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거 아세요?"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열 두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당신이 나를 좋아했던 시절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제법

하루를 길게 빌려쓰며

헤어짐을 아쉬워했던 사이였던 것을.


당신은 아세요?


숱한날을 기다림으로 메꿔왔던

나의 날들이 애달팠던 것을.


당신의 달콤했던 말들은

딱딱하게 굳은 채로

하나도 따스하지 않았던 것을.


나를 보고

나를 안고

나를 품었던 손길이

이제는 귀찮음으로 둔탁해져버린 것을.


나는 하나도 괜찮지 않은 것을

지금 당신은 알고 있나요?



-Ram


배려랍시고 했던 말이나 행동이여도, 상대방은 배려의 털 끝조차 느끼지 못하는 때가 있다는 걸.

학원가기 전날 실컷 영어공부를 해놓고서도 막상 학원에 가서 한 마디 제대로 꺼내지 못하는 날이 있다는 걸.

너와 카톡으로 대화하면서 혹여나 대화가 지루해지진 않을까, 그래서 대화를 끝마치게 되진 않을까, 조마조마 걱정하며 ,한 글자 한 글자 생각생각끝에 보냈었다는 걸.

화를 내고 있지만 마음 한 켠에서는 이렇게 내가 화를 내어 네가 날 싫어하지는 않을까 너무 겁이 났다는 걸.

화와 짜증을 주체할 수 없었던 내 마음을 조금씩 다스릴 줄 안다는 걸.

가족을 생각하며 남몰래 울었던 적이 있었다는 걸.

네가 어떤 내용으로 고민하고, 갈등하고 있는 지 알면서도 모르는 척 했다는 걸.

감정의 한계에 부딪쳐 끙끙대다 한계를 인정하고 잠에 든 적이 있었다는 걸.

해야할 것들이 2개 이상 많아지면 마음속으로 그 앞에 중요순대로 번호를 매겨 기억한다는 걸.

어느 누구의 단점을 말하고 있는 내 자신도 완벽하지 않다는 걸.

종종 어른이 된 내 자신이 생소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는 걸.

바보같은 표정이나 행동을 해도 귀엽다, 예쁘다며 날 보며 활짝 웃어주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은 소중하다는 걸.

그놈의 '적당함'이라는 말은 어디에서 나왔는지 너무 오남용되고 있다는 걸.

행복하다는 생각이 들 때 바로 뒤에 쫓아오는 '내가 이래도 될까'라는 터무니없으면서도 무서운 의심이 있다는 걸.

한밤중에 잠을 깨면 잠을 설쳤다는 생각보다 아직 한밤중이구나, 라고 생각하며 다시 잠들 수 있는 행복함이 밀려온다는 걸.

이메일 한 통이 내 마음을 흔들 수 있다는 걸.

싫어하는 마음은 나중에 뿌옇게 희석 될 수 있다는 걸.



-Hee


그거 아세요?

목소릴 들으면 나도모르게 마음이 놓이는 사람들이 있어요.


그거 아세요?

나누고 싶은 이야기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줄을 서는 그런 사람이요.


그거 아세요?

저도 당신에게 그런사람이고 싶답니다.

도란도란 행복할 수 있는 우리이고 싶습니다.



-Cheol


그거 아세요? 저는 지금 베트남에 있습니다. 추울 때 더운 나라로 떠나는 사치를 누려보고 싶었거든요. 마침 오늘은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이라고 하니 여행을 시작하기에 오늘보다 더 적절한 날이 있을까 싶습니다. 아닌 게 아니라 호찌민행 비행기가 이륙하고 나서 창밖을 내려다보는데 바다가 얼어 있더라고요. 저는 우리나라 바다가 얼 수도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어요. 그래선지 기분이 좋았어요. 매서운 추위가 더운 나라 여행을 더 즐겁게 만들어 줄 것만 같았거든요. 추위가 달가운 순간이 여태 잘 없었잖아요.


베트남 날씨는 1월인데도 덥고 습합니다. 조금만 걸어도 이마부터 땀이 맺혀 흘러요. 또 매연은 어찌나 심한지, 도로는 얼마나 무질서한지. 그래도 맨발로 슬리퍼를 질질 끌며 길거리를 걸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저는 일단 좋습니다. 그런데다 음식과 술이 저렴하고요. 맛도 좋고요.(당신도 충분히 좋아할 맛이에요) 건물도 공원도 시장도 아름답고요. 여행 때마다 그랬었지만 이번에도 이 도시에서 살고 싶어졌어요. 추위만큼 더위도 싫어하는 당신이지만 어쩐지 좋아할 것 같은 느낌이 많이 들어요. 더위보단 따뜻함이, 무질서 속에 온정이, 소란함 만큼의 활기가 잘 보이거든요. 돌아가기 전에 제가 찍은 사진을 담아 편지를 한 번 더 보낼게요. 그럼 그때까지 잘 지내요. :)



-Ho


2018년 1월 28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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