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백 아흔 세 번째 주제
몇 장의 카드가 운명을 결정지어 준다는
그런 뜬구름같은 말은 믿고 싶지 않았다.
수능을 치를 때에도
연애가 궁금한 때에도
앞날의 일이 걱정인 때에도
그런 사소한 것들에
불안한 미래를 맡길 순 없었다.
내가 잡고 싶은 일들은
사그락사그락
손틈 사이로 곧잘 놓치곤 했다.
그렇게 놓친 것들이
카드 속에 들어있었다면
너무나 속상할것만 같아서
그래서 믿고싶지 않았다.
가련한 나의 내일이 안타까워서.
-Ram
1. 그 시절의 일탈
고등학교때 제일 친했던 친구랑, 어느 가을에 같이 야자(란 말도 정말 오랜만이다)를 몰래 빠지고,
수원 남문에 타로카드를 무작정 보러 갔었다. 우리는 누구에게 수원 남문의 타로가 그렇게 잘 본다는 소문을 들었을까.
버스를 중간 지점에서 내려서 한번 더 갈아타야했었는데, 그 중간지점인 버스정류장에 빵집이 하나 있었다.
학교에서 저녁도 안먹고 바로 나왔기에 배가 고파서 둘이 빵을 나란히 사서 다음 버스로 환승을 했다.
난생처음 남문에 도착한 우리는 찾고 찾아 허름한 상가 안으로 들어갔다.
상가에는 이미 밖에 대기석같이 포장마차 의자처럼 플라스틱 의자가 주욱 놓여져 있었고,
그곳엔 우리와 같은 고등학생들이 교복을 입고 깔깔대며 앉아있었다.
친구와 나도 빈 의자 하나에 번갈아가면서 앉아 두근두근 순서를 기다렸다.
드디어 차례가 다가왔고, 커텐 막을 올리며 좁디좁은 공간 안으로 들어갔다.
그 타로카드 점술사에게 그 당시 무슨 질문을 했는지에 대한 기억보단
점술사의 손이 굉장히 현란했다는 점과 화장이 너무 화려해서 약간 무섭다는 기억만이 남아있다.
우리는 도대체 무엇이 그렇게 궁금했었을까.
사실 그땐 궁금한 것들이 단순했었을지도 모르는데.
돌아오는 버스에서는 타로점에 대한 신뢰도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한 얘기와,
과연 학교에서 야자를 튀었다는 사실이 선생님 귀에 들어가진 않았을까라는 조바심과,
학교에 남아있는 그 누구에게도 연락이 오지 않았으니 아무일도 없이 지나갔을 거라며 안도를 느끼며 집으로 향했다.
그 시절 귀여웠던 고등학생때의 일탈.
2. 광주의 기억
작년 여름에 내가 좋아하는 과장님이랑 광주로 출장을 간 적이 있다.
과장님이랑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과장님이 동양철학, 사주풀이, 역학 등등을 공부했다는 사실을 알았다.
덕분에 과장님이 내 사주풀이도 해주셔서 한참을 이야기하다가, 문득 과장님한테 물었다.
아홉수라는 것이 있냐고. 29살이 된다면 아홉수일텐데 진짜 그게 있는 거냐고.
과장님은 아홉수를 안 믿는다고 했다.
모든 것은 믿는 것에서 출발하는데, 믿는 사람한테만 해당된다고 했다.
그 말이 내게 와닿아서 나도 아홉수를 믿지 않기로 다짐했었다.
그리고 올해, 스물아홉살이 되고, 누군가 내 나이를 듣고 '아홉수네' 라고 하기 전까지
난 한번도 아홉수라는 말을 떠올려본 적이 없었다.
그만큼 나쁜일이 생기지도 않았으며, 그냥 잘 살아가고 있다.
문득 작년에 과장님이 해줬던 말이 생각나면서, 그 말이 사실처럼 느껴졌다.
아홉수를 검색해보니 어느 누구는 나이에 9가 들어가는 것을 아홉수라고 하진 않는다고 하며,
어느 누구는 사람마다 아홉수는 따로있다고 하지만 나는 잘 모르겠다.
좋지 않은 일들이 어느 순간에 일어난다고 정해져 있는 것도 아니며,
언제 내게 닥쳐올까 걱정하며 살기엔 오늘의 하늘이 너무 맑다.
-Hee
내가 있던 순간으로부터 한걸음 물러나면, 과거와 현재 그리고 조금의 미래 그렇게 조금 더 넓게 보면 좋았을 걸. 그럼 내가 조금 더 견딜 수 있었을텐데 그런 생각을 해본다.
하긴, 다 지난 뒤에서야 당사자가 아니고서야 그 순간의 힘듦을 어찌 가늠할까.
마치 타로점을 볼때와 같은걸까. 모든 카드들은 어떤 카드일지 알 수 없고 뒤집어 있는걸. 막상 선택한 카드를 뒤집어보아야 그 내용을 알 수 있는것처럼 우리의 현재란 것도 수 많은 카드들 중에서 선택된 한 장인것은 아닐까. 막상 한번 선택한 것은 되돌릴 수 없는게 타로점의 규칙인 것처럼 나에게 닥친 현실은 돌이킬 수 없는걸.
다행인 것은 카드의 의미는 해석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는 것처럼, 우리의 현실도 충분히 다른 해석과 이해가 가능하다는게 아닐까.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나의 의미를 다른 해석으로 재발견해주는 사람은 찾아올까? 아니지 내가 그렇게 네가 괴로워하는 의미를 다른 해석으로 위로해줄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그렇게 서로를 해석하고 재발견해주는 그런 인연이 되어줄 수 있을까?
-Cheol
1.
돈 주고 사서 듣는 말들은 조금의 틈도 없이 마음에 딱 들어맞는다. 마음속에 비어 있는 틈새를 빼곡히 채워 어떻게든 흐르게 만든다. 이유도 없던 불안은 쉽게 사그라들고 행복은 세세한 이유와 시간까지 정해졌다. 그렇게 마음이 흐르고 나면 억지로 끼워 맞춘 조각들은 금세 떨어져 버리고 말았지만 나는 말 한 마디가 사람을 얼마큼 뒤흔들 수 있는지 그 힘에 많이 놀랐던 것 같다.
2.
감당할 수 없는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 이유는 어떻게 되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말 한 마디, 그다음을 책임질 수 없다면 하지 않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Ho
2017년 9월 17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