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열 한 번째 주제
그렇게 어른이 되는 줄 알았다.
하루를 10조각으로 쪼갰을 때,
그 중 8조각 즈음은
나만을 위해 쓰던 시절.
내가 만나고픈 사람,
내가 듣고픈 수업,
내가 하고픈 일들.
그렇게만 살 수 있을줄 알았던 시간.
몇 조각이나 양보할 수 있을까,
하나둘 내어주던 나만의 것들이
사라지는 날들.
고작 1조각도 욕심내지못하는
요즘의 시간을 쓰면서
그렇게 묵묵히 어른이 되나보다.
겉모습만.
-Ram
1.
그나마 시시콜콜한 이야기들과 감정들을 공유하고, 나누지만 서로 각자 사생활따위가 그리 궁금하진 않은 관계가 늘어났다.
2.
새벽에 일어나 영어학원을 가서 혹여나 내가 모르는 문장들이 있어서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면 어쩌지, 내가 미리 생각하지 못한 주제여서 바보같이 말을 하지 못하면 어떡하지, 하는 긴장감과, 때론 미리 전날 공부를 단단히하여 자신감이 긴장감을 앞서 발걸음을 옮기는 시간들을 지나서 출근시간이 다가오고, 출근하여 일에, 사람에, 이해관계에 치여가며 눈치도 보고, 신경도 쓰고, 골똘하게 머리를 굴리며 일을 처리하고 집에 오면 피곤함에 지쳐 잠들기 바쁜 하루하루를 보내다보면 내 사생활은 어디있나 싶기도 하고. 사실 의욕이 조금 앞서면 좋아하는 장소나, 좋아하는 책을 다시 찾게되지만 의욕이 없으면 좋아하는 것들도, 하고 싶은 것들도 모두 뒷전이 되고, 내가 살고 있는 것에 대한 의미와 살고 있는 순간들이 무색해진다. 나를 잃으면 안된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하며 나의 사생활을 지키려고 노력하고, 하나라도 더 내 시간들을 위해 할애하고, 자극이 되는 무언가를 찾아 방황하고 있는 순간들이 있었다.
3.
생활을 무너뜨리는 두 가지.
1) 가족이 온전하지 않을 때
2) 한 끝의 의심없이 마음을 주고, 믿고 있던 사람이 내게 싸늘하게 대할 때
4.
사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나는 더 단단해지고, 독해질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 반대로 흘러가고 있다. 조금은 더 물러졌고, 어쩌면 유연해졌고, 어쩌면 약해졌다. 조그마한 생채기의 여파는 여전히 남아있고, 아쉬움없이 뒤돌아서기엔 마음에 걸리는 것이 많아졌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가느다란 외로움에 몸을 떠는 순간들이 생겨났고, 의지하고 싶은 곳을 찾게되는 것은, 툭하면 눈물이 나는 건 괜한 엄살일까.
5.
아주 마음에 드는 예쁜 유리잔을 샀다. 유리잔을 어디에 쓸까 하다가 어제 냉장고에서 예전에 친구들이랑 파티하고 남은 호로요이를 꺼내와 잔에 따랐다. 분홍빛을 띈 맥주가 콸콸 잔을 채웠고, 노트북 옆에 컵을 두고 행복해하며 야금야금 마셨다. 좋아하는 유리잔이나 그릇에 음식을 담아 먹는 나만의 소소한 즐거움.
-Hee
'퇴근하겠습니다'
'네, 들어가세요'
그 혹은 그녀가 퇴근하고서 시작되는 사생활. 무엇을 할까? 소개팅? 자기관리? 운동? 게으름? 무엇을하든 사생활을 갖고 있다는 것이 소중하다. 저녁 시간을 사적으로 보낸다는 것이 소중하다.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시간, 가족을 위해 저녁을 준비하는 시간, 집안을 정리하는 시간, 회사일에 조금 더 몰두해보는 시간, 혹은 상처받은 자신을 치유하는 시간, 자신과 주변을 정돈하는 시간들이 소중하다.
지난 2년동안 달려왔던 길을 돌이켜보며 지속가능한 성장을 꿈꾸어본다. 일과 사생활 사이에서 균형점을 찾아가며 이루어가는 하루하루. 자신의 꿈을 향해 나아가는 각자의 시간들, 그 시간들이 모여 아기자기한 이야기들을 만드는것을 상상해본다.
완벽을 향해 나아가는 불완전한 하루 하루.
계속해서 나아가자.
-Cheol
서로의 사생활만큼은 공유되지 않았다. 다른 사람에게 알리고 싶지 않은 나의 사생활 속에는 온통 연진만 있는데도 나는 연진의 사생활을 조금도 알 수 없었다. 물론 연진도 나의 사생활을 모른다는 점에서는 다를 게 없다. 다만 나는 그녀의 사생활이 못 견디게 궁금하고 그녀는 여전히 내게서 알고 싶은 게 조금도 없어 보인다는 점이 나를 옭아맸다. 언젠가 술을 한 잔 하면서는 말할 생각이 없었던 사연들을 꺼낼 듯하더니 다시 마음을 다잡았는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집에 가자 말하는 연진이 도무지 섭섭해서 어쩔 줄을 몰랐다. 혼자 남아 술을 더 마시다가는 점심에 뭘 먹었는지, 어딜 다녀왔는지, 매 분 매 초 연진이 궁금한 내가 구차하고 더러워 보여 속 좁은 다짐을 하기도 했다.
연진은 지난한 관계에 괴로움을 느끼면 아무런 연락도 없이 숨어드는 버릇이 있다. 나는 큰 파도가 들이치는 해변의 모래알처럼 매번 그녀에게 휩쓸려 절망했다. 그러면서도 잦은 연락의 빈도가 사랑은 아니라며, 그런 식으로라도 마음이 편해질 수 있다는 건 다행인 일이라며 그녀를 안심시켰지만 그런 말을 태연하게 잘도 내뱉은 나를 원망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그 말 덕분인지 우리는 연락을 전보다 덜 하게 됐다. 이 삼일에 한 번쯤 날씨가 살인적이라거나, 출근이 너무 하기 싫다는 의미 없는 말들을 한두 차례 주고받을 뿐이다. 나의 지나친 관심이 그녀에게 폭력이 될까 봐 늘어놓은 말이 이제는 나를 매질한다.
나는 그녀가 드러내 보이지 않는 흉터를 캐묻고 싶은 게 아니다. 하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점점 더 궁금해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닌가. 그녀가 쌓아둔 두터운 벽 앞에서 기다릴 수밖에 없겠지만 매번 거절당하는 나의 아픔을 이렇게 계속 별일 아니라며 무시해도 괜찮은 것일까, 두려운 생각이 자꾸만 엄습한다.
-Ho
2018년 1월 21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