 그래도
자꾸 바라는게 생길까봐 걱정이야.
-Hee
평범한 목요일 저녁. 여느때와 다름없이 업무를 마무리하고 퇴근길에 올라선다. 내일은 연차를 썼다. 오늘은 서울집이 아닌 부산집으로 퇴근한다. 여행 짐도 없이 퇴근하던 복장과 가방 그대로 부산행 고속버스에 올라탄다.
아직 갈등이 해소되지 않은 상태에서 고민없이 부산으로 향하는 나를 보면서 참 나답다는 생각을 한다. 마음 구석구석 멍든 나를 보면서도 또 싸우든지 혼나든지 찾아뵐건 찾아뵈는 것이 제법 어른이 되기도 했나 싶다. 오랜만에 찾아뵌 그 분은 여전히 그 모습 그대로였다. 나도 그만 때려치우고 싶지만 그게 또 그럴 수 없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가족이라는 것이 그랬다. 누구나 하나쯤은 가족문제를 품고 살겠지만 나는 적어도 그것을 피하거나 외면하고 사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찾아갈 때마다 내 마음에는 또 멍이 든다.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앞으로 더 많이 겪게될 피할 수 없는 인간관계들, 그 것들을 슬기롭게 풀어나가는 사람이 되는 훈련이라고 생각했다.
정신도 육체도 완전히 탈진한채로 돌아왔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생각만 간절했다.
-Cheol
네가 준 상처를 되도록 빠르게 회복하고 싶어서 나는 너를 욕했다. 가능한 구체적인 이유들로 너를 덧씌워 나쁜 여자로 만들었다. 나를 커피 한 잔 보다 우습게 아는 여자. 사람 감정을 갖고 놀기라도 하듯 필요할 때만 연락하는 뻔뻔한 여자 정도면 내 상처는 이만해서 다행인 정도로 그쳤다. 그리고 고작 그런 방법으로는 내 상처도, 숨어버린 너도 보듬을 수 없다는 걸 이내 깨달았다.
이후로는 나도 너처럼 깊은 동굴 속에 혼자 숨어들었다. 어쩌면 나는 너에게 상처받을 자격이 애초부터 없었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너와 나를 잇는 얇디얇은 실을 끊어내기 알맞은 생각이었다. 사실이 그런 것이 주말마다 시간을 내어 만났어도 우리는 어디 가서 각자를 우리라고 친근하게 엮을 만큼의 사이도 되지 못했으니까. 멀어진 친구처럼 가끔 연락이라도 하다가 그마저도 의욕이 식어 끊어지는 사이. 물론 너의 의욕만이 어떤 이유론가 갑작스레 식어버린 것이었지만. 아무튼 고작 그 정도의 사이였다고 생각하면 속에 남은 시퍼런 멍도 없던 것처럼 말끔했다. 분명 얼마간은 그렇다고 생각했다.
어쩐 일인지 반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된 너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 있었고 나는 사람 좋은 척 화난 기색도 못 내비친 채 괜찮다고 말했다. 살다 보니 그렇게 숨어들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 종종 있더라고. 나는 화도 났지만 너의 사과를 들어야 할 만큼 아파해도 괜찮을 자격이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아니 그보다도 너를 다시 앞에 두고 있다는 사실이 먼저 좋았다. 어떤 상처는 상처 준 사람만 치유할 수 있다든가 병 주고 약도 줘서 다행이라든가 하는 말을 덧붙인 것도 같다. 그러면서 조금 더 가볍고 우스운 사람이 됐을지도 모른다. 이왕이면 한결같은 사람이라고 느껴지면 좋겠다고 바랐지만.
상처는 아직 사라지지 않았다. 회복에는 어찌 됐건 시간이 필요한 법이고 반 년은 무너진 마음 위로 새 살이 돋기에는 결단코 짧은 시간이었으니까. 또 네가 내게 다시 상처를 주지 않으리란 법이 없다는 사실도 내 상처를 짓눌렀다. 그런데도 나는 마음이 가는 대로 착실히 나아가기로 결정했다. 알다가도 알 수 없어지고 또 알면서도 모르고 싶은 마음을 막아서기란 대단히 어려운 일이니까. 어쩌면 영원히 알 수 없더라도 상관없을 것 같으니까.
-Ho
2017년 9월 3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