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마흔 일곱 번째 주제

by 도란도란프로젝트

내가 운전을 시작한지

여드레 즈음,


그러니까

딱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내가 사는 동네 주변에 익숙해졌을 때 말야.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내 안전을 걱정해주었어.


못되게 이르는 말로

‘김여사’ 운전은 안된다면서

걱정 겸 참견을 들먹였지.


그무렵에 내가

실수로 고속도로로 진입해버렸어


태어나 처음으로

겪는 일이었는데,

손이 바들바들 떨리고

등에 식은땀이 났어.


아직 그런 고급 코스는 나한테 무리였거든.


막상 겪고나니

별 것아니었다는 여유는

내게 일어나지 않았어.


정말 큰일날 뻔 했었거든,

나는 지금도 고속도로가 무섭고 두려워.


우연한 계기로 한계를 극복하는

영웅스토리는

내 이야기는 아닌거지

적어도 운전 파트에서는.


뭐든 그래.


그러니 그렇게 크게 실망말고

내일도 고속도로가 아닌

시내도로를

안전하게 다녀야지.


고속도로는 아직 무리야.

하하.



-Ram


1.

꼭 A라는 직업을 가져서 성공을 하고, 꼭 B라는 사람을 만나서 사랑을 하고, 앞으로의 일생을 함께하고, 꼭 C만큼의 돈을 가질 수 있고, 꼭 D라는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강박은 버리라고 했다. 이 세상에 A가 무엇인지, B가 누구인지, C가 얼마인지, D가 어떤 방향인지는 아무도 정답을 말할 수 없기 때문에. 엄청난 강박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것이 그 날의 위로였다. 뻥 뚫린 고속도로를 달리듯 모든 것들이 순탄하게만 흘러간다면 나 자신을 되돌아볼 기회도, 내가 누구인지 알 기회도, 과연 내가 온전한 나로서 지내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 채로 살아가는 것과 같다고 했다.


2.

나보고 산청까지 운전을 하란다.

단 한 번도 고속도로를 탄 적이 없는 내게.

처음부터 끝까지 운전을 하라고 했다.

못한다고 엄살을 더이상 부릴 수가 없어서 다음날 아침에 운전할 때 갈아신을 운동화를 챙기고, 내 허리와 등을 받칠 만한 가디건을 둘둘 말아서 출근했다.

운전대에 앉았고, 안전밸트를 채웠다.

솔직히 말하면 무서웠다. 고속도로라는 미지의 세계가 무서웠고, 고속도로를 달리는 옆 차선의 속도가 무서웠고, 가끔 뉴스나 인터넷에서 떠도는 고속도로 사고 블랙박스 영상이 괜히 생각나서 무서웠다.

하지만 불안함에 떨고만 있을 수는 없었다. 조수석과 뒷좌석엔 나 외에 3명이 더 탔다. 아. 아. 눈을 질끈 감고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엑셀을 밟았다.

정신을 차리자 내가 고속도로에 와 있었다. 서울에서 점점 멀어질수록 차가 거의 없었다. 엑셀을 더 세게 밟았다. 계기판을 슬쩍 보자 속도가 점점 올라가고 있었다. 속도 90km/h도 무서웠는데, 100km/h으로 더 달려버리자 90km/h이 더이상 무섭지 않았다. 100km/h가 무서웠는데, 110km/h로 달려버리자 100km/h가 무섭지 않았다. 생각보다 안무섭네. 생각보다 할만하다. 라는 생각을 하면서 계속 달리자 어느새 산청에 도착했다.

어떻게든 하면 되긴 되더라고.



-Hee


갑자기 글을 쓸 수가 없었다. 몇분 내내 혹은 몇시간 내내 카페에 앉아있어도 글을 써내지 못했다. 한 글자, 한 단어, 한 문장도 너무나 부끄럽고 민망하여 이내 다시 지워버리곤 했다.


명절기간 고속도로에서 보내는 제법 긴 시간동안에도 결국 글 한 문장 쓰지 못했다. 그래 가끔은 이렇게 뜻대로 되지 않는 때도 있는것이겠지.

그렇게 생각해버리고 말았다.


그래 그런거겠지.



-Cheol


십 분을 쉬면 한 시간 더 늦어버리는 고속도로 위에서 멈춘 듯하지만 조금씩이나마 나아가고 있다. 끝없이 늦춰지는 도착예정 시간을 바라보다 마음이 먼저 지쳐버릴까 봐 내비게이션도 꺼버린다. 창문을 다 내리고 오디오의 볼륨은 매서운 바람 소리를 다 덮을 만큼 더 크게 높인다. 왼쪽으로 가깝게 붙은 중앙 분리대를 볼 때마다 오늘이야말로 내가 비참하게 죽을지도 모르겠다는 예감이 들어 몸이 떨려온다. 그래도 이제는 멈출 수도, 왔던 길을 다시 되돌아갈 수도 없다. 지나온 것은 이미 지나온 것. 왈가왈부할 가치라곤 조금도 없다. 다행인 일이라면 아직 연료가 충분하다는 것. 그리고 요란하게 핸들을 이리저리 꺾을 필요가(여유가) 없다는 것. 불안감을 조성하는 붉은빛의 행렬 가운데서, 고작 시속 20km의 속도로 나아가더라도 별 수없이 직진한다. 가야 할 길은 아직도 멀다.



-Ho


2018년 9월 30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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