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란도란 프로젝트 - 이백 예순 세 번째 주제
01.
우리가
쉽게 낭비해버리는 것들,
돈, 시간, 그리고 감정.
그리고
나의 삶.
02.
“ 엄마,
요즈음 내가 드는 생각이 뭐냐면
엄마는 어떻게 이렇게 희생하며 살아왔느냐
하는거야.
요즘 시대에 태어났더라면
저기에 앉아서 조잘거리는
어느 아이의 젊은 엄마처럼,
엄마도 더 반짝 거리면서 살 수 있었을텐데.
그치-.”
03.
스트레스가 심할 수록 낭비가 심해진다.
인터넷 충동구매라던가,
식욕도 없는데 배달앱을 누르고 만다.
그래서 오늘은 또 뭘 소비해야할까.
-Ram
1.
좋은 것들은 바로바로 소비해야 한다.
먹는 것, 보는 것, 쓰는 것, 듣는 것, 말하는 것 따위 모두.
예전엔 꽤나 아꼈다.
좋은 것들에 대한 미련과 집착이 있어, 함부로 낭비하지 말아야지, 쉽게 사용하지 말아야지, 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모든 것에는 유통기한이 있었다.
엄마가 정성들여 해준 더덕무침을 냉장고에 넣고 아끼다가 모두 상한 일.
자주 만나면 혹시나 질리진 않을까, 혹시 너무 쉽게 생각하진 않을까 등등 잡념에 사로잡혀 비싸게 굴다가 인연을 놓친 일.
비싼 명품 화장품이 어느날 내 화장대에 들어왔고, 아까워서 서랍 안 쪽에 넣어두고 그만 잊어버린 후 유통기한이 지난 뒤에 발견한 일.
그 때의 감정을 불러오기 싫어서 좋은 노래들을 아끼고 아끼다가 결국 내 자신이 바뀌고 말아, 더이상 그 노래가 좋지 않은 일.
표현하기 쑥스러워서 사랑한다는 말을 하지못하고 결국 헤어진 일.
별의별 일들을 겪은 후 가치가 바뀌었다.
아끼면 똥된다는 말이 사실이였다.
나는 앞으로 좋은 것들은 마음껏 낭비할 것이다!
2.
'아, 진짜 이 시간들도 내게 낭비일까. 이렇게 내 마음을 뒤집어놓는 이 시간들 모두 낭비인 것일까. 이제 그만 끝내야 할까.'
작년 여름, 이런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었다. 끙끙 앓고 있었고, 주변은 도무지 풀리지 않을 것만 같았던 것들 투성이였으며, 무엇보다 신뢰가 무지막지하게 깨어져 버린 것만 같았다. 그렇게 힘들 때, 과거를 되돌아봤다. 과거에도 분명히 이런 힘든 시점이 있었고, 혼자 고민하고, 스트레스 받던 것들이, '모두 다 지나가리라'라는 말처럼 어찌어찌 지나가서 지금까지 왔다. 결국 그런 고민과 스트레스로 힘들었던 시간들은, 되돌아보면 다 아무 의미 없었던 것들도 많았다. 다시 말해 감정낭비. 감정소모. 아픈 것들은 모두 훗날 의미가 있지 않았고, 사실 대부분 도움이 되지도 않았으니까. 버텨진 시간들이 지나갔다. 그리고 수백번 끝이라고 생각하고 체념했던 때에, 결국 우리는 다시 만났고, 서로에게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아팠던 시간들이 낭비라는 생각이 들지않게 우리는 그 시간들에 대해 되짚어보았고, 되뇌였고, 양분이 되도록 곱씹었다. 아직도 마음을 완전히 놓을 수는 없다. 사람이 완전할 수 없으니까.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웃으며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Hee
네가 나의 곁으로 다가온 순간
말문이 막힐정도로 심장이 떨렸다.
어차피 이루어지지 못할거라는 기대,
함께한 시간들이 낭비는 아닐까도 싶었다.
아무렇지 않은듯
애써 태연하게
-Cheol
물건을 사고 나서 후회할지 후회하지 않을지를 고민해가며 돈을 쓰는 편은 아닙니다. 사야지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면 오래 고민 않고 사버리지요. 그렇다고 후회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아니지만 살까 말까 쓸 데 없이 고민하는 시간을 줄임으로서 그 순간 삶의 질이 아주 약간 높아졌었다고 말할 수는 있겠습니다.(삶의 질과 경험을 들먹이면 낭비가 썩 합리적인 선택이 돼버리곤 합니다.) 그 이후의 삶에 대한 걱정은 다음으로 미뤄도 괜찮습니다. 물건 좀 산다고 해서 폭삭 주저앉아버리는 인생이란 거의 없다시피 하니까요. 더군다나 저는 사버려서 망해버릴 만한 물건은 이런저런 고민할 필요도 없이 살 수 없는 형편이기도 합니다.(이 생각은 요즘 들어 제 낭비벽이 더 심해진 이유입니다.)
하지만 저는 남들이 보기에 걱정스러울 만큼의 낭비를 담대하게 고민 않고 하면서도 후회를 굉장히 많이 하는 편입니다. 후회하는 것들을 잘 보면 가치관의 단면을 얼핏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서브웨이 5300원짜리 비엘티 대신 6300원짜리 스테이크 앤 치즈에 아보카도 추가해서 먹은 걸 후회하지만 8000원짜리 시집을 사서 읽지도 않고 책장에 꽂아둔 걸 후회하진 않습니다. 안 먹어도 그만인 한 끼 식사보다는 언젠가 읽을 책 한 권이 저에게는 더 가치 있나 봅니다. 마찬가지로 목 늘어난 베이스 레이어를 새로 사는 건 엄청 아까운데 안 어울리는 새 옷 남 주는 건 생각보다 덜 아깝고, 똑같이 일하고 벌써 집 산 친구는 부러운데 돈 써서 놀러 다닌 걸 굳이 후회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이렇게 낭비와 후회 둘 다 잘 합니다. 하지만 계속 낭비해버려서 안목이 길러진다면 그때는 후회를 조금 덜 하게 되겠지요.
-Ho
2019년 1월 20일 도란도란 프로젝트 발행