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아흔 번째 주제
구름이 흐르는 속도는
따스하고 몽실몽실해서
놓칠 수 없는 아련함이었다.
자꾸만 흐르는 것들을
그대로 두어야만 하는
허망함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언젠가의 흐릿한 기억이 되는 것처럼
오늘의 구름은
내일의 구름과는 다른 것이었다.
곧잘 잿빛으로 물들고야마는
연약한 마음이었다.
구름은 느리지만 꼿꼿하게
흐르고 또 흘러서
어딘가로 사라지고.
너도 어느새
그렇게 흘러가
어딘가로 날아가버리고.
-Ram
1. 어느 날의 일기.
회사에서 클라우드로 제공되는 시스템을 기획하면서 느낀 점들.
-전문가인 척 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책임을 전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진심으로 시스템이 구현되길 원하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예컨대 그냥 하라고 해서 하는 사람들) 사람들의 태도는 확연하게 갈린다. 눈빛부터.
-모르는 것을 물어보면 귀찮아하는 사람들과 최선을 다해 알려주려고 하는 사람들(...)
-겉모습으로만 가볍다고 판단했던 사람이였건만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면 자신만의 깊이가 있는 사람들.
-겉모습으로만 보았을 때 대단할 것만 같았던 사람이였건만 실제로 이야기를 해보면 별 깊이가 없는 사람들.
-ERD에 대해서 흥미를 가졌다. 더 구체적으로 배우고 싶어졌다.
-화면기획보다 어쩌면 데이터모델링이 나에게 더 재밌을 지도 모르겠다.
-욕심은 끝이 없고, 욕심을 내는 것에 비례하여 자괴감이 든다.
-사람을 보고 어떤 학문에 뛰어 들고 싶다는 생각을 잠깐 했다.
-이해관계를 생각해서 딱 잘라서(정말 너무 잘 드는 칼 처럼) 말하는 사람을 보았다. (그것도 기술이라면 대단한 기술이지)
-나는 아직도 멀었다.
2. 귀여운 구름들 아래에서.
여름이 좋은 가장 큰 이유는, 여름은 하루 자고 일어나도 다음날 그대로 여름인 날이 많아. 그런데 가을의 경우는 하루 자고 일어나면 더 추워졌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많아서 하루하루 일어날 때 마다 얼마나 추워졌을까 조마조마해. 겨울은 그냥 맨날 추우니, 추운걸 싫어하는 내겐 말할 것도 없고.
3. 마치 창고에서 해묵은 물건을 발견했을 때처럼.
8년 전에 타임라인이라는 것이 유행했었을 때가 있었다. 상단에는 쭈욱 시간의 흐름대로 타임라인이 늘어져 있었고, 사용자는 자기가 적고 싶은 말을, 기분대로 5가지 표정을 선택하여 입력하는 창이 있었다. 생각을 입력하면 구름모양의 말풍선이 떠오르고, 선택한 표정에 따라 구름의 표정과 색이 자동으로 선택되었다. 그것은 여러가지 서비스들에 밀려 결국 더이상 진행되진 않았지만, 아직 내 구글 드라이브에는 화면들이 남아있었다. 나는 그 때 이 화면들 앞에서 어떤 미래를 그렸을까.
4. 숨통
속 시끄러운 날이 많아지는 것 같아서 걱정이야.
물론 속이 시끄러울 법도 하지만, 시끄럽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
그러지 않을 수도 있는 거잖아.
조금만 더 놓자. 조금만 더 멀리 생각해보자.
떠가는 구름처럼 그냥 유유히 흘러가보자. 그래도 되잖아.
하나하나 다 내 마음대로 붙잡고 가기엔 벅찬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잖아.
손에서 조금씩 놓아버리면, 떠나보내버리면 마음이 편하잖아.
-Hee
어두운 밤. 을지로의 하늘을 올려다본다. 빌딩 숲의 머리위로 구름들이 빠른 속도로 지나간다. 하늘과 땅이 이렇듯 가까웠던 적이 있었나 싶을만큼 머리 위로 지나가는 구름들이 가깝다. 마치 빨리감기 속도로 세상이 재생되는 것만 같은 기분이다.
방금 지나간 구름들은 어디로부터 왔을까, 결국 도달하는 마지막은 어디일까? 이러한 상상을 해 본 것이 너무나도 오래 전 일인것만 같다. 마치 다가오는 가을에 무대를 내어주듯 여름의 구름들이 한시 바삐 퇴장하는 것만 같기도 하다.
다시 여름에서 가을. 내 무대의 배경이 바뀐다. 나는 얼마나 성장했을까. 또 얼마나 성장해갈까. 손을 곧게 뻗어 손 끝을 가슴으로 잡아당기듯 내 삶이라는 나의 몸짓에 최선을 다한다. 뜨거웠던 여름. 그 배경을 보내고 다음 막을 준비한다. 단 한번 뿐인 내 삶의 무대. 매 순간 정열을 뿜어내자.
내 삶이라는 극을 이끌어가는 주인공이 되자.
-Cheol
먼 이국의 하늘을 보는 것 같았다. 어쩌면 정말로 이국에서부터 천천히 옮겨온 것인지도 모른다. 계절을 통째로 품고서. 구름이 다채롭게 누인 하늘은 가끔 대단히 찬연해지고 나는 매번 지나치게 안온해진다. 길을 걷는 누구나가 하늘을 올려다보게끔 되는 날이었고 나는 선명한 구름의 모든 테두리를 눈으로 따라 그리느라 갈 길을 잃고 오래도록 거리에 머물렀다. 엔진이 퍼진 자동차가 갓길에 정차할 수밖에 없듯이. 어디에도 고장 난 구석은 없었지만. 되려 한참 전 고장 나버려 내버린 것이 되돌아오는 감촉이 명백히 느껴졌다. 그게 무엇인지 알 수는 없어도 얼마간 더 싱그러운 날들을 살아내는 내 모습 역시 선명히 그려졌다. 좋아하는 계절과 함께 구름이 귀한 손님처럼 멀리서 돌아온 것이다. 선물을 한 아름 안고서.
-Ho
2017년 8월 2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